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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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입력 100% ! 유럽가는 비행기에서 손에서 떼지 못하고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로 되어있는데 <그 여름>과 <모래로 지은 집>을 가장 추천합니다! :-)

"눈동자가 갈색이구나." 수이가 말했다.
"어릴 때 애들이 개눈이라고 했었어."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고 이경은 생각했다.
"신경쓰니, 그런 말?"
이경은 고개를 저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눈동자 색을 인지하고 그 말을 전할 때 이경은 언제나 옅은 수치심을 느꼈었다. 개눈. 이상한 눈.
수이는 자신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오래 바라볼 수 있구나. 모든 표정을 거두고 이렇게 가만히 쳐다볼 수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경은 자신 또한 그런 식으로 수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p.13

" … 어떻게 우리가 두 사람일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어요.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거지? .… "

-p.29

그때 나는 공무와 포옹하고 싶었다. 만약 내 옆에 모래가 있었더라도 나는 똑같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애를 껴안아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펴 볼 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p.158

피조물에게서 위안을 찾지 마십시오. 수사가 되었을 때 나의 담당 수사는 그렇게 말했다. 감실 앞으로 나아가세요. 하느님께 이야기하세요. 그의 말에 나는 일정 부분 동의했으며 신에게 나의 존재를 의탁하고자 했다. 신의 현존에는 분명 그가 말한 위안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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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2018-08-18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코의 미소에 이은 최은영 작가의.소설.
담담하게 써내려가는 글에서 작가만의 필력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