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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평점 :
"열린책들 과 리뷰어스 클럽 서평단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코로나 펜데믹 시절 뉴욕 의 기억

불확실한 봄이었다.
어릴 때 소설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이제는 독서 중의 체험, 이야기가 일으키는 감정 상태, 떠오르는 질문들이라는 진실을 안다.
꽃잎이 금세 졌다.
2020년 봄만큼 무상함에 가슴이 져몄던 적도 없다.
몇 시간씩 길거리를 배회할 필요가 있느냐는 물음에
노망이 들어 정처 없이 헤매는 할머니로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머물러라는 것이 규칙이다.
약자니 약자답게 행동해야만 한다.
뉴욕 주지사가 동의한 일이다.
디킨스 소설들은 숱한 고통과 말썽 오해가 따르지만
마지막 해피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학창시절 디킨스 를 좋아했던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젠 디킨스 를 읽을 수 없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알지 못했던 진실을 알게 되면서 그럴 수도 있다.

릴리 의 장례식은 동창회이기도 하다.
릴리 의 남편은 릴리 가 꿈의 기억을 되살리지 못해 걱정했다고 말한다.
릴리 가 꿈을 기억하더니, 마지막 주에는 프렌치토스트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릴리 의 가족 모두 갑작스러운 죽음이 초래한 충격에 빠진다.
릴리 는 실내 가운 차림으로 두 팔을 들고 방 안을 돌아다니며
왈츠를 추다가 도끼로 찍은 나무처럼 넘어간다.
릴리 의 남편은 릴리 는 편안한 얼굴이었고, 꿈꾸는 듯 미소를 지었다고 전한다.
긴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시골을 누비면서, 봄이 오기엔 이른 시기지만,
봄의 징후를 찾아본다.
릴리 는 색정증이다.
행복하고 다정하고 책임감 있는 아내이자 엄마였지만,
섹스 를 좋아한 나머지 하룻밤 상대를 포함한 많은 연인들이 필요하다.
올라프 는 대학시절 릴리 를 변화시킨 사람이다.
진짜 이름도, 어디 출신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학생, 교수, 교직원도 아니지만 캠퍼스 붙박이다.
195센티미터 에 달하는 키, 마른 근육질 몸,
길고 헝클어진 어두운 금발, 차가운 푸른색 눈을 가졌고,
나이는 마흔 살에 더 가까웠다.
릴리 는 올라프 와 함께 지내면서 균형을 찾아 간다.
결별은 찾아왔고, 올라프 는 다른 젊은 여자에게로 떠났지만
릴리 는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다.
쉰 살의 릴리 는 동이 트기 직전 바닷가를 걷다가
경이로운 돌풍이 불면서 올라프 가 서 있는 것을 본다.
릴리 는 올라프 가 방금 죽었고, 혼령이 알리기 위해
찾아온 거라고 확신한다.

바이올렛 의 친구 작가 아이리스 내외는
시아버지 칠순을 맞이해 캘리포니아주로 떠난다.
캘리포니아주에 도착하자마자 봉쇄가 시작된다.
천신만고 끝에 첫아이를 임신한 아이리스 는
출산 예정일을 10주 앞두고 있지만
언제 돌아가게 될지 알 수 없다.
아이리스 부부는 이틀 이상 혼자 두면 안 되는 금강앵무를 키운다.
금강앵무는 지능이 매우 높고 사교적인 종의 앵무새다.
아이리스 친구 아들인 뉴욕대 학생이 새를 돌봐 주기로 하지만,
치명적인 바이러스 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대학이 문을 닫자,
도시 안의 낯선 아파트 에 혼자 갇혀 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바이올렛 은 매디슨 스퀘어 파크 근처에 있는 아파트 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금강앵무 유레카 를 돌봐주기를 부탁한다.
유레카 는 공작새 같은 다섯 살 앵무새다.
아주 작은 품종이며, 밝고 싱그러운 초록색 이다.
도움을 베풀 대상을 찾아내는 것은 많은 병들을 고치는 약이다.
봉쇄 기간 동안 반려동물을 임시로 보호하거나 입양하면서,
시련의 시기를 견디거나, 희망을 얻거나, 온전한 정신을 지키게 된다.
친구 누이는 은퇴한 호흡기 내과 전문의로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는
자원봉사자로 뉴욕에 온다.
친구는 코네티컷주 시골집으로 옮긴 후라, 누이에게 친구의 아파트 에서
지내라고 했지만, 친구 누이는 겁에 질린 세입자들에게 나가 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친구 누이에게 집을 쓰게 하고, 아이리스 의 집에서 지내며 유레카 를 돌보기로 한다.
유레카 의 방은 거대한 돔 지붕이 달린 스테인레스 새장이 들어갈 정도로 넓다.
새장 안에는 다양한 높이의 횃대들과 등반 밧줄, 흔들 밧줄 사다리가 있다.
새장 밖 목제 횃대를 갖춘 특별하게 꾸민 놀이 공간에서, 유레카 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유레카 가 새장 안으로 들어가는 걸 거부한 적은 없어도,
떠나는 시간만 되면 고개를 숙이고 깡충거리며 춤을 춘다.
유레카 는 떠나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 같다.
동물의 순수한 행복을 목격하는 건 인간의 커다란 기쁨 중 하나다.
전임 앵무새 돌보미 였던 뉴욕대생이 아이리스 의 아파트 로 돌아온다.
바이올렛 에게 뉴욕대생을 내보내달라고 말하자,
바이올렛 은 봉쇄 중 우울증에 제일 취약한 사람이
혼자 사는 이라 말하는 데....

코로나 팬데믹 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일어난다.
전 세계가 봉쇄되고, 사람들은 고립되면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악몽 같던 시간의 기억들을
어느새 사라져 간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은 뉴욕에서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같은 아파트 에서 살게 된
뉴욕대 베치 가 여자 친구와 전화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늙은 소설가는 실패한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린다.
인생 이야기는 네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좋은 시간들, 나쁜 시간들.
코로나 팬데믹 의 중심에서 사이렌 소리는 너무나 익숙하다.
고립되고 약한 모습의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고립된다.
유니언 스퀘어 보행자용 광장에서 검은 고글 과
검은 바라클라바 로 얼굴을 가린 자전거 괴한이
속도를 늦추지 않고 돌진하면서 기침을 한다.
어지럼증이 심해지면서 구역질이 나자,
자전거 괴한이 코로나 바이러스 를 감염시켰는지 의심이 든다.
잃어버린 짜릿한 젊음의 시기가 또렷하게 상기시키면,
슬픔으로 분개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은 멈출 수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아픔이 있다.
각자의 사정을 모른다면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내면의 생각을 이해하게 된다.
유머는 고통을 견디는 데 희망보다 도움이 된다.
코로나 시기 사람들은 팬티 라이너, 브라 컵, 파티용 고깔모자,
양배추잎 등 손에 잡히는 건 무엇이든 마스크 로 만든다.
코로나 팬데믹 은 사람들의 생각과 라이프 스타일 을 바꾼 재난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미명으로 격리와 봉쇄가 당연시 되고,
사람들은 고립과 단절에 시달린다.
감염병 전문가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염되어야 끝날 것이라 예상했지만,
코로나 백신 이 사태를 조기 해결할 것이라는 헛된 믿음이 만연한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코로나에 많이 희생되었지만,
코로나 는 인류를 쓰러뜨리지 못한다.
코로나 사태 는 불과 얼마 전의 일이지만 벌써 잊혀지고 있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은 코로나 로 한산해진 뉴욕에서 살아가는
노인 소설가의 눈으로 바라본 코로나 시대의 회상이다.
평범한 일상이 비정상이 된 격리와 단절의 뉴욕,
불확실한 봄에서 늙은 소설가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삶과 문학에 영향을 미친 문학가들에 대한 이야기와
기억의 상념은 작가의 자기 고백인지도 모른다.
코로나 팬데믹 은 기억하기도 싫은 시절이지만,
잊혀져서는 안 될 순간이기도 하다.
팬데믹 의 깊은 상흔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지만,
아픈 기억들은 벌써 가물가물해져 간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은 고통스러웠던 코로나 펜데믹 을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코로나 의 아픈 시대를 증언한다.
열린책들 과 리뷰어스 클럽 서평단에서 "그해 봄의 불확실성"을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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