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카페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변화를 성공시키는 리더의 자세

세종은 정복 군주나 왕조를 중흥한 군주에게 쓰이는 묘호다.
북방 개척이 이루어졌다고 하나 정복 군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국한지 7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왕조를 중흥하였다는것은 어불성설이다.
후일 문종이 된 새 임금이 문종이라는 묘호가 적합하다는
신하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세종이라는 묘호를 고집하면서
세종이라는 묘호를 쓰게 된다.
묘호 탓인지는 몰라도, 조선은 향후 이렇다 할 전성기 없이 쇠락하고 마니,
세종이라는 묘호를 쓴 것이 선견지명인지도 모른다.
세종의 최대 업적은 훈민정음일 것이다.
오랫동안 언문이라며 지식인들의 천시를 받았지만,
한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세종이 역사적 업적을 남기게 된 긴 원인과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를 선택한다.

1장 법고창신法古創新
명나라의 그림자를 벗어나 조선만의 언어를 세우다 에서는
훈민정음은 문자를 독점의 성벽을 무너뜨린 권력의 사건이다.
백성의 무지 위에서 지식을 가진 극소수가 나라를 쥔 구조는
밑바닥부터 무너진다.
쉬움은 혁명이다.
어려워야 소수가 지식을 독점할 수 있다.
어려움은 권력자가 애써 유지하는 상태다.
백성은 자기 말을 기록할 수단이 없었을 뿐이다.
남의 문법으로 자신의 성과를 정리하지 마라.
조선의 소리를 담을 수 있는 조선의 문자는 독립이다.
쉬움은 기득권을 무너뜨린다.
쉬움은 조용하지만 가장 확실한 혁명이다.
반대는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온다.
문자가 쉬워지는 순간 지식이 흘러내리고,
지식이 흘러내리는 순간 자신들이 서 있는 자리가 흔들린다.
실력 없는 자의 분노는 소음이 된다.
실력 있는 자의 분노는 판결이 된다.
반대가 거셀수록, 그것은 이미 판을 흔들고 있다는 증거다.
반대를 무시하지도 않고, 반대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반대를 자신이 어디에 도달했는지 알려주는 이정표로 읽는다.
관습은 편하다.
관습은 아무런 저항 없이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당신이 스스로 검증한 적 없는 방식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당신의 삶과 어긋난다.
실패의 책임까지 짊어지겠다는 각오 위에서만 자기 방식이라는 것이 가능하다.
새로 세우는 일은 다수의 동의를 얻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뢰할 수 있는 소수와 먼저 완성한다.
존재하는 결과물의 증명 앞에서 반대자는 무력해진다.
무능한 다수의 동의보다 탁월한 소수의 독단이 낫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세상은 결국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문자는 도구이다.
용비어천가는 새 문자가 처음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무대다.
왕실의 권위를 문자 안에 심어두면, 사대부의 반대는 무력해진다.
반대는 논리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결과물이 압도적이면, 반대는 자신이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된다.
낯설지 않은 것은 곧 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자연스러운 것은 결국 정당한 것이다.
굴복은 성과의 크기와 성과를 세상에 스며들게 하는 설계자의 정교함이
함께 만들어내는 결과다.
자신의 시대를 만드는 설계자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세상의 손에 쥐어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2장 지인지감知人之鑑
노비부터 정적까지, 사람의 쓰임새를 완벽히 통제하다 에서는
국가에 필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곁에 두고, 흠은 통제의 재료로 삼는다.
사람은 자기의 약점을 아는 사람 앞에서 가장 약해진다.
도덕적 완벽함을 요구하는 대신, 결함을 아는 상태로 능력을 취한다.
결함을 세상에 흘리는 자는 사람을 소진시키지만,
결함을 자기 안에만 두는 자는 사람을 붙들 수 있다.
세상은 도덕이 완벽한 사람들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능력이 있는 자는 능력으로 사람을 고른다.
신분을 무시하고 능력을 존중한다.
능력이 결과를 만들지 못하면, 그 사람의 자리는 사라진다.
신분과 출신을 따지는 것은 판단할 능력이 없는 자의 비겁한 도피다.
기회에는 대가가 붙는다.
세종은 사람을 정확히 사용한다.
정확한 사용에는 파격이 있고, 정확한 사용에는 폐기도 있다.
세종이 준 것은 신분의 파괴가 아니다.
그가 준 것은 결과라는 새로운 신분이다.
인간은 논리로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은 감정의 부채로 움직인다.
상급자가 인간으로서 알아봐주었다는 감각이 만들어 내는
부채 의식이야말로 가장 오래가고 가장 벗어나기 어려운 결박이다.
스스로 지어 올린 충성은 죽을 때까지 무너지지 않는다.
선의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무게를 만드는 것은 나를 위해 자신의 무엇을 내려놓았는가 하는 감각이다.
도구를 명령으로 부리지 않는다.
도구가 스스로 왕의 손이 되고 싶어 하도록 만든다.
통치의 극한은 상대가 자기 발로 걸와와 자기 손으로 자신을 바치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반대파의 입을 닫게 만들기 위해서 논리로 설득하지 않는다.
논쟁으로 이기지 않는다.
상대를 자신의 판 안으로 끌어들인다.
상대의 능력은 취하고, 상대의 약점은 목줄로 삼고,
상대의 부채감은 충성의 연료로 바꾼다.
원한을 재료로 쓰고, 상처를 계산에 넣는 것은 설계자의 경지다.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계산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설계자의 냉정이다.
원칙이 조이는 만큼, 융통이 푼다.
부하들 간의 충돌을 설계하는 균형의 미학이 단순한 방임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원칙주의자는 원칙의 자리에서, 융통가는 융통의 자리에서 최대치를 낸다.
두 힘 사이에서 최종 결정자로 남는 것은 우아하고 잔혹한 권력 유지 기술이다.
의심은 감추고 신뢰는 계산해서 베풀어라.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평팽하게 맞서게 하라.
3장 분골쇄신粉骨碎身
무너지는 육체를 딛고 기어이 압도적 결과를 빚어내다 에서는
몸을 아낀다는 명분 아래에서 인생은 조용히 미뤄진다.
도구는 아껴 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쓰는 것이다.
아껴 쓰다가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 도구는 실패한 것이다.
학대는 자기를 파괴하려는 마음에서 나오고,
운용은 자기를 사용하려는 결심에서 나온다.
몸은 아껴서 남기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써서 남기는 것이다.
육체의 감각을 하나씩 잃으면서, 오히려 정신의 밀도를 하나씩 높여간다.
잃는만큼 채우고, 무너지는 만큼 세운다.
위대한 성취는 균형 잡힌 삶에서 나오지 않는다.
후대에까지 남는 것들은 언제나 균형을 넘어선 어떤 지점에서 태어난다.
몰입은 조건이 무너질 때에도 계속되는 것이다.
눈이 감기는 그 순간에도 놓지 않을 것을 아는 사람만이,
자기 육체보다 오래 남을 것을 만들 수 있다.
실력은 반복에서 나온다.
조건이 완전히 갖춰진 뒤에 시작하려는 사람은 영원히 시작하지 못한다.
극한의 제약이 오히려 집착을 벼린다.
밖에서 주어지는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진다.
백 번 반복해 내 몸에 새긴 것만이 남은 생을 결정한다.
안 된다는 문장 뒤에는 대부분 다른 진실이 숨어 있다.
감정을 요구하지 않고 조건을 바꾸는 것이 사람을 움직이는 냉정한 방식이다.
세종의 경연은 신하를 압박하는 도구인 동시에 왕 자신을 압박하는 도구이다.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자리에는 결과가 오지 않는다.
결과는 안 된다는 말이 사라진 자리에만 온다.
재능을 아낀다는 말은 재능을 끝까지 뽑아 쓰겠다는 뜻이다.
균형은 이미 무언가를 축적한 사람의 미덕이다.
축적이 없는 사람에게 균형은 정지의 다른 이름이다.
위대함은 일에 자신을 완전히 소진한 사람에게만 열린다.
안락함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상태다.
편안한 하루가 반복된다는 것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뼈를 깎지 않는 위대함은 없다.
편안한 삶이 아니라, 태워도 아깝지 않은 대상이 있어야,
골수가 결과로 바뀐다.
4장 실사구시實事求是
맹목적 도덕이 아닌 철저한 과학과 숫자로 증명하다 에서는
논리가 부족한 자에게 도덕은 마지막 방패가 된다.
도덕적 언어는 실증적 숫자 앞에서 무력해진다.
명분의 게임 에서 숫자가 확보되지 않으면 언제나 진다.
데이터 는 감정보다 오래간다.
표본의 크기는 목소리의 크기를 압도한다.
기준표는 반드시 자기 땅 위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자기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가장 정직한 노동이다.
자기 기준표를 만드는 일은 낭만이 아니라 생존이다.
자기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자기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정직한 노동이다.
실사 구시는 실제의 일에서 진실을 구한다.
명분이 아니라 결과에서, 관습이 아니라 경험에서,
남의 책이 아니라 자기 땅에서.
지식은 서가에 있지 않다.
명분이 아니라 결과만이 세상을 실제로 바꾼다.
정당함은 결과가 나온 뒤에 저절로 증명될 것이다.
숨긴다는 것은 굴복이 아니다.
완성된 뒤에는 감출 필요가 없다.
비겁한 사람은 완성 후에도 감춘다.
설계자는 완성 전까지만 감춘다.
목표는 높게 잡되, 그 목표를 증명해야 할 시점은 스스로 통제한다.
자리로 사람을 부리는 리더 앞에서 실무자는 적당한 선을 안다.
자신보다 더 깊이 아는 리더 앞에서 실무자는 자기 한계의
끝까지 밀어붙여 내놓아야 한다.
감시는 배신당한다.
더 잘 아는 것은 무너지지 않는다.
감정이 아니라 실력이 만드는 두려움은 밀도 높은 조직을 만든다.
실력은 남을 누르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어느 선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게 막는 데 쓰인다.
실력 격차를 벌리는 일은 결국 자기 일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 돌아온다.
5장 제왕지업帝王之業
모두가 반대하는 길 위에서 홀로 역사가 되다 에서는
상대가 절대 반박할 수 없는 언어를 골라 데이터 로 만든다.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상대가 부정할 수 없는 지표를
상대의 언어로 들이미는 것이다.
어떤 결정에는 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물어야 하고,
어떤 결정에는 아무에게도 묻지 말고 밀어붙여야 한다.
기득권의 저항은 언제나 명분으로 온다.
개인의 원성이 감당해야 할 대의 앞에서는, 잠시 귀를 닫는 법도 배워야 한다.
형세를 읽는다는 것은 상대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동시에 보는 일이다.
완전한 소거는 대개 환상이다.
지혜로운 자는 자리를 비우는 대신, 그 자리에 앉는 자의 규칙을 자기가 쥔다.
감정은 담지 않고 규칙만 담는다.
반응만 하는 사람은 외로워지고, 문만 여는 사람은 이용당한다.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어야 자기 손으로 판을 짤 수 있다.
감정이 없는 자는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감정을 거세한 자는 무엇을 잃었는지 정확히 알면서 잃는다.
버겁한 자는 두려워서, 인내하는 자는 다음을 위해 삼킨다.
침묵이 토대가 될지는 당신을 세우는 당신이 세우려는 것의 토대가 될지는,
왕좌의 셈을 얼마나 정확히 했느냐에 달려 있다.
권력이란 이양하는 순간부터 누수가 시작된다.
동정은 무게 중심을 옮긴다.
동정의 자리에 앉아버리면 당신의 일정을 대신 정하고,
당신이 세운 것의 방향을 조금씩 자기들 편의대로 돌리기 시작한다.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대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손에 쥐지 못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잣대에 맞추어 밖의 언어를 조율하라.
잣대가 당신의 내부까지 통치하도록 허락하지는 마라.
세상이 정한 잣대에 순응하는 데 인생을 다 쓰면 이름은 잣대의 것이 된다.
잣대에 자신을 맞추어 잘라내는 대신 잣대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라.
잣대가 닿지 않는 자리에 자신의 시대를 연다.
세상의 잣대는 당신을 담을 수 없다.
당신을 잃은 자들이 만든 눈금일 뿐이다.
세종은 신생 국가 조선의 초기 군주다.
새로운 조직이 제대로 운영되도록 시스템 을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불안정한 국가를 안정화시켜, 오백 여년 동안 지속할 수 있는 기틀을 세운다.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는
세종의 치세를 통해 기득권의 저항 극복, 인재 활용, 지도자의 헌신,
실용주의, 리더의 자세를 다룬다.
변화는 필연적으로 마찰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내부의 기득권을 설득해야 하고,
예상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권위가 손상될 수도 있다.
변화하지 않으면 조직이 쇠퇴할 것이 명확한 상황에서도,
일부 리더 들은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 변화를 포기하기도 한다.
세종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며,
헌신적인 자세로 일하고, 명분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조선을 변화시키게 된다.
변화는 쉽지 않다.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변화를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리더 의 헌신과 희생이 없다면 변화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조선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한 세종의 리더십 은
급격한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도
유용한 방향을 제공한다.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는
조선의 변화 방향을 이끌 시스템 을 설계한 과정을 살펴보면서,
삶의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혜를 깨닫게 한다.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는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변화를 주도하도록 하면서,
자신의 시대를 열 수 있도록 돕는다.
결 과 체크카페 서평단에서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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