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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시요일
강성은 외 지음, 시요일 엮음 / 미디어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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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날
낡은 수첩 한구석에서 나는 이런 구절을 읽게 되리라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랬던가
너를 사랑해서
너를 그토록 사랑해서
너 없이 살아갈 세상을 상상할 수조차 없어서
너를 사랑한 것을 기필코 먼 옛날의 일로 보내버려야만했던 그날이
나에게 있었던가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한사코 생각하는 내가
이토록 낯설게 마주한 너를
나는 다만 떠올릴 수 없어서
낡은 수첩 한구석에 밀어넣은 그 말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 말에 줄을 긋고 이렇게 새로 적어넣는다

언젠가 너를 잊은 적이 있다
그런 나를 한번도 사랑할 수 없었다

-남진우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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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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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입력 100% ! 유럽가는 비행기에서 손에서 떼지 못하고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로 되어있는데 <그 여름>과 <모래로 지은 집>을 가장 추천합니다! :-)

"눈동자가 갈색이구나." 수이가 말했다.
"어릴 때 애들이 개눈이라고 했었어."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고 이경은 생각했다.
"신경쓰니, 그런 말?"
이경은 고개를 저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눈동자 색을 인지하고 그 말을 전할 때 이경은 언제나 옅은 수치심을 느꼈었다. 개눈. 이상한 눈.
수이는 자신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오래 바라볼 수 있구나. 모든 표정을 거두고 이렇게 가만히 쳐다볼 수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경은 자신 또한 그런 식으로 수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p.13

" … 어떻게 우리가 두 사람일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어요.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거지? .… "

-p.29

그때 나는 공무와 포옹하고 싶었다. 만약 내 옆에 모래가 있었더라도 나는 똑같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애를 껴안아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펴 볼 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p.158

피조물에게서 위안을 찾지 마십시오. 수사가 되었을 때 나의 담당 수사는 그렇게 말했다. 감실 앞으로 나아가세요. 하느님께 이야기하세요. 그의 말에 나는 일정 부분 동의했으며 신에게 나의 존재를 의탁하고자 했다. 신의 현존에는 분명 그가 말한 위안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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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2018-08-18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코의 미소에 이은 최은영 작가의.소설.
담담하게 써내려가는 글에서 작가만의 필력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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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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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만에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밑줄을 그으며 읽고 싶을 것 같아서!

2.
“ 그때 이후 지금까지 목표도 방향도 없이 닥치는 대로 살았다. 마구잡이로 살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때그때 눈앞에 닥쳐온 일을 나름 성실하게 열심히 하면서 살았다.”
-본문 중

나 역시 그랬다. 중학교 땐 고등학교를 가려고, 고등학교 땐 대학교를 가려고, 대학에 와선 선생님이 되려고 열심히 살았다. 부끄럽게도 고작 그런 것들이 마치 인생의 목표인 것 마냥 치열하게도 살았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가 사라져버린 지금, 나는 꿈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다.

3.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인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 어떻게 사는 지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왜 살아가는 지를 아는 것이 출발점이 되는 것 같다.

3-1) 알베르 카뮈의 질문 “왜 자살하지 않는가?”에 대해 세가지 이유를 들어보았다.
첫째,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용기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의 상처를 외면하고 나의 상처만 쳐다볼 만큼 저의 상처가 깊진 않나 봅니다.
둘째, 세상에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맑은 하늘과 뭉게 구름, 예쁜 노을 마저도 저를 행복하게 하는 걸요. 시 한 구절에도 나는 행복한 걸요. 사랑을 하는 것, 이야기를 나누는 것, 위로하는 것, 위로 받는 것,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것들로 인해 나는 행복합니다. 이 행복을 더 누리고 싶습니다.
셋째, 아직은 내가 반드시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찾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 있겠지요. 저에게 주어진 역할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것을 아직 찾지 못한 것 뿐이죠.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아직 죽을 수 없습니다.

3-2)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사는지가 의미있는 것이 된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영생을 얻는다면 모든 것들이 의미없어 질 것이다. 오늘 반드시 해야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무엇인가에 가슴뛰는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 의미있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3-3)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갖는 것보다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 삶을 더 의미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4.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싶다. 해가 달라질수록 이 책에서 얻는 것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지금은 이 책의 20% 정도 소화한 것 같다...^^!

5. 예전에 했던 tv 프로그램인 <명랑 히어로>에서 했던 연예인들이 유언을 읽는(?) 장면, 특히 김성주 아나운서의 유언을 한 번 봐보기를 추천한다. (유튜브에 ‘김성주 유언’이라고 검색하면 나온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 존 스튜어트 밀

누군가와 영원한 작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리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깊게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p.205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며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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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s 2018-07-20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2가 정말 와닿는 것 같네요. 죽음이 있기 때문이란 것이. 정말 영원히 끝이 없다면은 그 누구라도 그 어떤 것 하나하나 의미를 두고 하려고 노력할까요??? 어차피 몇 년이든 몇 십 년이든 몇 백 년이든 결국 언젠가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기에 모든 생명에 죽음이 있다는 것은 당연히 슬프고 싫을지라도 그 사람의 생명에 대한 더 나아가 목표의식이라는 것을 갖게 해주는 매우 좋은 의미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게 되네요.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460
이제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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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은 다만 빛이 부족한 것
따뜻함은 이미 넘치고 넘치는 것

뒤돌아가면 왔던 길이 남아있다
다시 되돌아가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새가 새를
나무가 나무를
구름이 구름을 불러 모으듯

어떤 믿음이 너와 나를 구별되게 했다

믿고 싶어서 믿기 시작하다 보면
믿지 않아도 믿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나를 나를 속이고 있었다
네가 너를 속이고 있듯이

그러니까 오늘 밤은 멀리멀리로 가자
아름다움 앞에서는 죽어도 상관없는 얼굴로
축제의 깃발을 흔드는 기분으로

우리는 아주 작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는데

얼굴과 얼굴로 오래오래 가만히 마주 보는 것은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의 일이었다고

그러니까
얼굴은 마주 보는 것
마음은 서로 나누는 것

사람은 우는 것 사랑은 하는 것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을 얻는 대신
그곳으로 두 번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 얼굴은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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