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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긋다 - 서예와 캘리그라피에서 인생을 배우다
이경화 지음 / 머메이드 / 2025년 7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예의 매력

책을 선택한 이유
스티브 잡스 는 컴퓨터 폰트 를 만들어 세상을 바꾼다.
형편없는 성능에 어처구니 없이 비싼 컴퓨터 가 빠르게 보급된 것은
워드프로세서 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손글씨도 자주 쓰지 않게 된다.
글씨를 잘 쓰기 위한 서예의 필요성도 예전 같지 않다.
서예의 변화 방향을 알아보기 위해 "선을 긋다"를 선택한다.

1장 먹에 스며들다 에서는
취미로 시작한 서예 덕분에 초대 작가가 되었고,
글쓰기 경험이 지금 글을 쓰는 나를 존재하게 해준다.
취미는 새로운 시장을 위한 모험이 되기도 하고,
좋아서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되는 일도 있다.
작가로서 창조적인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을 감당하기가 버거웠던 것 같다.
함께 서예를 공부한 학인들과 천자문 전시를 계획한다.
붓을 잡은 순간은 나를 다시 찾을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이 된다.
뜻을 함께한 동인이 있어 끝까지 할 수 있다.
일상의 모든 것이 아이 중심으로 바뀌었고,
나를 놓지 않기 위한 이기적 여정이 시작된다.
마라톤 은 달리면서 동시에 포기하고 싶은
나와의 끊임없는 줄다리기다.
첫 시작은 산책이다.
마라톤 풀코스 에 참가하기 위해 동네 산책길 7킬로 를 매일 달린다.
평소 페이스 를 유지하며 가볍게 뛴다.
목표는 부상 없이 5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이다.
삶 전체를 바라보면 속도가 중요하지 않다.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리면 완주할 수 있다.
진흙 속에 뿌리내린 연은 향기를 담은 꽃봉오리를 통해 그윽하게 퍼진다.
자연은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소멸한다.
연 또한 이듬해 연꽃을 다시 피우기 위해 진흙으로 돌아간다.
글을 쓰는 행위는 내 생각을 글로 옯기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의 글을 읽고 나의 손을 통해 쓰는 과정에서
나의 빛깔을 입게 된다.
뜨거웠던 여름을 적시는 가을비가 새벽 공기를
보듬어 안는 시간이다.
이유 없는 낙하는 없다.
메마른 대지 위로, 갈라진 인도 옆 작은 풀꽃 위로,
뜨겁게 뛰고 있는 심장 위로 젖어든다.
한복, 한옥, 서예는 우리 것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낯선 단어다.
서예도 캘리그라피, 디지털 캘리그라피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통이 현재와 어우러지는 모습이 흐뭇하다.
붓끝에 스며드는 먹물은 종이 위에서 점과 선이 되고
문자로 드러난다.
먹은 전혀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한다.

2장 붓을 세우다 에서는
화구 박스 에 붓, 벼루, 먹, 문진 등 필요한 서예 두고 중
무엇을 어떻게 배치하고 활용할지 고민의 시간이 된다.
서예 키트 는 장소를 불문하고 편리하다.
어느 곳에서든 만능이다.
삼각대 위에 서예 키트 를 준비해놓으니,
언제든 쓰고 싶을 때, 키트 를 열기만 하면 된다.
문자향 서권기 는 문자의 향기, 책의 기운이라는 뜻이다.
삶을 녹여내 문자의 향기로 표현하는 것이 서예다.
서예의 문방사우를 담아 문자향이라 이름 지어본다.
자신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것은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며,
개개인의 생각의 표현이 모여 문화가 된다.
창작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가 우선되어야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흐름을 좇아가기보다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게 먼저다.
독서는 안일한 피난처가 된다.
책속의 문장으로 나를 위로하며 숨어 있을 뿐이다.
읽는 것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며, 심연의 바닥까지 내려간다.
나만 할 수 있는 것 나다움을 찾아 붓을 잡는다.
여유롭게 즐기고 싶어 시간을 내어 온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을 놓칠 수는 없지만, 줄 서서 시간을 쓰기는 아깝다.
삶의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주인이 되어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일을 찾고, 내가 주인이 되어 사는 것이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현재의 내 모습에 한계를 느끼는 것이 출발점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글쓰기를 통해 서예를 배우고 소통하기 위한
재능 기부를 시작하고, 경험을 바탕으로 유료 수업을 개설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서예를 나누며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싶다.
관심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나의 가치를 발견하고,
마음을 나누는 시작이 된다.
획을 긋는 순간 공간은 여백이 되어 여운을 남긴다.
획에는 서예가의 삶과 철학이 담겨 있고, 글쓰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서예는 서예가의 영혼을 담은 예술이다.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여 선의 느낌을 다양하게 표현하기 전에
왜 쓰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서예를 하면서 소문을 연다.
소문은 전해 들리는 말이지만, 내게는 듣는 곳이다.
소나무 아래 의자에 기대어 고요히 내면의 소리를 들어본다.
불편한 일이 편안해지기 위해서는 시간과 꾸준함 외에
특별한 방법이 없다.
호흡이 내려가고 안정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서예다.
평소에 가슴으로 호흡하고, 감정이 격해지거나 화가 나면
호흡이 빨라지며 어깨가 들썩거린다.
서예는 호흡이 내려가고 안정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다.
몰입하면 호흡은 자연스럽게 단전으로 내려간다.
코로나 팬데믹 은 기약 없는 일자리의 부재로 위협한다.
서예는 잘할 수 있고, 시간을 투자한 일이다.
일과 꿈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직업의 앞바퀴를 잘 굴리는 시간 속에서
삶의 가치를 얻는다면 꿈의 뒷바퀴를 자연스럽게 굴릴 수 있다.
전각은 칼을 세워 돌을 깎아 글자에 새기면서,
구속되어 있는 나를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다.
서예의 한 부분이지만 전각은 예술의 한 분야로 충분한 매력이 있다.
전각은 방촌의 예술이라 불리는 데, 방촌은 손가락 한 마디의 공간을 말한다.
무딘 칼날에 나를 실어 예리하게 드러낸 붉은색 글자는
종이 위에 먹빛의 눈동자를 새기듯 완성된다.
나무 아래 앉아 문자향을 펼친다.
건들바람이 먹물을 머금고 종이 위에 선을 긋는다.
문자향과 계절을 담아 가을의 끝자락에 서 있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패키지여행처럼 누군가가 짜놓은 틀에 맞추어 살아갈 것인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우연에 나를 맡긴 채 살 것인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삶의 여정 속에서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이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3장 점을 찍다 에서는
글을 쓰면서 책 한 권에 시간과 사유, 고뇌가 스며 있음을 몸으로 느낀다.
인쇄소에는 책 한 권의 사계가 공존한다.
지혜의 숲, 삶의 무게만큼 가볍지 않은 책이 익어간다.
글은 생각을 펼쳐 문장이 되고 단락을 이룬다.
서예는 생각의 흐름을 펼친 후 사유의 거름망에
걸러진 조각을 글자라는 이미지 에 함축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데 서예만한 것이 없다.
붓의 기초적인 운필을 익히고 글씨체를 임서하는 과정이 지나면
모방에서 창작의 단계로 들어간다.
글자의 조형과 획을 통해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부드러운 붓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의식을 집중해야만 한다.
화선지 위에 마음을 가지런히 내려놓고,
몸의 긴장을 풀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순간
붓이 이끄는 대로 나아간다.
낮은 곳에서는 볼 수 없지만 정상에 오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한 발씩 쌓인 발걸음은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힘들어하는 나를 다독이며 다시 발걸음을 옮길 수 있게 한다.
편안하게 쓰는 글에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지만,
공모전이나 개인전에 낼 작품을 준비할 때 이런 감정이 솟아나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얻을 수 있다.
삶의 에너지를 얻는 소소한 일상의 몰입 감각을 기억한다.
기억된 감각은 반복을 통해 다시 몰입하는 통로가 된다.
새로운 만남이 나를 깨트리는 출발점이 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 발씩 나아가는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마음은 불씨 같은 것.
불씨를 지키는 말, 불씨를 키우는 말이 고맙다.
다시 붓을 잡고 싶은 마음을 느낀다.
막막한 미래는 어둠이 감싼 공간과 닮아 있다.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길이다.
거울에 반사된 파사체는 만져보지 않고는 구별할 길이 없다.
먹색에도 다양한 빛깔이 담겨 있다.
회색의 먹빛부터 안개 낀 듯 먼 산의 옅은 먹빛,
어둠이 내려앚은 가까운 산의 진한 먹빛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의 먹빛이 있다.
묵직하게 찍은 범, 서서히 번지는 선을 따라 그려지는
곡선의 끝에서 다음 획과 마주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마지막인 것처럼 내 안의 모든 것을 쏟아본다.
바람에 나부끼는 얇은 종이 한 장은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느낄 수 없는 가벼운 존재이지만,
매일 한 장 한 장 쌓여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거센 파도가 몰아쳐도 결국은 잔잔한 수면이 된다.
나를 향해 걷는 발걸음에 먹 향이 스며든다.
같은 길을 달려도, 같은 것을 보아도 새로움을 발견하는
하루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글을 쓰기 때문이다.
붓을 잡아야 획을 긋는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획을 찾을 수 있다.
4장 선을 긋다 에서는
본질을 깨닫고 나서는 일탈이 필요하다.
붓의 운필을 익히고, 생각과 일치하게 붓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적 방법도 옴에 익숙해지게 해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을 선에 담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의식과 무의식이 공존하며 여백이 만들어진다.
선은 곧 점이고, 점 이전은 나의 의식이다.
나의 틀을 깨는 것이 선을 넘는 방식이다.
관심의 작은 씨앗이 불씨가 되어 뇌를 발달시키고,
특정 분야의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 수 있다.
공간의 제약이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이미지 트레이닝 이다.
의식이 붓을 잡고 글을 쓰는 것이다.
붓의 움직임을 자세히 그려본다.
먹의 농담과 윤갈을 표현하는 붓 끝까지 떠올려본다.
서예를 법첩과 글로만 익힌다면 필사이지 작품이 될 수 없다.
글자에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서예가 될 수 있다.
글씨는 타인의 눈을 통해 감동을 전달한다.
춤을 추는 것은 붓을 잡고 글씨를 쓰는 것과 닮았다.
발 동작에만 집중했던 시선을 몸 전체로 확장한다.
서예에서 선의 힘은 붓을 역입하여 생긴다.
춤을 추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이 붓을 잡고 표현하는
선의 움직임과 같다.
여백은 선의 존재 근거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느끼고, 상상하며, 곱씹는 사람들 앞에만 나타날 뿐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몸을 움직여 시도하지 않는다면
실패도,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갈등은 최고조가 된다.
서서히 스며들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몸과 의식의 자아가 보내는 메시지 는 오늘을 시작할 수 있다.
커피를 내리기 전 원두의 향기를 먼저 마시듯 서예에서도
먹을 갈면 호흡이 편안해진다.
서예 도구를 한 손에 들 수 있도록 만들어,
자연이 선사하는 순간을 종이에 담는다.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경험으로 소소한 일상으로 스며든다.
한 번의 경험은 서서히 먹물이 번지듯 물들어간다.
일상을 돌아보니 나는 해야만 하는 일에 이끌려 산다.
꿈을 꾸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 희망이다.
붓과 종이 한 장이 자연과 나를 이어준다.
달리면 생각을 비우고 몸의 한계치를 넘어보는 과정이다.
경험은 결국 나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이 된다.
몸의 한계는 마음의 한계를 넘는 과정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 남겨진 발자취는
누군가에서 빛이 되어줄 수 있다.
실낱같은 거미줄도 존재를 드러내듯이
종이의 하얀 여백 위에 선을 긋는 하루를 달린다.
눈은 존재의 찰나를 선사하다.
붓을 든 순간 한 획이 그러지는 상태로 존재하는
서예와 닮아 있다.
얼어붙은 감정을 포근함으로 녹여준다.
종이 위로 펼쳐진 설경에 봄빛을 담은 손길로
한 글자씩 씨앗을 뿌려본다.
5장 선을 넘다 에서는
붓끝에 몰입해 종이 위로 선을 긋는 나를 보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
손에 붓을 쥐고 한 획 한 획 그어나가는 것처럼
인생의 흐름을 내손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
먹 향에 스며들듯 새로운 여정을 만들어간다.
바람에 스치는 종이 위에 긋는 붓질은 나의 길이 된다.
의지와 생각으로 이어온 길, 묵묵히 나의 길을 걷는 삶을 살아가는가.
글쓰기는 나와의 치열한 싸움이다.
화선지 앞에 서 있는 순간만큼은 오직 나의 생각과 의지로
붓끝에 몰입할 수 있다.
선을 넘기 위한 나, 다시 붓을 잡고 내 삶의 자취를 긋는 여행의 항로를 잡는다.
글을 쓰는 도전은 책을 쓰는 나를 존재하게 한다.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닌,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용기를 내본다.
떨리는 붓끝이 종이 위로 내려앉았다.
내려 긋는 획에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붓질도 편안해진다.
낯선 모습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시설을 즐겨야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서예는 정신과 몸이 함께 휴식할 수 있는 삶의 힘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
새로운 삶을 선택한 순간, 편안함에 익숙해진 나를 바라볼 수 있다.
새로운 도전을 향한 설렘을 종이 위에 그어본다.
자연을 느끼며 붓을 잡은 시간은 선을 넘는 과정이다.
서예를 취미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 수업으로 확장하고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생각으로 쓰는 글은 멋지지만, 붓을 잡고 긋는 획은 현실이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을 고민하는 시간, 놓지 않고 끈질기게 써야만
완성되는 것이 글이고, 글씨다.
붓끝에 바람을 실어 세우면 번지는 먹빛에 낙엽이 떨어진다.
길바닥을 포근히 덮은 노란 잎새는 다음을 기약할 것이다.
바스락바스락 낙엽소리가 텅 빈 가지 끝을 채우며 말하는 듯 하다.
나의 길을 걷는 길은 예상치 못한 길을 달릴 때의 감정과 같다.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향해 걷는 시간은 길고도 암담하다.
보기 좋게 포장된 길은 나의 길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이 길이 내가 만들어갈 자유의 길이다.
6장 여백은 새로운 공간을 보는 시선 에서는
채우는 것보다 비우고 기다리는 여백이 삶의 여유를 찾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먹물을 머금은 붓끝이 종이 위에 닿아 원하는 글자의 무늬를 그리고 나면
붓을 들고 기다린다. 먹의 번짐까지가 완성이기 때문이다.
붓은 서서히 종이 위를 미끄러지듯 제 몸을 부풀려가며 무늬를 그린다.
선과 선이 만나 살결을 마주하는 순간 또 다른 무늬를 만들어간다.
획과 획이 만나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여백은 새로운 의미를 준다.
멍때리다라는 말의 사용이 빈번해지는 까닭은 삶의 여백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
붓을 잡고 흰 종이를 바라보는 붓멍은 늘 그자리에 있는 것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먹물을 흠뻑 머금은 붓은 종이 위에 점을 찍는다.
점과 선은 서로를 포옹하듯 중첩된다.
거리가 주는 여백이 있을 때 획은 생기를 얻는다.
규칙과 통일성을 벗어던지고 질서가 깨지는 틈에서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모든 예술의 아름다움은 균형이 깨진 조화에서 나오며,
서예의 조형미도 그러하다.
글자의 구조를 바꿔보는 시선에서 창의적인 글자가 탄생한다.
글 속에서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이 서예다.
집의 공간과 쓰임은 붓글씨의 선과 공간을 보는 시선과 닮아 있다.
가슴에 남은 여운은 글로 쓰면 지워지지 않는다.
한 획을 긋는 행위 자체는 순간이지만, 획을 긋기 전까지의
감정과 문자의 조형을 디자인 하는 과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옛것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고루하지 않고 현대와 조화를 이루는 것.
서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뇌리를 스치던 생각이 붓질을 통해 표현되는 순간,
아찔한 순간을 느낀 적이 언제였는지 아득하다.
매일이 짜릿할 수 없다.
겹겹이 둘러싼 봉우리를 보며 수많은 봉우리 중 하나를 걷는 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봉우리 하나가 내 전부인 까닭에 높고 힘겨울 뿐이다.
더 높이 또는 더 빠르게 오르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한 글자씩 쓸 때는 괜찮지만 문장을 쓰고 나면 이상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글자의 크기가 같지 않아도 문장의 중심축을 맞추어 쓰게 되면 안정적 구조를 지니게 된다.
나를 넘어 세상으로 한발 나아가고 싶은 내가 있다.
한발 나아간 도전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유한한 시간을 직시하며 절실함을 느끼지는 못한다.
붓을 잡고 글과 문자로 표현되며, 함께 공감하는 대상을
만날 때의 설렘은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일이 전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사소한 일상의 설렘은 붓을 다시 잡게 해주는 힘이 된다.
붓끝을 종이 위에 새운다.
붓끝이 모아지면 몸은 하나이지만,
붓털도 등과 날로 나뉜다
붓털의 탄력을 이용하면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는 선을 표현할 수 있다.
잘 쓰려는 나를 내려놓는 것이 힘을 빼는 과정이다.
7장 서예,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법 에서는
캘리그라피 는 글씨나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시술이다.
좁게는 서예, 넓게는 활자 외외의 모든 서체를 말한다.
캘리그라피 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서예의 장점에 캘리그라피 의 디자인적 요소를 더한다면,
다양한 분야로의 발전 가능성은 물론 취미의 확대까지 기대할 수 있다.
서예에서 기본적인 재료는 붓, 종이, 먹, 벼루, 문방사우다.
서진은 종이가 움직이지 않게 고정해주는 역할을 하며,
모포는 화선지에 흡수된 먹물이 묻어나는 것을 방지한다.
붓은 단구법과 쌍구법을 사용해 잡는다.
단구법은 작은 붓을 사용할 때, 쌍구법은 큰 붓을 사용할 때
힘을 조절하기가 편리하다.
팔을 들고 쓰는 법은 큰 글씨를 쓰기에 적합하다.
팔꿈치를 대고 쓰는 법은 중간 크기 글씨를 쓰기에 적합하다.
손목을 받치고 쓰는 법은 작은 글씨를 쓸 때 사용한다.
운필법은 획의 굵고 가늚, 속도의 완급, 먹의 농담을 조절하는 것은
붓을 움직이는 방법에 따라 나온다.
붓끝을 반대로 접어 뾰족한 붓끝이 드러나지 않게 지면에 내리는
역입은 힘찬 선의 질을 표현할 수 있다.
문자향은 나무 상자를 열어 펼치면 작은 책상이 된다.
선반 아래쪽에는 벼루와 붓, 먹물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어디서든 글씨를 쓸 수 있다는 점과 필요한 물건을 한꺼번에
수납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장점이다.
붓을 잡고 선을 그어 보면서 붓과 먹물의 농도, 종이에서 번지는 정도 등을 체득한다.
붓에 먹물을 끝까지 충분히 적신 뒤, 붓의 중간 정도부터 빼야
먹물을 저당히 머금은 정도가 된다.
처음에는 역입으로 시작하고, 붓끝이 획의 중앙을 자니난 중봉,
마지막에서는 붓끝을 세워 회봉을 한다.
사각형 그리기에서 방향을 전환할 때 붓을 운용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방향을 바꿀 때 주의할 점은 붓대를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갹형 미로 그리기는 선과 공간의 배치를 함께 연습할 수 있다.
원은 선의 연결이 지속되며, 역입과 중봉을 터득할 수 있고,
나선형 미로 그리기는 획의 굵기와 공간의 간격을 생각하며 연습해 본다.
판본체는 한글 창제 직후에 나온 판본 글자를 기본으로 한 글자꼴이다.
사각형 안에 글자의 모양이 들어가 있으며 글자는 좌우대칭을 이룬다.
자음 쓰기, 모음 쓰기 방법을 설명한다.
단어 쓰기는 선과 선의 위치와 공간을 보면서 쓴다.
글자가 많아지면 자간과 중심이 맞아야 통일감이 있다.
선 긋기와 단어 쓰기로 기본 획을 바탕으로 단어를 선택해 본다.
단어에서 떠오르는 느낌을 글자에 이미지 를 입히는 것으로,
읽는 글씨를 넘어 보는 글씨를 써 본다.
글자 수가 많아지면 글자의 자간과 중심, 변화와 강조, 통일감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늘어난다.
붓으로 쓴 글씨로 모바일 툴을 이용해 엽서나 초대장을 만들어본다.
캔바, 감성공장 앱 사용법을 소개한다.
"선을 긋다"는 서예를 통한 인생의 변화, 서예의 매력,
서예의 의미, 서예의 기술, 서예의 효과, 예술적 의미,
서예의 기초에 대해 다룬다.
취미는 새로운 시장을 위한 모험이 되기도 하고,
좋아서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되는 일도 있다.
붓을 잡은 순간은 나를 다시 찾을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이 된다.
삶 전체를 바라보면 속도가 중요하지 않다.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리면 완주할 수 있다.
글을 쓰는 행위는 내 생각을 글로 옯기는 것뿐만 아니라
쓰는 과정에서 나의 빛깔을 입게 된다.
서예는 우리 것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낯선 단어다.
서예도 캘리그라피, 디지털 캘리그라피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통이 현재와 어우러지는 모습이 흐뭇하다.
붓끝에 스며드는 먹물은 종이 위에서 점과 선이 되고
문자로 드러난다.
먹은 전혀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한다.
문자향 서권기 는 문자의 향기, 책의 기운이라는 뜻이다.
삶을 녹여내 문자의 향기로 표현하는 것이 서예다.
서예의 문방사우를 담아 문자향이라 이름 지어본다.
시시각각 변하는 흐름을 좇아가기보다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게 먼저다.
나만 할 수 있는 것 나다움을 찾아 붓을 잡는다.
삶의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주인이 되어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서예를 나누며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싶다.
관심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나의 가치를 발견하고,
마음을 나누는 시작이 된다.
획을 긋는 순간 공간은 여백이 되어 여운을 남긴다.
서예는 서예가의 영혼을 담은 예술이다.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여 선의 느낌을 다양하게 표현하기 전에
왜 쓰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호흡이 내려가고 안정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서예다.
서예는 호흡이 내려가고 안정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다.
몰입하면 호흡은 자연스럽게 단전으로 내려간다.
전각은 칼을 세워 돌을 깎아 글자에 새기면서,
구속되어 있는 나를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다.
전각은 방촌의 예술이라 불리는 데, 방촌은 손가락 한 마디의 공간을 말한다.
무딘 칼날에 나를 실어 예리하게 드러낸 붉은색 글자는
종이 위에 먹빛의 눈동자를 새기듯 완성된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삶의 여정 속에서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이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글은 생각을 펼쳐 문장이 되고 단락을 이룬다.
서예는 생각의 흐름을 펼친 후 사유의 거름망에
걸러진 조각을 글자라는 이미지 에 함축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데 서예만한 것이 없다.
글자의 조형과 획을 통해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부드러운 붓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의식을 집중해야만 한다.
한 발씩 쌓인 발걸음은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힘들어하는 나를 다독이며 다시 발걸음을 옮길 수 있게 한다.
삶의 에너지를 얻는 소소한 일상의 몰입 감각을 기억한다.
기억된 감각은 반복을 통해 다시 몰입하는 통로가 된다.
막막한 미래는 어둠이 감싼 공간과 닮아 있다.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길이다.
거울에 반사된 파사체는 만져보지 않고는 구별할 길이 없다.
먹색에도 다양한 빛깔이 담겨 있다.
묵직하게 찍은 범, 서서히 번지는 선을 따라 그려지는
곡선의 끝에서 다음 획과 마주한다.
거센 파도가 몰아쳐도 결국은 잔잔한 수면이 된다.
나를 향해 걷는 발걸음에 먹 향이 스며든다.
붓을 잡아야 획을 긋는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획을 찾을 수 있다.
의식과 무의식이 공존하며 여백이 만들어진다.
선은 곧 점이고, 점 이전은 나의 의식이다.
나의 틀을 깨는 것이 선을 넘는 방식이다.
관심의 작은 씨앗이 불씨가 되어 뇌를 발달시키고,
특정 분야의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 수 있다.
공간의 제약이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이미지 트레이닝 이다.
의식이 붓을 잡고 글을 쓰는 것이다.
붓의 움직임을 자세히 그려본다.
먹의 농담과 윤갈을 표현하는 붓 끝까지 떠올려본다.
글자에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서예가 될 수 있다.
글씨는 타인의 눈을 통해 감동을 전달한다.
여백은 선의 존재 근거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느끼고, 상상하며, 곱씹는 사람들 앞에만 나타날 뿐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몸을 움직여 시도하지 않는다면
실패도,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갈등은 최고조가 된다.
서서히 스며들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경험으로 소소한 일상으로 스며든다.
한 번의 경험은 서서히 먹물이 번지듯 물들어간다.
경험은 결국 나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이 된다.
눈은 존재의 찰나를 선사한다.
붓을 든 순간 한 획이 그러지는 상태로 존재하는
서예와 닮아 있다.
종이 위로 펼쳐진 설경에 봄빛을 담은 손길로
한 글자씩 씨앗을 뿌려본다.
붓끝에 몰입해 종이 위로 선을 긋는 나를 보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
바람에 스치는 종이 위에 긋는 붓질은 나의 길이 된다.
글쓰기는 나와의 치열한 싸움이다.
화선지 앞에 서 있는 순간만큼은 오직 나의 생각과 의지로
붓끝에 몰입할 수 있다.
떨리는 붓끝이 종이 위로 내려앉았다.
내려 긋는 획에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붓질도 편안해진다.
낯선 모습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시설을 즐겨야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생각으로 쓰는 글은 멋지지만, 붓을 잡고 긋는 획은 현실이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을 고민하는 시간, 놓지 않고 끈질기게 써야만
완성되는 것이 글이고, 글씨다.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향해 걷는 시간은 길고도 암담하다.
보기 좋게 포장된 길은 나의 길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이 길이 내가 만들어갈 자유의 길이다.
붓은 서서히 종이 위를 미끄러지듯 제 몸을 부풀려가며 무늬를 그린다.
붓을 잡고 흰 종이를 바라보는 붓멍은 늘 그자리에 있는 것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점과 선은 서로를 포옹하듯 중첩된다.
거리가 주는 여백이 있을 때 획은 생기를 얻는다.
모든 예술의 아름다움은 균형이 깨진 조화에서 나오며,
서예의 조형미도 그러하다.
글자의 구조를 바꿔보는 시선에서 창의적인 글자가 탄생한다.
옛것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고루하지 않고 현대와 조화를 이루는 것.
서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겹겹이 둘러싼 봉우리를 보며 수많은 봉우리 중 하나를 걷는 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더 높이 또는 더 빠르게 오르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한발 나아간 도전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붓을 잡고 글과 문자로 표현되며, 함께 공감하는 대상을
만날 때의 설렘은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사소한 일상의 설렘은 붓을 다시 잡게 해주는 힘이 된다.
붓털의 탄력을 이용하면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는 선을 표현할 수 있다.
잘 쓰려는 나를 내려놓는 것이 힘을 빼는 과정이다.
캘리그라피 는 글씨나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이다.
좁게는 서예, 넓게는 활자 외외의 모든 서체를 말한다.
캘리그라피 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서예의 장점에 캘리그라피 의 디자인적 요소를 더한다면,
다양한 분야로의 발전 가능성은 물론 취미의 확대까지 기대할 수 있다.
서예에서 기본적인 재료는 붓, 종이, 먹, 벼루, 문방사우다.
문자향은 나무 상자를 열어 펼치면 작은 책상이 된다.
선반 아래쪽에는 벼루와 붓, 먹물으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어디서든 글씨를 쓸 수 있다는 점과 필요한 물건을 한꺼번에
수납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장점이다.
붓을 잡고 선을 그어 보면서 붓과 먹물의 농도, 종이에서 번지는 정도 등을 체득한다.
붓에 먹물을 끝까지 충분히 적신 뒤, 붓의 중간 정도부터 빼야
먹물을 적당히 머금은 정도가 된다.
방향을 바꿀 때 주의할 점은 붓대를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선 긋기와 단어 쓰기로 기본 획을 바탕으로 단어를 선택해 본다.
단어에서 떠오르는 느낌을 글자에 이미지 를 입히는 것으로,
읽는 글씨를 넘어 보는 글씨를 써 본다.
글자 수가 많아지면 글자의 자간과 중심, 변화와 강조, 통일감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늘어난다.
붓으로 쓴 글씨로 모바일 툴을 이용해 엽서나 초대장을 만들어본다.
캔바, 감성공장 앱 사용법을 소개한다.
서예는 글씨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한다.
글을 쓰는 것은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먹을 묻힌 붓으로 종이에 글을 써내려가면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인생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붓으로 선을 긋고, 선은 세상으로 이어지면서,
텅 빈 화선지는 생생한 삶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선을 긋다"는 일상의 에피소드 를 통해 서예의 매력을 소개한다.
글씨를 통해 자신을 탐구하는 여정은 매력적이다.
디지털 시대에도 서예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서예도 변한다.
서예는 시대에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구닥다리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캘리그라피 는 글씨나 글자를 색다르게 표현하면서,
전통적 서예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선을 긋다"는 서예 도구를 소개하고, 서예의 기초 연습법을
소개하므로 서예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엑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선을 긋다"는 서예를 통해 작가의 길을 걷게 된 이야기를 통해
서예에 대한 관심을 갖고, 서예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제이펍 과 컬처블룸 서평단에서 "선을 긋다"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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