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역사 - 파동의 문명사, 소리가 인간을 발명한 방식
황원철 지음 / 어깨위망원경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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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 시각으로 본 음악의 역사







책을 선택한 이유


소리는 사람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음파를 말한다.


인간은 소리를 음악으로 발전시키며 예술로 승화시킨다.

음악의 변천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소리의 역사"를 선택한다.





"소리의 역사"는 음악의 과거와 현재의 발전사,

현대 음악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다룬다.





몸이 낸 소리는 도구를 부르고 도구는 기술을 부른다.


음악의 형식화는 공연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낳는다.

녹음은 시간을 포획하고, 라디오 는 공간을 초월하는 매체다.


디지털 혁명은 창작뿐 아니라 재창작의 문도 활짝 연다.

AI는 새로운 창작의 동반자로 등장한다.


악기의 등장은 음악의 공유와 확산을 촉진한다.

악기는 음악을 개인이 아닌 모두의 자산으로 바꾼다.


음악의 규범은 문화의 근간과도 같다.


모드 마다 고유의 정서적 색채와 윤리가 깃들어 있다.

음악가들은 모드 의 울타리 안에서 작은 변주와 선율의 뒤틀림을 시도한다.


각 음악 체계가 품고 있는 것은 세계를 지각하는 특별한 방식이다.



악보, 음악을 문자로 기록하는 발상은 태초부터 인간을 유혹해 온 꿈이다.


귀도 다레초 가 4선 보표와 계명창법을 정립하자,

악보는 노래를 표준화하고 단일한 권위를 부여한다.


14세기경 발전한 기보법은 다성음악의 꽃을 피우게 한다.



악보의 대량 인쇄는 소리의 복제 시대를 연다.

음악은 출판물이라는 형태로 문화 상품이 되어간다.


조율법의 변화는 인류의 사고방식과 감각의 재훈련과도 맞물려 있다.


화음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화성은 연속된 시간 속에 펼쳐진다.


거대해진 관현악 앞에서 독주가가 극한의 기교를 완벽히 소화하면

청중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다.


질서는 완벽함 속에서 서서히 새로운 가능성의 싹을 잉태한다.


다성, 조율, 화성, 협주의 질서들은 다음 변곡점을 예비하며 흔들린다.

질서는 태어나고, 붕괴하고, 또 탄생한다.



콘서트홀 은 음악이 시민의 공공재가 되는 상징이다.


공공성과 상업성의 변증볍은 음악이 공공의 장으로 이동한다.

공연장의 표는 영수증이자 여권이다.


콘서트홀 은 일종의 기계다.

음악의 성스러움은 작품의 권위를 보존하고, 음향을 보호하지만,

동시에 관객의 신체를 지나치게 옥죄는 양날의 칼이다.


공연의 산업화는 직업의 분업을 낳는다.


지휘자의 손끝에는 산업화된 음악의 초상이 보인다.


흥행사는 레퍼토리 를 고르고, 시기를 계산하고,

스타를 섭외하고, 스폰서 를 설득한다.


평론가는 관객의 취향을 부호화하고 래퍼토리 의 캐논 을 공인한다.


공공재가 된 음악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통행이 제한된다.



복제는 균질화를 동반한다.


녹음은 최적의 연주를 고정하고, 공연은 최적에 맞춰 측정된다.

스트리밍 은 알고리즘 을 무대 관리자에 임명한다.


공공성은 접근성의 문제이자 존중의 기술이다.

소리의 민주주의를 완성하며, 공공 콘서트 는 도시에 대한 배려의 합계다.


비평은 박수 소리의 반대편에서 환호의 음영을 헤아리고

침묵의 윤리를 따져 묻는다.



녹음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음악은 반복 가능한 사물이 된다.


3분짜리 팝송은 예술적 선택이 아니라 기술적 강제의 산물이다.


무대에서는 실수해도 되지만, 축음기 무대에서는

티끌만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녹음이 범람할수록 현장성의 아우라 는 더 귀해진다.




라디오 가 일상 공간의 음악화로 가정을 변화시키며,

음악과 인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한다.


현대 음악 스트리망 서비스 알고리즘 의 원형은

라디오 의 로테이션 시스템 에서 찾을 수 있다.


상업 라디오 시대의 대중음악은 2분 내외의 압축된 드라마 가 되어야 한다.

작곡가들은 3분 안에 기승전결을 완성해야 했고 대중음악의 황금 공식을 탄생시킨다.



라디오 청취는 혼자 듣지만 동시에 함께 듣는 모순적인 경험이다.

라디오 는 노스텔지어 를 산업화한 최초의 매체이다.



알고리즘 에 지친 사람들은 인간 DJ의 예측 불가능한 선곡을 그리워한다.

개인화된 플레이리스트 에 고립된 사람들은 공동체적 경험을 갈망한다.


라디오 가 남긴 유산들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현대 대중문화의 근본적 역설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대중적인 것이 되고,

가장 친밀한 것이 가장 소외된 것이 된다.



앰프 는 권력의 기술이다.

라우드니스 표준화는 더 이상 음량 경쟁을 보상하지 않도록 만든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은 침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뮬레이션 한다.



음악이 태어나는 스튜디오 는 더 이상 특정 장소에 귀속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플러그인 으로 누구나 음악 작업이 가능하다.


MIDI, DAW, MP3,는 물리적 공간을 붕괴시키고,

음악가를 창작과 생산, 유통의 모든 과정을 관장하는 고독한 우주로 만든다.



음악 제작 방식의 변화는 음악의 내적 구조와 미학적 문법까지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제작 도구의 민주화는 미학의 위계질서마저 전복시킨다.


음악가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이자 브랜드 매니저, 디지털 마케터 가 되어야

생존할 수 있다.


홈스튜디오 의 발전은 음악 창작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춘다.

음악 제작은 더 이상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모든 이가 동일한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경쟁하는 환경은

새로운 도전과제도 낳는다.


음악 제작 도구의 민주화는 DIY 음악 미학의 부상을 의미한다.


모두가 과잉 경쟁에 내몰리고 정글화된 시장에서

스스로를 브랜딩 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기술 발전이 샘플링 기법의 확산을 가속하면서,

누구나 다양한 소리를 혼합해 독창적 트랙 을 구성할 수 있다.


샘플링/리믹스 문화의 가장 큰 의의는 음악사의 과거와 현재를 융합하여

혁신적 재창조를 이뤄낸다는 점이며, 음악의 다층적 향수와 미래지향적

실험이 공존하게 된다.


플랫폼 차원에서 표준화된 미세 권리 관계가 구현된다면

원 저작자와 신작자 사이의 갈등도 크게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앨범 시대의 정점에서 아티스트 는 청자의 시간 경험을 완전히 통제한다.


MP3는 앨범이라는 견고한 건축물의 구조를 완전히 해체한다.

견고했던 앨범 의 구조는 개별 곡 단위로 분해된다.


스트리밍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며 앨범 이라는 형식을 통해

거대한 서사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스트리밍 시대의 음악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알고리즘 이라는 유령이다.


협업 필터링, 콘텐츠 기반 필터링이 작동 원리이며,

플랫폼 의 상업적 이익 극대화가 목적이다.



음악이 재생되는 맥락과 환경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공간음향의 몰입감과 절차적 생성의 유연성이 결합된

미래의 음악 경험은 눈앞의 세계에 맞춰 음악이 흐르는

혁신적인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호작용 음악을 작곡할 때는 비선형적인 구조를 염두에 두게 된다.


비선형 음악은 청취 경험을 보다 개인화하고 상황에 특화된 것으로 만들어주며,

동시에 음악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격상시킨다.



청중은 하나의 세계에 참여하고 탐험하게 된다.


예술과 프로그래밍 의 융합은 음악 창작자와 수용자의 관계를

혁신적으로 재정립하고 있다.



인공지능 공동작곡의 시대는 창작 주체의 단일성이 용해되는 역사적 순간이다.


챵의성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의미 있는 질서를 발견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으로 재정의된다.


인공지능과의 공동작곡은 거대한 흐름의 정점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인간 창의성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지평을 확장하는 새로운 진화의 단계다.



감각의 내재화가 현실이 될 때,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를 재정의 해야 한다.


감각의 내재화를 통한 미래 음악 기술은 접근성 확대, 치유와 조절,

공공복지라는 세 가지 축에서 인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안전성, 유효성, 프라이버시 세 측면에서 신경 생체 인터페이스

음악 기술의 윤리적 설계 원칙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


음악을 듣는다는 경험의 의미 변화, 사유와 해석의 가치 등

감각의 내재화가 던지는 질문은 감각과 예술 경험을 재창조 할 때

지켜야 할 무엇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새로운 기술이 음악계에 도입될 때마다 기득권의 저항과 대항 운동이 함께 나타난다.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추진해야 할지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EU는 알고리즘 을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추진하자,

기업은 알고리즘 이 영업비밀이므로 완전 공개는 곤란하다고 반발한다.


정책과 산업 담론에서 알고리즘 을 배제하고는 음악 다양성을 논하기 어렵다.



데이터 윤리의 핵심은 투명성과 통제권이다.


음악과 기술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 알고리즘 의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한계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음악사의 각 변곡점마다 기술은 음악의 창작과 향유 방식에

도전과 기회를 함께 가져왔고, 변화지 않고 지켜야 할 가치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전자음악은 음악의 패러다임 을 바꾼 거대한 전환점이다.


컴퓨터음악의 등장은 전자음악의 자연스러운 진화이면서

동시에 근본적 단절을 의미한다.



추상적 데이터 와 소리 데이터 를 분리하여 다룰 수 있는 컴퓨터 의 능력은

음악 제작의 작업 흐름을 선형적인 연주 기반에서 비선형적인 구축 기반

모델 로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AI음악의 도래는 창의성, 예술,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핵심적인 정의에 도전하는 철학적 전환점이다.


기술은 인간의 표현 욕구를 확장하는 도구로서 기능한다.

인간과 기계가 함께 연주하는 새로운 악장이 시작되고 있다.




음악의 선구자들은 세상을 듣는 방식을 바꾼다.


우리 모두를 위한 투쟁과 창조는 인류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

선구자의 가치는 측정할 수 없고, 환산할 수 없다.




청취의 민주화는 창작의 민주화로 이어진다.



장치는 인간의 손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감각을 재편하는 구조다.

녹음은 인간의 몸을 새로운 기술적 연장으로 훈련시킨다.




음악의 경제적 생태계 변화는 음악의 내용과 형식,

음악의 사회적 인식까지 근본적으로 뒤바꾼다.



수 세기 동안 교회와 귀족은 예술의 가장 큰 손이자 유일한 투자자다.


후원 시스템은 음악이 소수의 선택된 자들을 위한 고부가가치, 소량 생산의

경제 모델 을 따랐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르네상스 시대 음악 길드 는 음악 활동의 질서를 잡고,

기술을 전수하며, 후원자와 고용주 사이를 잇는 역할을 한다.



길드 의 규제와 표준 유지는 조합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경쟁자의 진입을 막고 생산량을 조절하며, 혁신의 싹을 잘라버린다.



전통적인 후원을 떠나 자유 계약 작곡가로 뛰어들려는 시도들이 나타난다.



19세기 비르투오소 연주가들이 슈퍼스타 처럼 대중을 열광시킨 현상은

경제적 가치가 작품에서 연주가의 페르소나 로 이동함을 보여주는 전환점이다.




음반은 주문형 음악 감상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다.



20세기 음반 산업 시스템 은 과거 귀족 후원 시스템 을

기업 형태로 부활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공연권 협회의 설립은 작곡이라는 행위를 지적 재산 포트폴리오

관리라는 전문적인 직업으로 바꾼다.



인터넷 과 디지털 음악은 실용적 가치를 극대화하며

음악을 소유해야 할 필요성을 희미하게 만든다.





취향은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의 도구이다.

감각에 각인된 규칙들은 미적 판단과 사회적 위상을 은밀히 규제한다.



알고리즘 이 편안함 속에 새로운 음악을 찾아 헤매는 수고를 잊는다.

플랫폼은 이용자들의 이탈을 막고 참여를 극대화하기 위해,

주류의 상업적으로 검증된 곡들을 우선으로 추천한다.



음악 산업은 국경을 넘어 취향의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대다수의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을 만들어낸다.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찾아 나서는 일은 문화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지키는 작은 혁명이자 취향의 주권을 선언하는 일이다.




소음은 권력의 작동 방식을 드러내는 정치경제학적 힘이다.



소음을 통제하여 질서를 구축하려는 권력의 욕망은

현대 도시 공간에서 더욱 노골적이고 체계적인 형태로 발현된다.



평온함의 사유화는 노이즈 캔슬링 기술의 대중화와

웰니스 산업의 팽창이라는 두 가지 흐름을 통해 가속화된다.




알고리즘 은 끝없이 이어지는 익숙함과 유사성의 소음을 만들어 낸다.


음악과 소리의 변화는 다가올 사회의 모습을 예견하는 가장 민감한 지표다.

소음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진정한 소리이다.




리듬 은 몸에 새겨진 언어이다.



리듬 은 인간의 뇌리에 본능적으로 작용하여 심층의식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언어와 리듬 의 밀접한 관계는 리듬 을 체계화하고 개념화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리듬과 박자는 인류가 시간과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인류 문화의 심장은 리듬 이라는 고동으로 영원히 뛰고 있다.




현대는 프레임 의 시대다.



음악은 권력의 논리를 학습한 예술이다.



음악이 화면에 동기화될 때, 장면이 더 사실적이라는 착각,

더 자연스럽다는 착각을 경험한다.



대위법적 사운드 는 관객은 감독의 냉소를 빌려 자신의 불편을 정당화한다.



강렬함은 진실의 다른 이름이다.

강렬함을 비판의 면죄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음악은 우리를 지배하는 언어에서 대화하는 언어로 돌아온다.

비평은 감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음악은 완벽이라는 신화를 포기함으로써,

모든 가능성을 향해 열릴 수 있다.



음악 속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은 삶이라는 원본 자체의 고유한 서명이다.




AI는 방대한 음악 데이터 를 학습하여, 완벽한 작곡과 연주를 생성한다.


AI가 만든 음악은 뇌에 더 큰 인지적 부하를 유발한다.

보편적인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고, 미묘하고

복합적인 감성의 영역은 인간의 창작물에 미치지 못한다.




분리는 투명함을 주는 동시에 관계를 지운다.


우연성의 미덕은 노이즈 로 분류된다.

직교의 윤리와 오염의 미학은 DAW 프로젝트 안에서 어색하게 동거한다.



데이터 압축은 귀의 심리학과 푸리에 의 공학이 체결되는 지점이다.



스티브 잡스 는 음악 산업을 파괴하고 약탈한 디지털 시대의 해적에 가깝다.



잡스 의 가격 신화는 구매를 망설이는 마음의 문턱을 무너뜨린다.

애플 은 아티스트 발굴이나 마케팅 역할에는 기여하지 않는다.



깨끗함의 미학은 잘 정리된 권력의 다른 얼굴이다.





디지털 의 약속은 완벽한 복제다.

안정된 데이터 의 환상 뒤에는 끊임없는 정보 소실의 과정이 숨어있다.




시뮬라시옹 의 사회를 지배하는 시뮬라크르 는

원본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 스스로 실재인 척하는 복제물들이다.


보컬리스트 의 목소리는 오토튠 으로 초인적 정확성이 각인된다.

드러머 의 연주는 완벽한 박자 그리드 에 맞춰진다.



완벽하게 가공된 하이퍼리얼 한 음악은 완벽하게 연출된

시뮬라크르적 자아를 구축하는 이상적 재료가 된다.



디지털 음악은 실패한 복제물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예술이다.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지만, 가치는 소리와 소리 사이의 침묵,

연주와 연주 사이의 기다림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침묵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지켜내는 가장 충실한 방법이다.




물리학적으로 소리는 매질 속에서 압축과 희박을 반복하여 전파되는 종파이다.


음색의 풍요로움은 수학적 순수성을 따르는 데 있는 만큼이나,

그로부터 벗어나는 데에도 있다.



음색은 순수한 미학의 영역을 넘어, 한 사회의 권력 구조와

경제 체제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




생성형 AI는 모든 기록된 음색을 비축하고 무한히 새로운 방식으로

반복하고 재조합할 수 있는 기계의 등장으로 볼 수 있다.



디지털화되고 레이블링 된 모든 녹음된 소리의 통계적 지도이다.

AI의 잠재 공간은 글로벌 음악 문화의 왜곡된 거울이며,

대중적인 것을 증폭시키고 나머지를 소외시킨다.




알고리즘 시대에 낯선 음악을 찾아 듣는 것은 정치적 행위다.


의도적으로 알고리즘 의 제안을 거부하고 무작위로 선택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끝까지 들어본다.





취향은 결코 개인적이지 않다.


익숙함이 취향을 만들고, 취향은 사회적 위치를 고정시키는

순환을 깨뜨리는 것이 음악적 정의다.



익숙함이라는 문턱 위에 서서 한쪽 발은 과거에,

한쪽 발은 미래에 두고 우리는 현재를 산다.





노래의 정체성은 법적으로 보호 가능한 표현의 조합에 있다.


창작자 보호와 음악적 혁신의 상충하는 필요 사이에서

법은 균형을 잡으려 한다.




노래는 단순히 음표의 배열이 아니다.

연주되고 들려지고 해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인식은 무언가를 친숙한것으로 식별하는 것이다.



아는 노래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한다.


우리가 어디서 왔고, 누구를 사랑했고,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꿈꾸는지를 말한다.




라이브 의 현실감과 스튜디오 의 이상형 사이에서

궁극의 음질은 모습을 드러낸다.


적당한 잔향과 공기의 떨림이 함께할 때 음악은 가슴에 스며든다.



LP 특유의 따뜻한 음색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궁극의 음질의 기준이 선명함이나 스펙 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궁극의 음질은 소리 와 듣는 이의 영혼이 만나는 지점에서 피어나는

단 한 순간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AI는 음악을 무한에 가깝게 대량 생산하는 궁극의 엔진 이다.



기술이 증명의 도구를 제공한다면, 플랫폼 은 증명을 상연할 무대를 제공한다.


법적, 윤리적 갈등의 핵심에는 데이터 로서의 저작물과

표현으로서의 저작물의 다른 시각의 충돌이 있다.



법과 정책은 인간의 기여를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다층적 접근을 통해 인간 음악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음악은 몸으로 경험한다.


음악 치료가 뇌 손상 환자의 운동 능력 회복에 효과적인 이유는

음악과 몸이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음악적 혁신과 문화적 진보는 각 장르가 고유한 언어와

가능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데서 나온다.




알고리즘 지배는 음악 자체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대부분의 아티스트 들은 어느 때보다 가난하다.

국경이 없는 플랫폼 에서 언어 장벽은 무의미하다.




틱톡 은 디지털 아편이다.



15초에서 60초 사이의 짧은 영상이 30억 명의

취향을 지배하고 음악의 미래를 결정하는 음악 산업의 절대 권력자다.




유튜브 시대에는 특이하지 않으면, 독특하지 않으면,

3초 안에 시선을 사로잡지 않으면 실패한다.



스마트폰 이 만든 세로 영상의 지배는 소비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상징한다.


창작의 과정 자체가 콘텐츠 가 되어야 하는 시대,

진정한 창작을 위한 고독과 침묵의 시간은 사치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플랫폼 은 계속 바뀐다.



음악은 죽지 않는다. 형태가 바뀔 뿐이다.


매체는 바뀌어도 감동은 그대로다.

형식은 바뀌어도 본질은 그대로다.




플랫폼 부루주아지 는 생산수단, 유통수단, 인구를 소수의 손에 집중시킨다.


음악 프롤레타리아트 는 음악가, 청취자다.



프롤레타리아트 를 계급으로 형성하고, 플랫폼 부르주아지 의 지배를 타도하며,

프롤레타리아트 가 문화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당면 목표다.




프로라타 분배 방식은 다수의 돈으로 슈퍼스타 를 살찌우는

교차 보조금 체계이며, 계급적 착취를 위한 정교한 회계 장치에 불과하다.




사용자 중심 모델 은 프롤레타리아 없는 부르주아지 를 원한다.

기술-유토피아주의자들은 탈중앙화 플랫폼으로 계급투쟁을 대체하려는 환상이다.



음악 프롤레타리아트 의 강령은 모든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전복해야만 달성할 수 있다.




콘서트장에서는 미시적 무질서에서 거시적 질서가 출현한다.



떼창은 노래와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심장을 울리며, 시스템 이 자기 증폭한다.




음악에 반응하도록 모든 것은 설계된다.

동기화는 창발 현상이면서 동시에 조작 가능한 메커니즘 이다.




소리의 역사는 몸의 연대기이며, 몸의 몽상이다.

귀는 세상을 향해 열려있으며, 듣는 시간은 계속될 것이다.





음악은 만국 공용어라고 한다.



언어나 행위가 없어도,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공감하게 하는

음악의 힘은 강력하다.



음악은 문화나 사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음악이 가진 힘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악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소리의 역사"는 음악의 시대별 발전 과정을 알아보고,

정치, 경제, 사회, 기술 등이 음악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고,

음악이 변화된 의미에 대해 탐구한다.


녹음 기술과 라디오 기술이 가져온 음악 산업의 변화,

틴 팬 앨리 가 만들어 낸 지적 재산 포트폴리오,



디지털 기술 발전이 가져온 창작의 영역 확대,

알고리즘 이 장악한 소비 취향의 강화 등


현대 음악 시장의 기반이 되는 다양한 이슈 에 대해

프롤레타리아트적 시각으로 비판한다.



생성형 AI 시대로 진입되면서 음악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서 음악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있다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대 변화가 음악에 미친 영향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변화의 맥락을 이해하는 시각을 갖게 한다.



"소리의 역사"는 음악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시대별 발전 과정의 인과의 흐름을 통해, 음악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다.



어깨위망원경 과 컬처블룸 서평단에서

"소리의 역사"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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