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카페 서평단으로서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몸과 정신에 대한 상식의 오류





상식은 구성원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은 상식을 18세까지 습득한 편견의 집합이라 일갈한다.

상식이 진실이라는 생각은 당연한 착각일뿐이다.


상식을 항상 의심해야 한다.


몸과 정신에 대한 상식의 허실을 알아보기 위해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02-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를 선택한다.






1장 잠 : 통제와 무방비 에서는


잠이 부족할 때는 몸만 둔해지는 게 아니라,

지금 괜찮은가를 판단하는 머리도 같이 둔해진다.


가드너 의 수면 실험은 사람이 잠을 얼마나 오래 참을 수 있느냐가 아니다.


무너지는 몸이 한동안 멀쩡한 척할 수 있으며,

사람이 자기 상태를 얼마나 자주, 얼마나 늦게 잘못 읽는가를 보여준다.



실바노 의 뇌를 분석한 결과,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이라는 유전병이 밝혀진다.


단백질이 잘못된 모양으로 접히면서, 주변 단백질까지 망가뜨려

뇌에서 잠을 관장하는 부위에 쌓인다.


피곤함이 잠으로 이어지는 과정 자체가 망가진 것이다.


우리가 평생 가장 믿어 의심치 않던 기능이 조용히 멈출 수 있다.

몸 안에서 무엇이 버티고, 무너지고 있는지조차, 끝까지 모를 수 있다.



몸이 움직이면 의식도 함께 있다고 믿는다.

몽유병은 자신도 기억하지 못할 행동을 이어간다.


케네스 파크스 사건의 무죄 판결은 몽유병을 정신질환이라기보다

수면 중에 벌어진 의식 없는 행동으로 본다.


사건수면은 잠든 판단하고 기억하는 기능이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는 기능만 먼저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오류는 판단이 틀렸을 때만 생기지 않는다.

때로는 판단 자체가 없을 때도 벌어진다.


인간이 자기 행동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다는 믿음은,

생각보다 불안정한 조건 위에 서 있다.



가위눌림은 많은 문화권에서 이상할 정도로 비슷한 장면을 가리킨다.


렘수면 동안 뇌는 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잠시 억제한다.

억제가 풀리기 전에 의식만 먼저 깨어나면,

정신은 또렷한데 몸은 잠들어 있는 어긋난 틈이 생긴다.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믿지만,

사실 많은 순간 현실은 감각만으로 도착하지 않는다.


우리는 먼저 보고, 나중에 해석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때로는 해석이 먼저 장면을 만들고,

우리는 그것을 본 것처럼 기억한다.



산업화 이전 서구 사회에서는 잠을 중간에 깨고 다시 자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8시간 통잠은 인공조명 등이 자리 잡은 뒤 기준이 된 방식이다.



정상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 상당수는 자연법칙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가 만들어낸 기준일 수 있다.


인간은 기준을 원래부터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 순간, 기준에서 벗어난 자기 몸을 고장 난 것으로 의심한다.





2장 기억 : 진실과 조작 에서는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는 기억이 바뀐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질문이 보이지 않은 것을 대신 채워 넣는다.

암시에 약하고, 사람마다 다르고, 쉽게 변형된 단어로,

가짜 기억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질문을 반복하면,

사람은 자기 기억 속에서 그에 맞는 장면을 찾으려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없던 일을 디테일 까지 붙여 진심으로 기억한다.

기억의 선명함은 사실의 증거가 아니다.



확신의 크기가 사실의 크기처럼 느껴진다.


제니퍼 톰슨 이 범인으로 지목한 로널드 코튼 은 중형을 선고받는다.

목격자의 잘못된 증언은 위험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기억이 또렷하다고 해서, 기억이 맞는 것은 아니다.

같은 답을 반복하는 동안 확신이 더 단단해진다.


틀린 기억 위에서도 확신은 자랄 수 있다.

확신은 진실의 증거가 아니라, 자기 오류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된 상태일 뿐이다.



셸 쇼크 는 뚜렷한 상처가 없어도 사람을 무너뜨린다.


끔찍한 일을 겪은 뒤에도 몸이 먼저 반응하고,

오래 지난 사건이 눈앞에서 다시 벌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뇌는 위험했던 순간을 일부러 더 꽉 붙잡아둔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 밀어내고 싶어도 다시 돌아온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났다고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면, 오히려 생각하는 데 애를 먹는다.


기억이 원하지 않을 때도 계속 밀려온다면,

아무것도 잊지 않는다는 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잊어야 사람은 계속 붙잡고 살지 않을 수 있다.

잊는다는 건 때로는 지나간 일을 지나간 일로 남겨두는 방법이다.



자신에게 남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텅 빈 시간 속에 놓인 것처럼 느낀다.


모든 기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훈련을 통해 몸에 익은 정보들은 남아 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한 사람이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까지 바꿀 수 있다.



나라는 감각의 자연스러움은 방금 전의 일과 어제의 일이 지금과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기억은 지금을 이어가는 데에도 필요하다.


클라이브 웨어링 사례는 방금 전의 내가 지금의 나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결이 쉽게 깨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3장 쾌락 : 욕망과 지배 에서는


뇌에는 무언가를 원하게 만드는 과정과, 실제로 좋아하게 만드는 과정이 따로 있다.


원하는 마음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고,

좋아함은 대상을 실제로 누릴 때의 만족에 가깝다.


중독은 더 이상 좋지도 않은 것을 계속 원하는 것이다.

원함은 만족의 증거가 아니다.



슬롯머신 은 결과를 일부러 예측할 수 없게 만들어 둔 기계다.


작은 보상과 완전한 실패,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결과가 뒤섞여 나온다.

보상 가능성이 거의 반반일 때, 불확실성 신호가 가장 강하다.


우리를 오래 붙드는 것들은 종종 우리를 확실하게 만족시키지 않는다.




여러 문화권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간은 의식을 흔드는 길을 찾아낸다.


의식을 바꾸려는 욕구는 인간 사회 곳곳에서 오래 반복되어온 행동이다.

수많은 사회가 금지로 행동을 억누르려 했지만 욕구가 사라진 적은 거의 없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기 의식을 흔드는 방법을 찾아왔다.

문제는 무엇에 기대고 얼마나 깊이 빠지느냐이다.



캡사이신 자극은 실제로 뜨거운 것에 닿았을 때의 반응과 닮아 있다.


인간은 타는 듯한 감각을 음식의 즐거움으로 바꿔놓는다.

매운 것을 즐기는 사람은 고통이 사라져서 즐기는 게 아니라.

자극을 그대로 느끼면서 즐긴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강도는 견딜 수 있는 한계의 끝까지 밀어붙이되,

넘지는 않는 지점에서 커진다.


사람들은 괴로운 경험 자체를 즐긴다.

어떤 불편함은 사라질 때보다, 적당히 남아 있을 때 더 강한 즐거움이 된다.


인간은 싫어하는 감각조차, 자신이 다룰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을 때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것이 좋아서 원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원하기 때문에 원할 때가 많다.


무엇을 원할지는, 종종 우리가 정한 게 아니다.

무엇을 원할지조차 스스로 고르지 못했을 수 있다.




4장 치료 : 선의와 해악 에서는


병은 저절로 좋아질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며 증상이 변하게 될 수도 있다.


몸에서 피를 빼내는 사혈은 고대 그리스 에서 기원한 주류 의학이었다.

시대의 논리 안에서 환자를 적극적으로 구하기 위한 치료는 논쟁을 불렀지만

살아나면 치료 덕분이고, 죽으면 병 때문이라는 해석이 치료법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선의와 책임감이, 틀린 치료를 더 강하게 만든다.

몸이 보내는 위험 신호를, 치료의 증거로 바꿔 읽는다.


인간은 자기 몸을 직접 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몸의 변화를 해석하며 산다.

그리고 그 해석은 자주 틀린다.


잘못된 결론이 이름을 얻고, 권위자의 입을 통과하고, 오래된 전통이 되면,

모두가 믿는다는 것은 무서운 사실이다.


로보토미, 전두엽 절제술 은 정신질환 치료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의학계는 새로운 돌파구로 받아들인다.


로보토미 는 병의 원인을 치료했다기보다, 반응과 의욕을 둔하게 만들어,

골치 아픈 행동을 잠잠해지게 했을 뿐이다.


노벨상 의 권위는 로보토미 에 의문을 품는 일을, 무지하거나 건방진 짓처럼

보이게 만든다.



현대 의학은 믿음 위에서 작동한다.


약을 찾는 몸의 목소리는, 약이 필요하다는 말로 잘못 해석된다.

중독을 치료하려던 약이, 또 하나의 중독을 보탠다.


안전한 치료제라고 믿는 순간, 약을 의심하기보다 병을 의심한다.

믿음 때문에, 위험을 위험으로 읽는 시간이 늦어진다.


약이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 위험한 것조차 안전해 보일 수 있다.




역겨움은 원시적이고, 더럽고, 제대로 된 의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벌레는 우리 기술이 아직 완벽하게 대신하지 못하는 일을 해낸다.


원시적이고 징그럽게 보이지만, 온몸의 피를 묽게 만들지 않으면서,

문제가 생긴 작은 부위에서만 피가 계속 빠져나가게 한다.


모든 상처가 항생제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각적인 불쾌함 때문에 효과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항생제가 특정 세균을 죽이는 방식이라면, 분변 미생물 이식 치료는

장 안의 균형 자체를 다시 세우려는 방식에 가깝다.


역겨움은 병을 옮길 수 있는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뜨려놓는 오래된 경보다.

어떤 치료가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판단하는 일에는 맞지 않는다.



세상에 가장 어려운 것은 원인이 바로 너라고 말하는 진실이다.


의학계가 제멜바이스 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의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죽음의 통로가 되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제멜바이스 는 원리를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다.


당연한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건 지식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해악의 원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악의 원인이 바로 나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

끝내 그 결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답이 어려웠던 것은 방법이 아니라, 방법이 가리키는 결론이다.




인간은 진실을 알지 못하지만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


사회는 상식을 진실로 여기라는 암묵적 동의를 강요한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을 의심해야 한다.


잘못된 상식이 끼친 해악은 심각하다.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02-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는

잠, 기억, 쾌락, 치료에 대한 상식의 허실을 파헤친다.


범죄, 사건, 임상 사례 등을 통해 상식의 허구성이 드러나고,

과거의 상식이 몰상식으로 바뀌는 생생한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02-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는

상식을 진실하는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상식을 맹신하면 사고를 멈추게 된다.


상식을 진실이라고 착각하면 잘못된 길을 따르게 된다.

삶이 힘들어지는 것은 잘못된 상식을 진실로 착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식이라는 미명하에 인류가 저지른 흑역사들을 들춰보면서,

진실을 찾는 삶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잘못된 상식을 따라 과오를 저지른 어리석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불편하고 괴로운 일이지만,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상식을 맹종하면서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지만,

상식을 의심하고 개선 방향을 찾으려는 선각자들의 노력 때문에

인류가 진실을 향해 나가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우리도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지 항상 돌아보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02-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에서

폭로하는 인류의 어두운 과거는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경종을 울린다.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02-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는

지식의 불완전성에 맹신하는 행동이 초래할 위험성을 깨닫고,

진리를 탐구하는 지혜로운 행동이 필요함을 깨닫게 한다.


모티브 와 체크카페 서평단에서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02-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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