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최민자 지음 / 연암서가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따스한 봄볕을 맞으며 깨어나는 꽃눈처럼 겨우내 잠자던 감성을 깨우는데 제격일 것 같다는 최민자 작가의 수필을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삶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와 불가해한 은유들을 정관의 여유 속에 풀어내고 싶어 수필을 쓴다는 작가. 정관의 여유 속에 녹아 있는 그 물음표와 은유들을 끄집어내고 싶다.

 

수필이라는 형태를 띤 글을 읽으면 항상 가지가 무성한, 사방으로 뿌리가 뻗어있는 나무가 생각난다. 삶의 한 단상에서 뻗어 나와 이리 이어지고 저리 갈라지는 이야기들. 차근차근 꺼내 놓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탄탄한 나무 한 그루가 자라 있다.

 

작가에게는 제 삼의 눈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을 볼 줄 아는 눈. 흔히 생각하는 사물의 본질을 틀어서 볼 줄 아는 눈. 그들의 마음을,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들여다본다. 동네 치과 의사, 마당을 뽈뽈거리며 걸어다니는 개미, 점잖은 귀, 바다에서 태어난 길……. 흔하게 볼 수 있는 객체들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나가 아니라 객체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절로 감탄이 나올만한 감정이입이라고 할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글에 빠져든다.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을 엿보고 만다. 작가가 느끼는 감정에 동조하고 만다. 짧기만 한 단상 한 편으로도 오랜 울림을 이끌어내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정해진 간격을 거스르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두 섬도 아주 가끔은 수상쩍게 맞붙을 때가 있다. 먹장구름이 하늘을 덮고 불온한 바람이 대기를 흔들면 섬과 섬 사이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수면이 일시 출렁거리고 숲들도 꿈틀, 잠을 깨고 일어선다. 샅바싸움보다 기 싸움이 먼저라고, 수크령처럼 털을 세운 섬들이 앞머리를 박을 듯 으르렁거리며 격돌한다. 아랫녘 호숫가에 번개가 치고, 남녘 어디에서 우레 소리와 따발총 소리가 뒤섞이기도 한다. 풍랑이 거세지고 해일이 일면 호수가 범람해 넘치기도 하지만, 섬들이 떠내려가거나 가라앉는 일은 유사 이래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간眉間 中

 

참 솔직하고 담백한 글이다. 굳이 미사여구를 곁들여 꾸미려하지 않기에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반짝이는 유쾌함으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한 편의 콩트를 보고 난 기분. 이 글 안에서 작가의 은유와 비유는 절정을 이룬다. 작가의 시선과 생각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배우고 나면 어떤 나날도 지루할 새 없을 것 같다. 내 몸 하나로도 몇날며칠을 재미난 상상으로 채울 수 있을 테니. 책상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들로도 또 며칠을 채울 수 있을 테니. 즐기고 사색하고 느끼고 공감할 일이 이렇게 천지로 널려 있다. 그래서 이 책을 감히 삶이 즐겁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책이라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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