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아닌 것 같이
정민기 지음 / 하우넥스트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빳빳한 흰 종이 대신 색 바랜 재생종이가 손을 가볍게 해 준다. 선명하고 화려한 사진 대신 흐릿하고 사람 냄새나는 사진들이 마음을 가볍게 해 준다. 구구절절 여행기, 빽빽한 글 대신 지은이의 중얼거림이 긴 여운을 남겨준다. 적은 듯하면서도 은근히 많은 양을 자랑하는 아흔일곱 개의 단상, 잘린 듯한 페이지, 아무 이유 없는 중얼거림.

 

  굳이 어디를 배경으로, 누구를 피사체로 찍었다는 설명이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언급이 없어도 사진 한 장이 작가의 심정을 그대로 내보이는 것 같다. 하릴없이 앉아있는 사람들, 길바닥에 누워있는 개들, 인적 드문 사원, 하나 같이 북적거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데도 그네들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하루살이들의 성지 하루살렘

그곳에서는 오늘도 하루살이들이 모여

내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일생을 탕진하다

오늘 죽는다.”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질 만하면 그의 중얼거림이 툭 튀어나온다. 책 한 페이지라는 공간 안에 기껏해야 서른에서 백 글자 남짓한 글을 끼적여 놓았다. 그런데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글들이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문득 작가와 독자가 공명하고 있다는 느낌. 이 글을 쓸 때 지은이의 마음과 지금 이 글을 읽는 이의 마음이 서로 이어져 있는 기분. 어떤 사람인지 보인다. 어떤 사람인지 느껴진다. 만나보지 않아도 친해진 기분이다.

 

  쌀쌀한 날씨에 언뜻 쓸쓸하다고 느껴지는 밤 밝지 않은 달에 맑지 않은 하늘을 이고 그저 그런 날 김 빠진 맥주 한잔 앞에 두고 시시껄렁한 농담만 주절거리다 별 것 아닌 말 한 마디에도 주옥같다며 낄낄거리다가 그렇게 아무 일 없이 헤어지고 난 후 ‘아 그래도 살만 하다’라는 말을 내뱉고 난 기분. 사진을 보며 글을 보며…, 책을 펼치면서부터 책을 덮을 때까지 내내 그런 느낌과 그런 기분을 안고 그렇게 지은이와 함께 했다. 그렇게 나는 오늘 그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오늘을 보냈다. 내가 하루살이었다 해도, 그래서 오늘이 내 일생이었다 해도 뭐 이런 게 인생이겠지 라며 툭툭 털고 하루를, 일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 같은 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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