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서울의봄’에서 군사정권의 종말까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4
정해구 지음 / 역사비평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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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87>이 화제다. <신과 함께>의 독주 속에 개봉했음에도, 20여일만에 약 500만 관객을 모으며 분전 중이다.<1987>이 이처럼 흥행에 성공한 데에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한 몫했지만 촛불혁명 이후 각성된 시민의식도 영향을 미첬다. 2017년 초 박근혜가 탄핵되기 까지 시민들은 30년 전 1987년 6월의 열사들처럼 저항했고 승리했다(물론 1987년 6월의 승리는 반쪽짜리 승리였지만). 그 열기가 채가시기 전에 이 영화가 개봉했다. 덕분에 영화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나는 1987년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나 태어났다. 그 당시의 기억따윈 없다. 굳이 이야기 하자면 내가 온전히 기억하는 최초의 역사적 사건은 2001년의 9.11테러이다. 그 이전 시기의 정치적 상황따위 나는 모르고 자랐다. 그렇기에 1987이란 숫자는 내게 낯설다. 근현대사 교과서에나 존재하던 시대다. 고2, 고3시절 배운 역사는 오직 문제 풀이를 위한 도구였을 뿐, 그 지식들은 그 어떤 역사의식도 심어주지 못했다. 그런 내게 정치적 각성(거창하게 말한 것일뿐, 간단히 생각의 변화 혹은 '의심'이라고 해도 좋다)일으킨 사건이 두 가지 있다.'세월호 사건'과 '촛불혁명'이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었다. 세상은 미쳐있었고,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살고 있었다.잘못된 사실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것은 바보이거나 사이코패스이다. 나는 둘 다 싫었기에 촛불을 들었다. 나 이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놀랍게도 세상은 우리의 움직임에 응답했다. 70 ~ 9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겪어본 적이 없는 내게 이는 시민에 의해(혹은 나에 의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느낀 최초의 경험이었다.


 사설이 길었다. 영화 <1987>의 개봉은 내게 2016년 말 촛불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영화가 보고싶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민주화운동을 어땠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무엇을 좀 알고 보고 싶었다. 근현대사 공부는 수능 이후 완전히 접었기에, 나는 이 분야에 완전히 무지하다. 박종철도 이한열도 모른다. 전두환이 나쁜놈이라는 데 왜 나쁜놈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사실 내겐 후자의 이유가 더 컸다. <1987> 보기 전 워밍업의 목적도 있으나, 악당 전두환을 제대로 욕하기 위해 혹시라도 마주할 일베 회원들과의 언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이 책을 집어들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이유이다.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 운동>은 흡사 교과서 같은 책이다. 역사 평론서가 아니다. 사실을 논하기보단 사실을 전달하는 역사서이다. 본 책이 전달하는 역사는 1970년대 말 부마항쟁 및 10.26사태에서부터 1987년 6월 민주항쟁 및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까지이다. 약 10년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사실만을 건조하게 전달한 책이지만, 그 사실 자체의 힘 덕분인지 책이 매우 재미있다. 80년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다이나믹하고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장 희망에찬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전두환의 폭압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시체가 되어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 연대하며 저항했다. 박종철, 이한열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둘에겐 수많은 동지가 있었다. 그렇기에 혁명은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였지만, 크게 세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오래동안 맴돌았다. 첫번째는 '1987년 6월의 대학생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이다. 586세대(구 386세대, 86년도에 20대를 보낸 현 50대)의 현모습을 보라. 현재 그들 세대의 대표적 별명은 개저씨, 꼰데가 아니던가. 심지어 그들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사람은 변한다지만 이 변화는 경악스러울 정도이다. '김문수'라는 한 단어로 그들의 추악한 변화를 설명할 수 있겠다. 그들은 왜 그렇게 변한 것일까? 두번째는 '그 당시의 연대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이다. 대학가에 더이상 연대는 없다. 이미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2009년에도 소위 '캠퍼스의 낭만'은 없었고, 지금은 더 처참하다. IMF사태 이후 민주vs비민주의 투쟁보단 자본vs비자본의 경쟁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이젠 가진자와 없는 자의 투쟁이다(물론 박근혜의 등장이 다시금 민주와 비민주의 투쟁을 잠시 부활시켰다). 세번째는 '전두환'의 실체이다. 그동안 나쁜놈이다라는 말만 들어왔지 정확히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몰랐는데 이젠 안다. 그는 대한민국 최악의 악인이다. 세계사를 통틀어서 그처럼 무자비하게 자국민을 학살한 사람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는 6월 민주항쟁 당시에도 군을 투입하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추진한 88올림픽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여튼 이젠 그를 당당히 욕할 수 있다. 


서평이란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써야하는데 다소 감정적으로 글을 쓰고 말았다. 양해바란다.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은 내가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을 일깨워주었다. 역사서로도 교양서로도 훌륭한 책이다. 영화 <1987>을 보고자 하는 젊은 예비 관객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분량도 얇아서 빠른 시일 내에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다.이 책을 읽을 여력이 없다면 백무현의 <만화 전두환>을 추천한다. 일단 만화라 거부감이 적다. 또 만화이다 보니 인물 표현이 보다 입체적이고 사건 전개가 역동적이라 본 책보다 쉽게 전두환 시절을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이 글을 쓰는 오늘은 박종철 열사의 31주기이다(역시 CJ다. 이런 것 까지 계산하고 영화 개봉시기를 정했나 보다.) 여러모로 의미있는 날에 서평을 쓰니 마음이 벅차다. 나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이는 명백한 진실이다.이제 <1987>을 보는 일만 남았다. 아는 만큼 보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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