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의 정수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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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700년대 후반부터 180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에세이스트 윌리엄 해즐릿의 세 번째 에세이집이다. 
비평가, 종교, 곡예사, 재력, 인격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깊이 탐구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의 날카로운 통찰과 단단한 고집이 느껴진다. 그 만의 색깔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300년 전의 인물이 쓴 글에 공감이 된다는 것은 저자의 뛰어난 통찰 때문일까, 인간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일까. 책 속에서 그려지는 당대의 상황을 현실에 대입해도 그다지 이질적이지 않다. 무엇보다도 글에는 개인적인 감정과 사유의 결이 짙게 묻어나, 독자가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다. 해즐릿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낯설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다만 각주 읽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린다.)

「진부한 비평가에 관하여」, 「온화한 사람의 두 얼굴」 부터 「병상의 풍경」까지의 이야기는 읽는 이의 상황에 따라 와닿는 글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돈 문제로 마음이 복잡할 때는 「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에 쉽게 이입할 수 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과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빌려만 쓰는 사람의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여전히 현실적이다. 또한 재능이나 예술에 대한 고민이 깊을 때는 「인도인 곡예사」가 새롭게 읽힌다. 인간의 능력, 표현, 한계에 대한 사유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해즐릿의 글은 철학적이면서도 현실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도 문체는 절제되어 있고, 때로는 서늘한 통찰 속에 잔잔한 감정이 스민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생각이 많아지는 가을, 천천히 읽기 좋은 인문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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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인류
이상희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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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류의 역사를 탐구해온 고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일상의 풍경을 바라보는 에세이다.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가 자신의 삶 속에서도 그 긴 시간의 흔적이 담겨 있음을 이야기한다. 담담하게 인생을 돌아보는 문장들 사이에서는, 치열했던 순간들을 지나왔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고인류학자이자 아시아인 여성 최초의 교수의회 의장으로 이방인, 유색인종, 여성, 어머니와 같은 소수자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미국 학계에서 연구자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여성 과학자로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을지 글을 통해 느껴진다. 

오랜 시간 고고학과 함께 해 온 그의 삶은 다양한 정체성과 학문이 뒤섞여 인류의 역사의 일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개인의 경험과 학문적 통찰로 자연과 본능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인류의 긴 역사에 함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고뇌와 고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을 덮고 나니,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곧 역사의 한 조각이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사소하지만, 그 사소함이 모여 인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저자의 시선은 과거를 향하지만, 그 끝에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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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는 철학
문성훈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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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고 하면 늘 일상과 동떨어진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의미는 있지만 실생활에 적용하기는 어렵고, 철학가의 이론과 주장했던 시대와 지금은 너무 다르다는 거리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철학이 내 삶과 일상에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삶인지', '나를 괴롭히는 고민과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철학의 시선으로 해법을 제시한다. 
나는 자기 삶을 능동적으로 사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을 수 없었다. 나 자신조차 사회에서 정한 생애주기에 맞춰, '이상적인' 길을 그저 따라가려 했을 뿐, 다른 선택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망한 기분이 밀려왔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을 선택해도, 기쁘지 않았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배운 적도, 스스로 고민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나에 대해 몰랐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 책에는 나처럼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철학자들의 사유를 통해 마음을 치유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 나은 삶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오래전 철학자들이 남긴 말이 아직 삶을 관통한다는 것이 놀라웠고, 소개된 책들을 읽으며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조금은 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또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겨낼 힘과 현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주었다. 
마음이 힘들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를 멈출 수 없거나, 인생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사람, 또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철학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문장과 문단 사이에 인과와 담긴 의미를 놓칠 때가 많았다. 설명이 추가되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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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쓰, 웁쓰 - 비움을 시작합니다
미깡 외 지음 / 에피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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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중에서 가장 버리기 꺼려지는 것은 음식물 쓰레기가 아닐까. 시간이 지나며 각기 다른 음식물들은 하나가 되어 냄새를 내뿜고 금세 축축해진다. 먹을 때만 해도 즐겁고 행복했던 것 같은데, 먹고 난 뒤에 남은 쓰레기들은 왜 기피 대상 1순위가 되는지. 코를 막고 쓰레기를 버리며, 어딘가 닮아있다는 생각했다. 행복하고 즐거운 것은 한순간이 되어 날아가 버리고, 싫어하고 우울하고 기분 나쁜 것들은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음식물 쓰레기(음쓰)는 내 감정과도 닮아 있었다. 1인가구에게 음식물 쓰레기 봉지가 가득 차기까지 꽤 시간이 걸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묵혀 두게 된다. 감정도 이처럼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묵히고 묵혀 최초의 모습을 생각할 수 없어질 때 냄새처럼 터지고 만다.

이 책은 이렇게 음식물 쓰레기에 얽혀 있는 이야기를 엮었다.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 다양한 생활을 엿보고 음식물 쓰레기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버리는지, 감각 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지난주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만 생각하면 음식을 즐기기 어렵고 먹는 것만 생각하면 순간의 즐거움과 긴 쓰레기와의 사투를 견뎌야 한다.(<지금, 분쇄 중입니다>) 적절한 채움과 비움을 통해 먹는 것을 감각 할 줄 알아야 한다.(<정서적 비움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음식은 먹어 치우는 것이 아니듯이 어떻게 먹고 어떻게 처리하고 어떻게 즐길 것인가. 비단 음식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감정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떻게 남김없이 감정을 소비할 수 있을까. 하나, 하나 살뜰히 아끼는 저자를 보며(<음식을 대하는 자세> 나의 감정을 소중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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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수집가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윤시안 옮김 / 리드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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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기 어려운 밀실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인물, '밀실수집가'. 그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등장하고, 사건을 해결한 뒤에는 말없이 자취를 감춘다. 그가 누구인지, 어떻게 등장하고 사라지는지, 어느 시대에서 활동하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다만 공통적으로 전해지는 건, "콧날이 오뚝하고 눈꼬리가 길며 눈빛이 맑은" 외모를 가졌다는 점뿐이다. 이 신비로운 묘사는 인물의 존재 자체를 더욱 비현실적이고 매혹적으로 만든다.

이 책은 1937년부터 2001년까지 총 다섯 개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연작 단편집이다. 각각의 이야기에는 밀실이라는 동일한 소재가 등장하지만, 그 시대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 구성된 트릭이 모두 다르다. 문이 잠긴 채 내부에서 시체가 발견되거나,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 심지어 열쇠가 피해자 위에 올려져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도저히 누군가 범행을 저지를 수 없을 것만 같은 설정들이 이어진다. 이런 사건들만 놓고 보면 마치 불가능 범죄처럼 느껴지지만, 밀실수집가가 등장하는 순간 정교하게 짜인 트릭이 하나씩 밝혀지고, 금새 해결된다. 

요즘의 현실에서는 밀실이라는 설정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진다. 휴대폰, CCTV, 블랙박스, 위치 추적 기술 등으로 사적인 공간조차 완전히 차단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 책에서 다루는 고전적인 미스터리 설정이 반가웠다. 각 시대의 기술 수준과 사회 분위기를 이용해 트릭이 성립되고, 그것이 설득력 있게 구성된 점이 흥미로웠다. 실제로 가능했을까 싶은 지점도 있지만, 미스터리 장르의 묘미는 결국 그 상상력과 개연성 사이에서 탄생하는 긴장감에 있다.

모든 수수께끼는 풀렸지만, 정작 밀실수집가는 미스터리로 남아 거대한 미스터리로 남은 책이었다. 자극적인 이야기에 지친 독자들에게 문제를 푸는 쾌감과 순탄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흐름이 즐거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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