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죽으러 갑니다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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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란 아무도 나의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곳,
나의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이다. - 허경,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中 


'사회적인 동물'인 사람은 삶의 이유와 존재 가치를 관계 속에서 찾는다. 만약 아무도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옥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물다섯의 기초생활수급자 태성은 기억을 잃은 채 어느 병실에서 깨어난다. 그가 가진 유일한 기억은 자신이 자고 있는 사이에 번개탄을 태우고 도망친 부모의 모습이다. 퇴원 후 판자촌에 들어가 기초수급생활비로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태성. 그는 철저히 혼자다. 가족도, 친구도, 살아갈 이유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반 자살 카페 '더 헤븐'을 발견한다. 카페 운영자 '메시아'의 제안에 따라 동반자살 계획에 합류하는 태성. 약속 장소에서 그는 운영자 메시아를 비롯한 카페 회원 네 명과 마주한다. 헌데 '메시아'라는 자가 수상하다. 그는 그곳에서 회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데, 바로 닷새간 죽음을 미루는 대신, 자신이 회원들에게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최대치의 행복을 제공하겠다는 것.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회원들은 찜찜함 속에서도 메시아의 솔깃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루, 이틀, 사흘 ... 목적을 잊은 채, 메시아가 제공하는 온갖 호화로운 음식과 안락함 속에 안주하는 회원들,,,


그리고 닷새가 지났다.
그들은 몰랐다. 그 행복의 끝에는 지옥보다 더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정해연 작가의 신작 <지금 죽으러 갑니다>는 지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부모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태성, 성폭행을 당한 후 이어진 2차 가해로 고통받아온 민서라, 지독한 왕따를 경험한 최린 등 등장인물 모두는 각자의 이유로 죽고자 한다. 그런 그들에게 삶의 의욕을 준 것은 메시아가 제공하는 행복(온갖 호화로운 음식과 안락함)이 아니었다. 그들을 살고자 만든 것은 극한의 상황에서 피어난 연대의식이었다. 본 소설은 공포, 추리, 스릴러 등 장르소설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작가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결국 '삶의 진정한 의미'이다. "아무도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나의 마음을 들어주지 않는", 즉 '단절'이 지옥이라면, 천국은 '연대' 혹은 '공감'이다. 나를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작가는 이 황홀한 지옥도를 통해 역설적으로 천국을 이야기하고 있다.


간만에 잘 짜인 추리 스릴러 한 편을 보았다. 개연성 있는 드라마, 스피디 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전개, 디테일한 공간 및 심리 묘사가 일품이었다. 덕분에 나는 작가가 안내하는 소설 속 상황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었다. 81년생 젊은 작가 정해연. 그의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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