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눈을 떴을 땐 중환자실이었다. 공교롭게도 엄마가 입원해 있던 아산병원이었다. 위세척을 마친 뒤 혈액투석을 하고 있는데 발치에 엄마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내가 바랐던 얼굴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 소리를 지르며 나를 때리거나 냅다 울어버리거나, 주님,으로 시작하는 기도의 형식을 띤 한탄을 시작하거나 일단은 뭐가 됐든 아침 드라마처럼 감정을 터뜨리고 보는 사람이었는데, 그날의 엄마는 그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ㅡ 너무 애쓰지 마. 어차피 인간은 다 죽어. 그게 엄마가 할 말이냐고, 묻고 싶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 묻는 게 순서가 아니냐고, 사실은 내내 내게 묻고 싶은 말이 있지 않았냐고, 물어봐야만 할 게 있지 않냐고, 묻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묻고 따지고 싶었지만 목구멍으로 인공호흡기가 삽관돼 있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 소설 속에서 규호는 여러번 죽었다. 농약을 마시고, 목을 매고, 교통사고를 당하고, 손목을 긋고…… 규호는 헤테로 남자가 됐다 게이도 됐고, 여자가 되기도 하고, 아이도, 군인도 되고…… 아무튼 인간이 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다 되었다가 결국 죽는다. 죽은 상태로 내 사랑의 대상이 되고, 추억의 대상이 되고, 꿈의 대상이 되며 결국 대상으로 남는다. 내 기억 속의 규호는 언제나 완결된 상태로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그렇게 규호와 나의 기억도 유리막 너머에서 안전하고 고결하게 보존된 상태로 남는다. 영영 둘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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