어디로 갈까요
김서령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인생에 서툰 나, 너, 우리가 맞닥뜨린 이별의 풍경들을 작가의 글을 통해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위안을 받고 싶었다. 김서령 작가는 참 불친절한 작가이다. 삶이 고달프고 외로운 사람들을 툭 던져놓고 독자들에게 알아서 생각하고 결론을 내라는 듯한 글들을 모아놓았다. 아니, 어쩌면 결론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도 같다. 죽어야 끝이 나는 인생처럼 살아봐야 결론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인생은 미완성일 테니…….

 

‘나’는 십 년 넘게 사귄 K와 이별을 결심한다. 딱히 헤어져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그냥 그러고 싶어졌다고 말한다. 주인공 ‘나’가 이별을 겪는 과정은 그리 인상 깊지 않다. 다만 배경처럼 잔잔하게 깔려 있는 ‘아버지’의 이별이 더 깊게 다가온다. 익숙한 정을 나눈 ‘어머니’를 옆에 두고도 한 여인을 마음에 담았었던 ‘아버지’. 언제까지 그 마음이 이어져온 지 알 수 없으나, ‘나’라는 화자는 그 여인을 떠올릴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이별의 과정은 시간의 흐름이다.

 

돌아올 곳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빚더미만 남긴 채 자살한 남편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도망쳐서 갈 곳을 찾지 못하는 ‘나’. 삶이 가혹한 건지 사람이 삶을 가혹하게 만드는 건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당신은 행복할 수 있다!

 

잊는다는 것, 잊힌다는 것. 오래된 기억은 단지 그 위에 다른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 밑바닥에 감춰져 있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 기억이 켜켜이 쌓인 기억들 사이로 불쑥 고개를 내밀 때 당황하지 않고 차곡차곡 무너진 기억들을 쌓아 올리면 될 일이다. 때로 이 기억들은 화장을 하거나 다이어트를 하거나 살이 쪄서 달라진 모습이 되기도 한다. 기억들 스스로 변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기억들에 다른 색을 입히기도 한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다보면 변한 모습이 애초에 그 모습이 된다.

 

여기에 묶은 소설들은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은 사람들의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떠난 이를 어느 날 문득 떠올리기도 하고, 떠난 이후부터 줄곧 붙잡고 있기도 하고. 늘 기억하던 걸 되새기기도 하고, 번뜩 새로운 걸 생각해 내기도 한다. 사람들은 연인과의 이별보다 가족과의 이별을 더 힘겨워하고 더 오래 아파했다. 연인의 자리는 언젠가, 누구든 대신할 수 있지만 가족의 빈자리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테니 당연하다 하겠다. 하나 같이 관계에 아파하다 헤어지고 남은 사람들의 우울한 이야기들. 그 서툰 사람들에게서 나는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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