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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문해력 수업 - 인지언어학자가 들려주는 맥락, 상황, 뉘앙스를 읽는 법
유승민 지음 / 웨일북 / 2023년 3월
평점 :
사회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눈치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말하지 않고 상대방의 눈만 보아도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차려야 하고, 말속에 숨은 속 뜻을 알아차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런 생활에 지쳐있을 때 즈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나도 상대방의 모호한 대답에 숨겨진 의도를 알아차리고, 눈치껏 행동하여 좀 더 지금보다 나은 사회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저자는 초등학교 때 일본으로 넘어가서 도쿄 아오야마가쿠인대학원에서 인지언어학을 공부하고 국제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JTBC에서 보도용 르포르타주를 제작하고 있다.
이 책은 총 3 part로 구성되어 있다. part1 고 맥락 사회의 모호한 언어들, part2 속마음을 선명하게 읽는 법, part3 내 삶을 돌보는 감정 문해력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정의 내리는 '눈치'라는 단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실로 저자는 눈치라는 단어를 여러 가지에 비유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우리의 눈치란 '빠름'과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는 말이었다. 서울 생활을 하면서 '빠름'에 익숙해졌던 나는 part2의 눈치게임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을 읽으며, 많은 공감을 했지만, 그와 동시에 한 평생을 지방에서만 살았던 남편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눈치를 보며 급하게 움직이던 내게 남편은 왜 그렇게 서두르냐고,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냐고 물어봤었다. 오랜 서울 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몸에 밴 습관이었다. 먼저 자리를 맡아야 조금이라도 편하게 앉아서 이동할 수 있었고, 남들보다 한 발 더 먼저 움직여야 제시간에 늦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손해 보는 세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남편의 그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민망해졌던 기억이 있다. 역창구 앞에서 미리 카드를 준비하고 대기하고 있지 않으면,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커피점에서 마실 메뉴를 쉽게 정하기 못하고 시간을 지체하고 있으면, 누가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뒷사람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우리는 왜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할까. 그녀가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경험담이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한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녀는, 일본의 접객 문화를 제대로 경험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손님을 대하는 매뉴얼이 존재한다고 한다.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세심하게 잘 살펴 손님이 무언가를 요구하기 전에 바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눈치로 만들어진 질서가 있다. 그렇기에 눈치껏 행동하기, 눈치가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험을 거쳐야 하는 것 같다. 나 또한 사회 초년생 시절, 눈치가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다. 그렇게 선배들의 모범된 모습을 따라 하기도 하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눈치 빠르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경험과 노력으로 길러진 것이다 보니 자칫 긴장을 늦추고 있을 때면 흐름이나 상황을 놓치곤 한다. 그렇기에 쉽게 피로감이 몰려온다. 이렇게 part2부분을 읽으면서 공감 되면서도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part3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말 습관'에서 예시로 나왔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도움을 거절하며 상대방을 배려한답시고, 불편하면서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혼자서 기어코 업무를 마무리했던 경험. 나 또한 그것이 배려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시 속의 상사는 진정한 배려는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누군가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고 받는 것이 배려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길 때 비로소 진짜 상대방도 배려할 수 있는 것이다. 솔직하지 못한 비언어는 결과적으로 상대방을 눈치 보게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눈치 보는 직장 생활에서 환멸감을 느꼈던 경험, 눈치 안 보고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었다. 그런데, 저자도 처음 일본으로 건너가 눈치를 보는 게 습관이었던 만큼 힘들었던 유년 시절을 회상한다. 그 외에서 직장 생활에서 겪은 눈치에 관한 그녀의 경험담은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동질감과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눈치는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타고난 우리의 본능'이라고 말한다. 눈치의 초점을 타인이 아닌 나에게 맞추면 스트레스 받을 상황이 줄어든다고 말하며 나 자신을 위해 가장 쓸모 있어야 할 소중한 본능이자 감각이라는 걸 받아들여 보자고 말한다. 때로는 눈치 보는 것이 힘들고 스트레스 받을 때도 있지만 그만큼 내가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면 나를 위해 어느 정도의 눈치가 있는 사람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눈치를 볼 줄 아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그만큼 섬세한 시선을 가진, 인지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개인 보다 함께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집단주의 문화를 가진 한국 사회에서 눈치를 보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면, 이왕이면 눈치 좀 볼 줄 아는 섬세한 사람인 것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담이 담긴 에세이에 가깝다. 저자의 예시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고, 공감이 된다. 특히나 일본 생활을 직접 경험한 저자가 일본과 우리나라의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에 대해 다루는 것이 흥미로웠다. 눈치 보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직장인에게 공감이 되어줄 책인 것 같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