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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빛나는 ㅣ 안전가옥 쇼-트 15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0월
평점 :
작은 내 손에도 딱 들어차는 알맞은 사이즈, 일명 핸드북이라 어디든 가지고 다니기 부담스럽지 않다. 내용도 신선해서 여러 의미로 꽤나 애정 하는 안전가옥 시리즈가 이번에 또 나왔다. 작가님들마다 작품의 색깔이 뚜렷해서 표지처럼 인상적인데, 이번에는 제목과 찰떡으로 푸르게 빛나는 표지가 인상적이어서인지 왠지 더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열린 문'에서는 남매가 주인공이다. 남매가 매일 새벽까지 핸드폰 TV 컴퓨터에 빠져 사는 걸 못마땅해하던 엄마가 디지털 다이어트라는 명목으로 집안에 코드란 코드는 잘라버리고 압수해버렸다. 임시방편으로 남매는 하굣길에 들른 PC방에서 디지털 일탈을 즐겼지만 집에 돌아오면 아쉽기만 했다. 그러던 차에 주방 구석에서 라면 하나를 발견하고 부셔먹다가 입은 심심함이 가셨는데 진짜 심심함이 남았을 차에 남매 중 오빠가 대뜸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어두운 밤, 대문 밖 존재한다는 웬 도둑을 잡겠다고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게 된다. 고요 속에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는 그때, 도둑을 기다리던 남매 앞에 낯선 무언가가 나타난다. 사람이라고 하기엔 형상이 너무나 이상한, 남자를 거꾸로 든 것 같은 검은 물체. 그리고 붉은 페인트 통이 쏟아지듯 피가 쏟아져 내리는 현관문 너머, 상상한 공포보다 더한 상황을 마주치게 한 단편이 처음부터 파격적으로 독자를 맞이했다.
'우물'에는 약속 시간에 몇 번이고 티셔츠를 갈아입어야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는 극심한 액취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과 가족도 꺼려 하는 그녀의 냄새를 유일하게 알지 못하는 비염인 친구의 이야기였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소통하던 친구도 주인공과 비슷한 불행한 삶을 살아왔는데, 불행의 고리를 끊기 위해 친구는 비염수술을 결심하고, 주인공은 친구의 수술이 성공해서 자신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면 친구를 잃을까 불안해한다. 티 나지 않게 친구의 수술을 여러 부작용 핑계를 대며 말렸지만, 결국 수술을 하고 다시 만난 친구와 설마 하던 이유로 우정은 깨지게 되고, 그녀 앞에 액취증 수술로도 고치지 못했던 액취증을 없애줄 적갈색 액체를 가진 어떤 의문의 여자를 만나게 된다.
'푸르게 빛나는'에서는 신혼부부 한 쌍이 주인공이다.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영끌하여 장만한 새 아파트에 태몽처럼 기이한 푸르게 빛나는 괴생물체를 만나게 되며 인생이 꼬이는 이야기인데, 이야기는 평안하고 안정적이게 새 인생을 시작하는 그들을 꽤나 짧은 시간 안에 극한으로 몰아가는 긴장감이 인상적이던 작품이었다. 남편 규환은 빚을 내서 장만한 집값이 떨어질까, 행복하게 설계한 자신의 인생에 흠집이 생길까 점점 불안해하고, 부인인 여진은 자신이 보았던 푸르게 빛나는 생명체가 자신의 뱃속에 아이에게 해가 될까 두려워하는데 절정에 다가갈 때 우물에서 만났던 기이한 적갈색 액체를 찾는 여자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평범하고 우리 주변에 있을법한 이야기인데, 막상 생각해 보면 일상적이지 않고 인간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것을 '코즈믹 호러'라는 장르로 분류한다는데 새롭게 알게 된 장르에 꽤나 즐거움을 느꼈다. 무서움을 넘어 매혹적인 이야기 장르에 대한 작가님의 심도 있는 고민이 절로 느껴졌고, 앞으로 다른 이야기로 만날 수 있기를 응원하고 싶은 보석 같은 작가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