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설계한 연구소 KIST - 과학으로 빚은 나라, 끝나지 않은 이야기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엮음 / 지성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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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과학기술입국의 꿈을 실현한 KIST






한강의 기적은 세계 최빈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한국전쟁으로 경제 기반이 철저히 파괴된 후진국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며 선진 제조업 국가로 변모한다.


기적은 없다.


정부는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강력한 과학기술 진흥정책을 수립하고

산업화의 기반을 마련한다.


연구개발 기반이 구축되고, 기술 개발 노력이 성과를 얻게 되면서,

제조업 강국으로 비약적 성장이 가능하게 된다.


과학기술입국의 핵심 동력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대한민국을 설계한 연구소 KIST"를 선택한다.





1부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는? 에서는


오늘날 대한민국은 선진 산업국가이며 연구개발 강국이기도 하다.


국제 원조에 의존하던 최빈국이 선진국으로 성장한 이면에는

국가전략, 연구개발 제도, 인적 자본이 결합된 치밀한 설계와

이행의 역사가 있다.


1960년대 한국은 농업국가로 과학기술 기반과 전문가 집단이 매우 열악하다.


산업화를 뒷받침하고 기술을 육성할 유능한 연구소의 등장은 국가적 과제이지만,

열악한 국가 재정으로 인해 거대 연구소를 자체 설립하기는 어렵다.


박정희 대통령은 린드 존슨 미국 대통령에게 산업기술 연구소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미국은 이를 수용하여 KIST가 만들어진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나라를 살릴 기술을 개발할 연구소가 더 중요하다라며

서울 홍릉의 임업시험장 부지를 내준다.


국내 이공계 인재 풀 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KIST 최형섭 소장은

유학을 떠나 미국과 유럽에 정착한 한국인 과학자들의 귀국을 설득한다.


출범 초기 KIST의 전략은 추격형 연구개발이다.


선진국의 기술과 정보를 국내에 들여와 산업현장에 맞게 개량하고,

정부 및 산업계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국가 전략과제들을 수행한다.


한국은 KIST를 통해 과학기술을 산업정책과 성공적으로 결합했고,

산업화의 기술적 설계 방법을 스스로 깨우친다.


과학기술은 시대적 과제와 정책적 상상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명되고, 제도화된다.

KIST는 한국이 생존하기 위해 제도를 설계하고 자원을 동원한 무대였다.



전쟁으로 국토는 폐허가 되었고, 선진국과의 격차는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한국의 선택은 연구소다.



동아시아의 고도성장한 발전국가들은 정부가 앞장서서 산업 육성 전략을 짜고,

민간 기업을 지도하며, 국가 재정을 투입해 기술개발을 밀어붙인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정책 기획력과 실행력을 갖춘 국가는

현대 산업의 복잡한 문제를 파악하고, 최적의 자원을 배분하며,

민간 부문을 견인할 수 있는 고도의 행정적 기술적 전문성을 갖는다.


성장의 중심에는 기술, 그리고 기술을 조직할 수 있는 제도와 기관이 있다.



박정희 정부는 부족한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원조와 차관을 끌어오는 동시에,

국가 연구소를 만든다는 실험에 착수한다.


정부가 직접 연구기관을 육성하는 최초의 시도가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 설립이다.



KIST는 경제개발계획에 기술적 지식을 유일하게 제공할 수 있는 집단으로

산업 정책의 기술적 싱크탱크 이자 집행관이다.


자본도 시장도 없는 정부가 기술 창출 기관부터 만든 선진적 결정은

산업화라는 불가능해 보이던 도전에 성공할 수 있게 된다.



박정희 의 베트남 파병은 군사 협력을 넘어 미국의 대외전략에 동참하면서,

원조 삭감을 막고,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1965년 이전의 실패들이 주는 교훈은 정부가 투자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파격적인 독립 모델 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형섭은 공군 장교 예편 직후 미국 노트르담 대학 박사 과정에 입학한다.

한국인 최초의 미국 금속공학 박사학위 취득은 신문에 보도될 정도로 화제가 된다.


박정희는 수출 효자 품목인 중석의 부가가치를 높이도록 기술 자문을 해준

최형섭을 눈여겨 보고 원자력 연구소 소장으로 발탁하면서,

최형섭은 본격적인 과학 관료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최형섭의 기업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통찰과 비전 에,

박정희는 KIST 설계의 중책을 맡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육성법은 연구 자율성과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보장하는

치외법권적 특례를 담고 있어 관료들은 거세게 반발한다.


박정희는 모든 반발를 무마시키며, 국가 정책의 모든 우선순위가

KIST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KIST 건물이 세워지고, 장비가 들어왔지만, 한국에는 연구소를 움직일

과학기술 인력 풀 이 거의 없다.


유능한 학생들은 더 나은 교육과 연구 환겨을 찾아 미국과 유럽 으로 떠났고,

국내에는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실험실, 장비, 연구비가 없다.


산업화에 필요한 우수 인재는 해외에 정착하고 있다는 구조적 모순에

KIST는 처음으로 돌아올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 시도다.


KIST 유치 과학자 1호 김재관 박사는 포항종합제철소 건립 계획을 수립하고,

우리나라 최초 독자 자동차 모델의 기술 자립화를 추진한다.


안영옥 박사는 프레온가스 를 개발하고, 산업계로 나가 기업연구소와

공장 설립을 주도하며, 벤처캐피털 대표를 맡아 수많은 기업들을 성장시킨다.


김훈철은 대형 조선소 건설 주장 계획을 발표하고, 정주영 회장이 결단하면서

울산의 허허벌판은 오늘날의 풍경으로 변화한다.



윤여경은 KIST 초대 경제분석실장을 맡아, 대규모 산업 프로젝트 의

타당성을 수치로 검증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부와 세계은행의 회의론을 뚫고 정책을 확정하는 데 결정적인

논리를 제공한다.


오늘날 누리는 산업 경쟁력의 상당 부분은 1세대 과학자들이 남긴

성과의 기반 위에 서 있다.




KIST는 연구의 출발점을 공장 현장에서 찾기로 한다.


산업실태조사는 한국 최초의 체계적인 기술 진단으로,

산업의 수요가 곧 연구소 운영의 방향타가 된다.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한국은 결핵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얻는다.


결핵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인 에탐부톨 은 고가다.

서독에서 귀국한 채용복 박사는 유기합성연구의 개척에 나선다.

한독약품공업의 의뢰로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타르타르산을 활용해

순수한 에탐부톨 만 효율적으로 분리해 내는 공정 개발에 성공한다.


에탐부톨 국산화로 가난한 환자들도 쉽게 결핵약을 복용할 수 있게 된다.


컬러TV 수상기, 에탐부톨, 폴리에스터 필름, 국가 행정 전산화 등

KIST의 성과는 산업의 병목을 제거하는 연구소라는 공통점이 있다.


연구 주제는 산업실태조사에서 도출되고, 연구의 완성은 공장 가동과

매출 발생으로 판단되며, 기술은 기업의 생산 라인 으로 반드시 연결된다.


해외에서 훈련받은 과학자들이 귀국해 공장 바닥과 행정 현장에서

기술을 구현하고, 모방을 넘어 응용과 축적으로 이어진다.



가난한 나라가 기술을 축적하기 위해서, 산업에서 필요한 기술을

가장 먼저 읽고, 가장 빠르게 실현하며, 기어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기술을 가장 먼저 읽고, 가장 빠르게 실현하며, 기업이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밀어준다.


KIST는 연구소가 산업을 위해 존재할 수 있음을, 국가 성장의

강력한 엔진 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공업 정책을 선언하며 중화학 부문에 자원을 집중한다.


중화학공업은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하고 회수 기간도 길다.

한국의 선택은 국가 생존에 가깝다.


닉슨 독트린 은 외교 환경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았고,

전쟁 억지력을 유지하기 위한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이어진다.



KIST의 조강 계획은 일본 조사단과 세계은행의 기술, 경제성 평가를 통과하며 구체화된다.


국내외 전문가 다수가 경제성과 기술 조건을 이유로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치밀한 설계와 신속한 실행으로 한국의 중화학공업화가 눈에 보이는 첫 성과를 낸다.



철을 가공할 설비와 설비를 활용할 산업이 동시에 성장해야 한다.


기계공업은 산업 설비를 만드는 분야이다.

KIST는 산업화에 직접 필요한 설비산업부터 구축해야 다른 산업도

성장할 수 있다는 냉정한 전략을 제시한다.


기계공업의 기반 위에서 조선업 역시 전략산업으로 부상한다.


현대가 울산에 조선소를 짓는 동안, KIST는 작동할 기술 구조를 짜놓는다.

막 철강을 생산하기 시작한 나라가, 세계 최대 규모의 선박을 건조하는 국가로 바뀐다.



자동차와 전자는 철강, 기계, 화학과 정밀 가공 기술이 결합된 고도 산업의 집약체이다.


상공부는 장기 자동차공업 진흥 계획을 수립하고, 완전 국산 자동차 생산과

대규모 수출 목표를 세운다.


포니 프로젝트 는 해외 기술을 결합한 국제 협업 프로젝트 이지만,

차량 설계와 모델 기획을 한국 기업이 주도하면서, 자동차 설계 능력을 갖춘

제조 국가로 등장한 순간이다.



KIST 연구진은 컬러 TV 수상기를 개발하고 정보통신 기술을 개발해

산업체로 이전하면서, 전자산업은 본격적 성장 궤도에 오르게 된다.



정치가 방향을 정하고 기업이 실행을 맡았다면,

연구소는 어떤 산업을 어떻게 구축할 것이라는 답을 제시한다.


거대한 변화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된다.


KIST의 역할은 산업의 구조를 설계하고 이를 정책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철저히 설계된 한강의 기적의 설계도는 KIST에서 상당 부분이 그려진다.



1970년대 중화학 공업화는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데는 성공했지만,

막대한 외채와 중복 투자라는 부작용도 낳는다.


전두환 정부는 효율과 통제를 앞세운 구조조정으로 중복 기능을 줄이고

자원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재편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찾아온 3저 호황으로 산업의 투자 여력은 빠르게 회복되고,

한국의 목표는 선진국에 빨리 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원천 기술을 확보하여

기술 주권을 세우고, 글로벌 무대에서 정밀함과 신뢰도를 증명해야 한다.



공업용 다이아몬드 시장은 미국과 영국 기업들의 사실상 독점 시장이다.


KIST 경질재료연구실의 은광용 연구진의 과제는 다이아몬드 를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합성해 내는 것이다.


고품질 다이아몬드 제작 기술을 개발하고, 일진다이아몬드가 설립되어

공업용 다이아몬드 를 국산화하면서, 글로벌 독점 시장을 무너뜨린다.



KIST 섬유고분자연구실 윤한식의 아라미드 펄프의 새로운 합성 방법에 관한 논문은

최초로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에 기재된다.


아라미드 펄프 는 안타깝게도 상업화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한국 과학기술이 세계적 독창성을 인정받은 첫 사례라는 의미가 있다.



KIST가 국산화한 광섬유 통신 기술은 1990년대 정보화의 핵심 기반이 된다.

KIST 연구자들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빠르게 실리카 광섬유 개발이 추진된다.


광섬유의 전송 손실 저감과 제작 비용의 획기적 절감 기술은

전국을 뒤덮은 초고속 정보망의 토대가 된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은 한국의 선진적 운영 능력을 검증받는 무대이기도 하다.


KIST 도핑컨트롤센터 가 직면한 과제는 가혹하지만, 한국 과학의 정밀도를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동력이 된다.


벤 존슨 의 도핑 적발 사건은 한국의 도핑 분석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공인받는 계기가 된다.


1980년대 KIST의 성과들은 기술 의존의 상태를 벗어나, 세계 표준을 논의하는 자리에

우리나라가 당당히 서는 것을 지향한다.


KIST를 둘러싼 위기 속에서 연구자들은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야 했고,

위기를 기회로 바꿔내는 데 성공한다.


KIST 연구원의 집념이야말로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기술적 주권의 실체다.


KIST가 넘어선 기술 문턱은 개발도상국의 출구를 지나 선진국의 입구에 들어섰음을

입증한 가장 명확한 징표다.



KIST의 가장 큰 국가적 공헌은 인재라고 할 수 있다.


KIST 출신 인재들은 기술을 아는 전문가를 넘어, 국가적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 있는 과학기술 리더 로 성장한다.


최형섭은 초대 소장으로 KIST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뒤,

과학기술처 장관에 취임하여 역대 최장수 재임하면서,

미완의 조직을 산업화의 핵심축으로 바꾼다.


최형섭은 조직을 혁신하고, 기초과학을 떠받치고,

연구 거점을 새로 설계하고, 법으로 굳힘으로써

오늘날 한국 과학기술 체제의 기본 골격을 만들어낸다.



김재관은 상공부 차관보로서 중화학 공업화르 주도한 이후,

한국표준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는다.


국가 표준 체계의 구축에 집중하면서 산업 전반의 품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채용복은 연수소를 산업과 직접 연결되는 곳으로 바꾸고자 한다.


정부출연연구소의 기능을 재정비하고, 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연구개발사업들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 구조조정 작업을 한다.



성기수는 KIST에서 시작된 IT 역량을 더 큰 연구기관과 산업으로 확장하며,

IT 혁명의 기반을 미리 구축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ETRI는 KIST에서 형성된 연구 주체,

인력 구성, 기술 축적이 그대로 이동하면서, 일정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춘 상태로 출발한다.


KIST에서 시작된 IT 역량은 ETRI를 거쳐 한국 정보통신 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KiST는 연구소가 계속 만들어지는 방식을 남긴다.


한 기관에서 축적된 기술과 경험이 다른 기관의 출발점이 되는

구조 속에서 과학기술은 서로 얽히며 증폭되어 간다.





2부 KIST, 예순 고개를 넘기까지 에서는


KIST의 역할은 국가에 도움이 되는 연구 성과를 넘어, 산업계 필요한 연구를 포착하고,

도움이 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KIST는 연구소의 역할을 여러 기업체에 알리고 홍보하는 데 힘쓴다.

KIST는 연구비를 지원해 주는 기관이나 단체에 자신의 연구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계속 설득하는 영업을 병행해야 한다.


해외에서 연구 개발을 해왔던 과학기술자들은 KIST에 입사하면서

자신의 주전공과 완전히 들어맞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연구비를 수주할 수 있는 연구 주제를 발굴해 나가야 한다.



석유 파동으로 한국 경제가 침체기를 겪던 시기에,

KIST의 연구 프로젝트 는 해외에 의존하던 물질을 국산화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세라믹 소재는 반도체 소재로 활용되거나 화학산업 공정에서 중요한 소재로 활용된다.

내화성 용기인 내화갑 기술의 국산화는 세라믹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더 나아가 새로운 첨단 소재 개발까지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이다.


내화갑 기술이 남해요업으로 이전된 이후에도, KIST 요업재료연구실에서

이루어진 추가 연구도 계속 남해요업으로 이전된다.


KIST와 고려애자공업의 협력은 국가 차원에서도 큰 주목을 끈다.


KIST의 세라믹 기술 개발사는 KIST가 기업을 직접 출자한 사례와

축적된 기술적, 인적 역량이 다른 기업과의 또 다른 형태의 연구개발의

밑거름이 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산업이 성장할수록 수요는 늘어나는데, 핵심 물질은 대부분 해외에 의존해야 한다.

화학 공정을 설계하고 대규모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역량 자체가 부족하다.



불소 화합물 제조공정 개발은 이후 더 넓은 산업적 성과로 이어진다.


KIST는 CFC 연구를 통해 화학제품의 국산화, 파일럿 플랜트 구축,

기본 설계와 상세설계, 공장 건설, 시운전, 품질관리까지 이어지는

공업화 경험을 축적한다.


CFC가 환경 규제의 대상이 되면서 불소 화학 연구는 계속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한다.



광섬유 기술은 기업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지만, 광섬유 개발에 대한

노하우 와 기업과의 네트워크 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KIST의 기업화, 상업적 역량을 평가할 때 기업화한 기술의 숫자,

그 기업이 거둔 수입 등의 지표 이외에도 다양한 맥락이 더 고려되어야 한다.



KIST와 기업의 협력은 호혜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KIST와 기업의 협력은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의해서만 유지되었던 것은 아니다.

서로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여러 성과는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KIST와 기업 간 협력이 기업과 연구소가 성장하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서로의 인력을 빼앗는 영입전의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기업과 연구소의 협력은 서로의 존중과 신뢰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성기수의 귀국은 한국 전산화의 시작과 궤를 같이한다.


기술 도입 이전에 사고방식의 전환부터 시도한다.

산업과 행정을 계산 가능한 문제로 바꾸는 작업이다.


공정은 경험이 아니라 데이터 로 관리되어야 하고,

최적화는 직관이 아니라 수학으로 계산되어야 한다.


산업 운영의 핵심이 사람의 감에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컴퓨터 를 도입하여 국가를 하나의 계산 가능한 시스템 으로 바꾼다.

디지털 혁명의 출발점에는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정의한

한 과학자의 선택이 있었다.



채영복은 한국 산업이 어느 분야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외국 기술과 자본에 종속되는지 냉정하게 파악한다.


채영복은 개별 기술의 성공보다, 산업 전체로 확장한다.


과학자로서 실험실에만 있지 않고, 정부를 직접 설득해 하나의 사업군을

정책 의제로 확장한다.



좋은 연구는 산업으로 이어져야 하고, 산업으로 이어진 경험은 다시 정책이 되어

더 큰 연구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KIST맨 은 연구-산업-국가를 하나의 연속된 흐름으로 이해하고 설계한다.

기술을 국가의 작동 방식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재 유형을 가리킨다.



동료 연구자와의 협력은 KIST 과학기술자들이 연구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각자 바삐 연구를 수행하면서 경험한 어려움과 고민은 때로 연구하는 분야가

다른 연구자와의 대화로 해소되는 면이 있다.


KIST 내에서의 연구 활동은 부족한 기술력과 인프라 를 채워나가는

구성원 사이의 협력 속에서 가능하다.



정부는 KIST를 대덕연구단지로 이전하는 계획을 언론에 발표한다.


KIST출신 연구원들은 홍릉에 남아 있기를 원하고, KAIST 원장에게

대전 이전에 대한 반대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안한다.


KIST와 KAIS의 갈등속에서 과학기술자들은 연구소의 상황을 직시하고,

각자의 연구 활동에 이점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개진한다.



KIST의 연구원들은 한국만의 연구개발 모델 및 개념을 고안하는 일도 맡는다.


KIST는 각 과학기술 분야에 혁신을 위한 연구 기능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국가 전반의 과학기술을 설계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도 한다.


설립 초기부터 독립채산제를 실시한 KIST의 경영 구조상,

연구자들이 연구과제를 수주하는 업무와 성과는 과학기술 관료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다.



KIST의 첫 세대 과학자들은 불확실한 선택을 붙들고,

하나씩 현실의 답으로 바꾸어간다.


국내 최초를 목표로 삼던 연구가 아니라, 세계가 풀지 못한

의료 난제에 앞서 답을 제시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추격형 연구는 모방에 그치지 않고, 이해하고, 고치고,

다시 우리 산업과 사회의 조건에 맞게 바꾸는 힘이다.


KIST는 연구가 산업으로 이어지는 방식을 만들고,

기술이 정책을 견인하고, 정책이 기술을 뒷받침하는

국가혁신의 선순환 구조를 남긴다.


KIST의 임무중심연구는 KIST가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국가 사회적 문제를 정의하고 임무 달성에 필요한 사람과 장비,

예산을 집중하는 새로운 연구 방식이다.


일곱 개의 프로젝트 는 지난 60년 동안 KIST 안에 쌓인

사업화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한 결과물이다.


누군가 미래를 믿고 씨앗을 심는다면, 언젠가 삶을 바꾸는 힘이 된다.

KIST는 시대가 요구한 거룩한 사명 앞에서 답을 찾아 나아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


종자가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한다.

당장 배가 고파도 씨앗을 남겨두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한국이 오늘날의 발전을 이루게 된 것은 후진국 시절에

후세를 위한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KIST는 과학 불모지인 한국에서 국가 전략 과제를 개발하고,

중화학공업화의 기반을 기획한다.


KIST의 역사는 한국 산업화의 역사이기도 한다.



"대한민국을 설계한 연구소 KIST"는 KIST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한강의 기적의 실체에 다가서게 한다.


KIST에서 한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수많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인재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KIST의 탄생과 기술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에피소드 들은

한국의 고도성장기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한국인은 근면성실하고 강한 성취동기를 가졌지만,

현재는 감투정신이 사라지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인적자원 외에 별다른 부존자원도 없는 한국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한국은 산업화 시대에 투자한 산업을 기반으로 현재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미래 신산업을 개발하지 못하면서 성장이 침체된 상황이다.


일부 반도체 외에는 세계를 선도할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반도체 전망이 불투명해지자마자 주식시장이 폭락한 현 상황이 잘 보여준다.


가난한 한국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힌 KIST의 도전과 발전의 이야기는

현 시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


재도약할 기회를 잡지 못하면 한국의 몰락은 시간 문제다.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과학기술 확보에 필요한 골든타임 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대한민국을 설계한 연구소 KIST"는 한국 과학기술 개발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한국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잡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지성사 와 컬처블룸 서평단에서 "대한민국을 설계한 연구소 KIST"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지성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대한민국을설계한연구소K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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