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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은 태도가 아니라 인생을 탓하는가 - 아침과 저녁, 나를 위한 철학 30day ㅣ 고윤(페이서스코리아)의 첫 생각 시리즈 3부작 4
고윤(페이서스 코리아)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5년 10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철학

책을 선택한 이유
삶은 불확실하다.
불확실함은 두려움을 준다.
철학은 통찰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준다.
위대한 철학자들의 삶의 지혜를 알아보기 위해
"왜 당신은 태도가 아니라 인생을 탓하는가"를 선택한다.

"왜 당신은 태도가 아니라 인생을 탓하는가"는
랄프 윌도 에머슨,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알베르트 슈바어처,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슬라보예 지젝,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알베르 카뮈, 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
키티온의 제논, 한나 아렌트,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프리드리히 니체,
칼 세이건, 아인 랜드, 요한 볼프캉 폰 괴테,
보에티우스, 존 듀이, 카를 구스타프 융,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윤동주
시몬 크리틀리, 윌리엄 제임스, 토마스 네이글, 틱낫한,
칼릴 지브란, 한용운, 이순신, 순자, 장자, 노자, 묵자, 공자,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달라이 라마, 조지프 캠밸,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싯다르타 가우타마,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볼테르, 카를 포퍼, 스와미 비베카난다,
존 스튜어트 밀, 에픽테토스, 블레즈 파스칼,
한비자, 안창호, 안중근, 정약용, 김구, 이어령,
장 자크 루소, 대니얼 데닛, 마사 누스바움,
피터 앨버트 데이비드 싱어, 미셸 드 몽테뉴,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철학을 다룬다.

랄프 윌도 에머슨 은 철학이 행동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방향을 조정하는 것은 유연한 삶의 태도이며 변화를 창출하지만
방향이 바뀌는 거과 본질 자체가 변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끊임없는 자기 점검으로 말과 행동의 괴리를 감지하려는
의식적인 노력만이 본래의 궤도로 되돌릴 수 있다.
에드먼드 버크 는 변화의 흐름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행동이야말로 가장 큰 잘못이라고 역설한다.
바뀌어야 한다는 걸 인식했다면,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된다.
오늘의 작고 불완전한 한 걸음이, 내일 거대한 물결이 되는 법이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는 법과 정의는 다수의 동의가 아니라
자연법과 이성적 덕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집단의 동의는 사고를 멈춘다.
다수의 믿음은 안정감을 주지만 진리를 담보하지 않는다.
다수결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발견하는 힘은 질문에서 비롯된다.
알베르트 슈바어처 는 망각을 삶의 필수적인 요소로 본다.
망각은 책임을 피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준비다.
망각이 없으면 새로운 삶도 시작되지 않는다.
망각이 없으면 새로운 삶도 시작되지 않는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은 대립의 긴장을 통한 상승을 강조한다.
이성과 열정은 서로를 지탱하며 발전시키는 동력이다.
이성 없는 열정은 맹목이 되고, 열정 없는 이성은 무기력이 된다.
삶을 움직이는 진짜 힘은 두 축이 서로를 끌어당길 때 비로소 완성된다.
슬라보예 지젝 은 현대인의 욕망 구조를 분석한다.
욕망하는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을 둘러싼 이야기와 결핍감이다.
진정한 자유는 욕망을 스스로 재정의 하는 데서 비롯된다.
진정한 자유는 욕망을 스스로 재정의하는 데서 비롯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는 안전한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예측이 아니라 회피라고 말한다.
안전만을 추구하는 타협과 순응, 곧 회피가 비극적 결말을 초래할 것이다.
조용한 절망은 회피를 거듭하는 동안 감각과 욕망,
질문을 포기하고 마침내 자아마저 상실한다.
안전은 가장 위태로운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도망치는 자에게 낙원은 없다.
알베르 카뮈 는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도 반항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모든 관계가 성취라는 언어로 치환되면서,
진정한 위로는 점점 사라져 간다.
함께 걷는 다는 것은 끝내 버텨낼 수 있는 삶의 방식이다.
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 은 인간의 사고와 세계 인식이
언어라는 틀에 의해 어떻게 제약되는지를 평생에 걸쳐 탐구한다.
언어는 사고의 차이, 나아가 세계 인식의 차이로 이어진다.
단어 선택, 문장의 뉘앙스,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사고방식과 사회적 감각, 인간관계에 대한 태도를 드러낸다.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과 동시에,
말 너머의 사람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허세가 치장된 언어가 아니라, 정직하고 단단한 언어는
더 넒은 삶의 무대를 열어줄 것이다.
키티온 의 제논 은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도록 훈련한다.
경청은 충동을 다르리고, 관계를 깊게 만들며,
자신을 수양하는 지혜다.
말하는 것보다 두 배 더 경청하는 훈련은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됨과 동시에,
더욱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한나 아렌트 는 악은 판단하고 묻지 않으며,
아무 생각 없이 따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비롯된다는
악의 평범성을 주장한다.
진정한 선함은 거창한 영웅심이 아니라,
작은 성찰과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는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가르침을 준다.
광기란 자기 내면의 이성을 저버린 자가 초래한 비극이다.
분노를 억누르려는 태도 역시 또다른 분노를 낳는 행위와 같다.
분노는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는 칼날과 같다.
분노는 가장 비합리적이며,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광기다.
프리드리히 니체 는 가치의 재평가를 촉구한 위대한 철학자다.
신의 죽음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믿음을 의심하고 무너뜨린 결과다.
겸허한 해석은 기준을 갱신하지만,
오만하 해석은 기준을 사적인 도구로 만든다.
책임은 타인을 심판하기 위한 칼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설계하는 연필이어야 한다.
칼 세이건 에게 과학은 별을 관찰하는 일인 동시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행위다.
칼세이건 의 범 우주적 세계관은 별 자체를 알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의 기원과 한계 그리고 본질을 성찰하기 위함이다.
타인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거울 속 이미지 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모든 관찰의 끝은 결국 나라는 존재의 중심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세이건 이 우주를 탐구하면서도 인간에게 질문을 던졌듯,
타인을 거울삼아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해야 한다.
아인 랜드 는 이성의 철학을 설파한다.
현실은 피하는 대상이 아니라 조율하고 정면 돌파해야 할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반복되는 나쁜 패턴 을 멈추는 일이다.
외면한 현실은 언젠가 반드시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 이다.
현실은 빨리 직면할수록 더 빨리 나아진다.
요한 볼프캉 폰 괴테 는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괴테 의 철학은 삶 속에서 몸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지식은 머릿속에만 머물 뿐 현실을 바꾸진 못한다.
지식을 삶에 적용하는 작은 행동이야말로
내일을 바꾸는 씨앗이 될 것이다.
보에티우스 는 반역죄로 몰려 옥중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고통 속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펜 을 놓지 않는다.
과거는 현재를 마비시키는 그림자가 되어버린다.
화려한 어제보다 단단히 살아내는 오늘이 더 값지다.
존 듀이 는 경험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지 않는다.
경험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경험을 어디로 향하게 하느냐가 곧 교육이고, 철학이며, 성장이다.
겪은 만큼 살아온 것이 아니라, 되짚은 만큼 살아온 것이다.
성찰은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경험을 붙잡아 되짚고, 되짚은 것을 내일의 행동으로 바꿀 때,
삶은 폭발적인 성장 궤적을 그린다.
카를 구스타프 융 은 무의식이 삶을 이끄는 강력한 힘이라고 본다.
인생은 무의식이 오랜 시간 쌓아온 결과일 수 있다.
운명의 길 위에 다시 서고 싶지 않다면,
현재의 삶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무의식을 면밀히 들여다본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는 평생 조롱과 침묵 속에 살았지만,
플라톤 과 칸트 의 기반 위에서 사유한다.
쇼펜하우어 는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되, 실현 가능한
미래를 구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조롱받을수록 더욱 차분하게, 성실하게, 단단하게,
말로가 아닌 결과로, 이론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면서
증명해야 한다.
윤동주 의 시에는 성찰과 인간다운 존엄의 울림이 깃들어 있다.
잃어버린 것은 다시 살아갈 이유이자.
삶의 무늬를 새롭게 엮어갈 재료다.
시몬 크리틀리 는 진정한 철학이 죽음에 정면으로 맞서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죽음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삶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죽음은 삶의 가치를 보게 하는 렌즈 와 같다.
죽음을 성찰하는 일이 삼을 가장 생명력 있게 만드는 일이다.
윌리엄 제임스 는 무성에 집중하고 무엇를 간파하느냐가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올바른 지혜는 내려놓아야 할 건 과감하게 포기하고,
진짜 필요한 것만 남겨두는 것이다.
소중한 것에 집중하는 의식적인 선택이야말로,
현명해지는 기술이다.
토마스 네이글 은 주관성에 인간다움이 깃들어 있다고 본다.
철학은 타인의 경험을 존중하는 상상력이며,
상상력을 끊임없이 단련하는 일이다.
객관적 사실을 넘어, 주관적 경험을 귀하게 여길 때,
타인을 이해할 뿐 아니라, 나 자신까지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틱낫한 스님은 진짜 사랑은 상대가 자유롭게 날도록 허락하는 일이라 말한다.
자애, 연민, 기쁨, 자유가 조화를 이룰 때,
사랑은 두려움과 집착이 아닌 단단함을 갖게 된다.
사랑은 함깨할 때 더욱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로 증명된다.
자유롭게 날아오른 사람이 스스로 곁에 머문다면,
사랑은 어떤 소유보다 깊고 단단할 것이다.
칼릴 지브란 은 관계의 진정성은 집착이 아니라,
신뢰와 존중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끈기는 미래를 향한 기다림이지만, 집착은 과거에 매달리는 미련일 뿐이다.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고, 흘러가게 두되,
진신을 말하고 나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성숙한 사람의 시작이다.
한용운 은 인연이 선이 아닌 원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별은 관계를 새롭게 다지는 힘이다.
이별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쉼표로 보는 것이 옳다.
이순신 은 승패의 조건에 굴하지 않고 전략과 용기를 선택한다.
삶은 언제나 열세였고, 열세를 극복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열세는 약점처럼 보이지만 기민함이 숨어 있다.
열세를 두려워 말고 결핍을 무기 삼아 싸운다.
순자 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므로, 법과 예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해야 무너지지 않는다고 본다.
진정한 지혜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법을 배우는 데 있다.
진짜 성장은 배려가 사라진 자리에 홀로 서는 순간에 시작된다.
장자 가 말한 꿈은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상태를 뜻한다.
자각 없는 삶은 꿈과 같다.
의지가 없는 삶은 언제나 조연에 머무르지만,
의지가 깨어있는 삶은 주연이 된다.
나비의 날갯짓은 깨어있는 삶의 자유로 이어질 것이다.
노자 는 진정한 앎은 말 이전의 상태라 전한다.
지식이 깊어질수록 말은 줄어든다.
침묵으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성숙이란 침묵 속에서 세계와 자신을 더욱 깊이
통찰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묵자 의 철학은 언제나 실천적인 면모를 강조한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제안하는 언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진정한 힘은 문제를 드러내는 데 있지 않고, 길을 제시할 용기에 있다.
공자 는 예와 도덕을 숭상하며 인간이 살아갈 길을 모색한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행동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해석의 차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삶 전체의 방향을 바꾼다.
성찰의 습관을 기른다면 헛된 만남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퇴계 이황 은 인간이 본성 안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본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사고방식은 가장 큰 걸림돌이다.
뜻을 크게 가지라는 말은 습관적 자기 제약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진정한 승리는 스스로 씌운 한계를 깨는 데 있다.
승리란 자기 자신의 한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율곡 이이 의 사상은 자신을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는 것이다.
진정한 패배는 내면의 적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타인을 이기려는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싸움으로 방향을 돌린다.
강자는 어제의 나를 이긴 오늘의 나다.
달라이 라마 는 고통의 근원이 이기심이라는 간명한 답을 남긴다.
인생 전체를 조망할 때, 더 많은 것을 소유한 자가 아닌
더 많은 이들과 나누는 사람이 진정한 평화를 얻는다.
고통을 피하려는 이기심은 오히려 고통을 키우고,
고통을 함께 짊어지려는 자비는 타인을 돕는 동시에
스스로를 일으키는 존재가 된다.
조지프 캠밸 은 영웅의 여정으로 현대 스토리텔링 의 바탕을 이룬다.
거절의 동굴, 정체의 동굴, 싶패의 동굴은
인생 여정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완벽을 기다리기 전에 작은 걸음이라도 내딛는 것이
인생 여정을 시작하는 길이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는 선택 없는 알아차림과
의식의 혁명을 설명하며, 인간이 외부 권위에 의존할 때
진정한 자유를 상실한다고 본다.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기보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게 백배 낫다.
사회가 병들었을 때, 진짜 병드는 것은 우리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는 인간이 편협한 지식에 갇혀
보잘것없는 이해를 전부인 듯 내세우는 위험을 간파한다.
좁은 무리 안에 안주하지 말고 무지를 벗어나려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을 성찰하며, 더 넓은 세계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불안전함을 기꺼이 인정하고 넓혀가려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지혜의 첫걸음이다.
볼테르 는 모든 사람이 같은 기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역설한다.
불합리는 오랜 시간 동안 인간들의 축적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기준을 타인에게 투영하며, 나와 같은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상식의 선을 가늠하고 더 이상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다른 상식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나만의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야말로 내면을 강화하고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카를 포퍼 는 지식이란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
언제든 오류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발전한다고 본다.
나는 안다라는 확신은 탐구의 종말이자, 열린 사회를 위협하는
독단주의의 시작과 같다.
자신이 모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 배움의 가능성은 무한히 확장된다.
겸손에서 출발한 지혜는 언제나 더 큰 세계를 마주하게 한다.
싯다르타 가우타마 는 세상의 고통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설파한다.
싯다르타 의 통찰은 삶의 색을 바꾸는 철학이다.
순수한 마음은 숨은 보물과도 같다.
마음이 곧 인생이다.
마음이 꼬이면 세상 또한 꼬여 보이고,
마음이 맑아지면 삶 또한 투명하게 빛난다.
순수한 마음은 인간이 가진 가장 본질적인 지혜이며,
기쁨을 가져다주는 가장 오래된 비밀이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에게 먹는다는 말은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철학적 선언이다.
음식이 피가 되고 살이 되듯, 환경은 곧 태도가 되고 성격으로 이어진다.
삶을 바꾸고 싶다면 먹거리부터 바꿔야 한다.
포이어바흐 의 말은 단순한 금언이 아니라 날카롭게 던진 질문이다.
무엇을 먹을지는 언제나 당신의 선택이다.
스와미 비베카난다 는 인간 안에 이미 위대함이 잠들어 있으며,
자기 자신과의 대화로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다면
타인의 목소리에 끌려다니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단 한 번이라도 자신과 마주한다면,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
C.S. 루이스 는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야말로
결말을 바꿀 힘이라고 역설한다.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말 자체가 다시 쓰일 수 있다.
결말은 닫혀 있지 않고 여전히 열려 있으며,
언제든 새롭게 쓰일 수 있다.
나이, 환경, 상황은 결말을 단정 짓는 요소가 아니라,
새로운 결말을 만들어나갈 초대장임을 명심한다.
존 스튜어트 밀 은 독창성이야말로 인류의 진보를 가능하게 한
가장 희귀한 자산이라는 점을 간파한다.
독창성은 단순한 다른 생각을 넘어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통찰의 힘을 의미한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고 연마하며,
고통을 피하지 않는다.
에픽테토스 는 외부의 운명은 내 것이 아니지만,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나에게 달렸음을 깨닫는다.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을 조정하려 애쓰다가 에너지 를 소진하곤 한다.
바꿀 수 있다면 집착하기보다 행동으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붙잡지 않고, 오직 통제할 수 있는
마음을 지켜낼 때 자유와 평화를 얻는다.
블레즈 파스칼 은 이해는 발견의 결과임을 간파한다.
인생을 바꾸는 행동은 주어진 이유에서 비롯되지 않고,
나만의 이유에서 비롯된다.
머릿속으로는 이해되는 듯해도, 마음이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결국 남의 말에 불과하다.
오래 남는 답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겹겹이 쌓인 뒤에 찾아오며,
지식은 노력과 시간을 들인 만큼 뿌리를 내리고 단단히 자리 잡는다.
사색의 깊이가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
원하던 답을 찾았을 때, 삶은 확고한 중심으로
흔들림 없이 서게 될 것이다.
한비자 가 본 인간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영악한 존재다.
문제는 의리나 정이라는 허울 속에 머무르며,
이기심이라는 본질을 외면한다는 점이다.
이기심믈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틀 안에서 조율해야 한다.
제도의 울타리를 세우고, 규칙을 분명히 하고,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야말로,
삶을 지켜내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지혜로운 방법이다.
안창호 는 진정한 승리는 타인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안의 두려움과 고독을 이겨내는 것임을 알려준다.
거짓과 가식의 토대는 결국 쉽게 무너진다.
정의는 다수가 침묵하는 가운데, 홀로 고독하게 버텨낸
한 사람의 용기에서 비롯된다.
신념은 결코 헛되지 않다.
믿음이야말로 인생을 직조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다.
안중근 은 삶의 가장 큰 시험은 이익과 정의가 충돌하는 순간임을 간파한다.
위험은 영혼의 크기를 드러내는 기회의 순간이다.
위험을 직면할 때 비로소 삶은 의미를 갖는다.
이익은 영혼을 빈곤하게 만들 수 있다.
의로움은 손해처럼 보일지라도 영혼을 풍요롭게 만든다.
정약용 은 사회를 유기적인 관계망으로 바라보며,
모두가 함께 번영할 때 비로소 개인의 번영도 가능하다고 본다.
관계 속에서 작은 손해를 감수하고 상대를 먼저 세워 줄 때,
시간이 지나면 관계는 예상치 못한 기회로 돌아온다.
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삶은 나를 가장 크게 이롭게 하는
가장 현명한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구 에게 독립은 자기 안의 나약함을 넘어서는 길이다.
삶은 편안함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편안함은 결국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가둔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안락함 속에 있지 않다.
삶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뜨겁게 살아 있는 하나의 투쟁이 된다.
이어령 은 시대를 함께 걸어간 동반자적 지식인이다.
지식은 살아가는 현실 그 자체다.
질문에 답을 구하는 순간, 활자 속에 머물던 지식은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되고, 누군가의 삶을 밝히는 불씨가 된다.
장 자크 루소 는 진정한 자유란 이성적 성찰을 통해
스스로 규칙을 선택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과거를 해체하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재구성하는 온고지신의 자세와 같다.
내면의 쇠사슬을 인식하고 천천히 벗어던지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더딜 수 있지만,
진정한 자유를 배울 수 있다.
대니얼 데닛 은 자유의지는 길러내야 하는 기술이라 말한다.
의지는 순간의 결단이 아닌, 반복된 훈련과 작은 성공 경험이다.
자유란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스스로 다시 써 내려가는 능력이다.
마사 누스바움 은 행복이 어떤 가능성을 펼쳐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하다.
진정으로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모든 사람이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존엄과 행복은 잠재력과 감정이 만나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인간다움은 매일의 가능성을 감정과 함께 존중하며 살아가는
순간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피터 앨버트 데이비드 싱어 는 효과적 이타주의를 제안한다.
효과적 이타주의는 단순한 만족감을 넘어,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정리한다.
반복하는 작은 선택 속에서, 누군간의 생명과 존엄이 달려 있다.
삶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더 큰 인간다움으로 확장된다.
삶의 가치는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눌 때 가장 빛나는지를 아는 데 있다.
미셸 드 몽테뉴 는 소유보다는 성찰을, 경쟁보다는 관조를,
결핍보다는 충족을 택해야 인간이 삶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끝없는 비교와 소유의 환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삶은 충만해진다.
아우구스티누스 는 시간은 주관적 흐름이라 본다.
실제로 존재하는 시간은 오직 현재뿐이라는 것이다.
현재를 피하려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기억은 늘 왜곡되고, 기대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에 집중하는 의식이 없다면 어떠한 미래도 열리지 않는다.
출발점은 같아도, 떠나는 방향이 다르면 종착지는 같을 수 없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떻게 살아갈지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말은 달라진다.
철학은 인생의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철학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은
철학을 삶에 적용하기 어렵게 한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철학의 핵심 내용을 이해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다면 삶의 방향은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철학자들이 알려주는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은
형이상학적이며 관념적 철학이 아니라,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된다.
후회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철학적 지혜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이기도 하다.
"왜 당신은 태도가 아니라 인생을 탓하는가"에 담긴
철학자들과 위인들의 인생을 바라보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더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딥앤와이드 와 컬처블룸 서평단에서
"왜 당신은 태도가 아니라 인생을 탓하는가"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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