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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수집가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윤시안 옮김 / 리드비 / 2025년 8월
평점 :
풀기 어려운 밀실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인물, '밀실수집가'. 그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등장하고, 사건을 해결한 뒤에는 말없이 자취를 감춘다. 그가 누구인지, 어떻게 등장하고 사라지는지, 어느 시대에서 활동하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다만 공통적으로 전해지는 건, "콧날이 오뚝하고 눈꼬리가 길며 눈빛이 맑은" 외모를 가졌다는 점뿐이다. 이 신비로운 묘사는 인물의 존재 자체를 더욱 비현실적이고 매혹적으로 만든다.
이 책은 1937년부터 2001년까지 총 다섯 개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연작 단편집이다. 각각의 이야기에는 밀실이라는 동일한 소재가 등장하지만, 그 시대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 구성된 트릭이 모두 다르다. 문이 잠긴 채 내부에서 시체가 발견되거나,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 심지어 열쇠가 피해자 위에 올려져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도저히 누군가 범행을 저지를 수 없을 것만 같은 설정들이 이어진다. 이런 사건들만 놓고 보면 마치 불가능 범죄처럼 느껴지지만, 밀실수집가가 등장하는 순간 정교하게 짜인 트릭이 하나씩 밝혀지고, 금새 해결된다.
요즘의 현실에서는 밀실이라는 설정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진다. 휴대폰, CCTV, 블랙박스, 위치 추적 기술 등으로 사적인 공간조차 완전히 차단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 책에서 다루는 고전적인 미스터리 설정이 반가웠다. 각 시대의 기술 수준과 사회 분위기를 이용해 트릭이 성립되고, 그것이 설득력 있게 구성된 점이 흥미로웠다. 실제로 가능했을까 싶은 지점도 있지만, 미스터리 장르의 묘미는 결국 그 상상력과 개연성 사이에서 탄생하는 긴장감에 있다.
모든 수수께끼는 풀렸지만, 정작 밀실수집가는 미스터리로 남아 거대한 미스터리로 남은 책이었다. 자극적인 이야기에 지친 독자들에게 문제를 푸는 쾌감과 순탄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흐름이 즐거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