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이병철이다 - 굴치 않는 1등 정신으로 반도체에 명운을 건 생애 ㅣ 나는 누구다
박상하 지음 / 일송북 / 2025년 1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등 삼성을 만든 이병철 리더십

책을 선택한 이유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세계적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다.
난세의 시대에는 영웅이 나는 법이다.
위대한 기업가들이 나와 한국을 발전시켰다.
기라성 같은 재계의 풍운아들이 명멸했지만,
삼성은 한국 재계를 선도한 부동의 기업이다.
삼성을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만들어 낸
고 이병철 회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나는 이병철이다"를 선택한다.

1장 내가 되다 이병철의 ‘재才의 세계’ 에서는
CEO는 황금이 되는 산업을 찾아내어 자기 기업의 조직과
문화에 효율적으로 접목해 낸다.
이병철은 CEO로서 목적이 누구보다 명확하고 매우 잘 아는
재의 수준을 일등정신으로 펼쳐보인다.
6.25 전쟁으로 가까스로 재기에 성공하자,
임직원들과 관계 당국의 부정적 의견에도,
우리 나라 최초의 현대식 대규모 생산시설
제일제당을 건설한다.
삼성은 근대적 생산자로서의 면모를 구축한 첫 걸음인 동시에,
무역업이라는 상업자본에서 산업자본으로 선구적으로 전환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비료 공장, 한국비료 건설은
일등정신을 성취하기 위한 부단한 도전을 보여준다.
이병철은 어린 시절 학습 능력이 뒤떨어져 꾸중을 듣는다.
낯설기만 한 타향에서 어린시절을 늘 홀로 이병철은 늘 외톨이였다.
에너지는 바깥으로 향하기 보다는 내면의 세계로 이끌었다.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하지만,
유행성 독감에 걸려 학업을 중단하고 쓸쓸히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마산에서 정미사업에 뛰어들어,
협동정미소를 시작하지만 사업은 부진하다.
이병철이 실패를 거울삼아 경영을 일신하자 단숨에 흑자경영으로 돌아선다.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은행 대출이 중단되자,
정미소와 운송회사를 헐값에 팔아 부채를 청산한다.
막대한 성공과 허무한 좌절을 겪게 되면서 성격은 더 깊고 견고해진다.
이병철은 대륙 기차여행을 하면서 엄청난 거래 규모에 놀란다.
주식회사 삼성상회를 대구에 설립하고 무역업을 시작한다.
태평양전쟁으로 확전되자 군수용으로 총동원되면서,
심각한 식량난이 발생하자 일제의 패망을 확신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칩거에 들어간다.

2장 삼성이 되다 에서는
8·15해방이 되자 이병철은 사업장에 복귀한다.
대구 조선양조의 설비를 확충하고 영업을 재개하며,
삼성상회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간다.
이병철은 서울에 사업무대를 옮겨 삼성물산공사를 시작한다.
재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거대 무역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황제경영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6.25 전쟁의 혼란 속에 이병철은 속절없이 피난길에 오른다.
대구까지 내려간 이병철은 조선양조에서 비축된
출자금 3억원으로 삼성물산주식회사를 창립한다.
창립 한 해만에 3억원의 자본금이 20배로 성장한다.
이병철은 1950년 2월 경제계 인사들과 일본을 시찰한다.
패전으로 폐허가 된 일본에서, 담담하게 외길을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투철한 장인정신에 놀란다.
6.25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이병철은 제조업에 투신하기로 결의를 다진다.
시기상조라며 모두가 반대하지만, 바위와 같은 결의로
제조업에 대한 열망을 거두지 않는다.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는 수입 의존도 100%였던 설탕을
3년만에 국내 생산으로 대체한다.
기간식품, 가공식품을 생산하는 식품 메이커로서의 발판을 구축하며,
재계의 정상에 우뚝 올라선다.
이승만 자유당 말기 시중 은행의 민영화에 재계 유력자들이 나섰으나,
이병철과 정재호에게 돌아간다.
5.16으로 이병철은 부정 축재자 1호로 지목되면서
금융삼성을 세우려는 공든 탑이 한순간 무너져 내린다.
이병철은 회장 비서실에 전자사업 부서를 신설하며,
기술 장벽에 도전하기로 결심을 굳힌다.
형편 없는 국내 전자산업 업체들이 삼성의 합작 투자에 반대하면서,
정부는 전량 수출한다는 족쇄를 채워 삼성전자를 허가한다.
이병철의 삼성가는 정치 권력이 일절 보이지 않는다.
이승만의 권유로 자유당 당적을 걸쳐놓았을 뿐이지만
이병철은 엄청난 곤욕을 치른다.
기업가는 정치와 직접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결심이
경영이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철권을 휘두르자 이병철 역시 은밀히 불려간다.
동양방송과 중앙일보 요구에, 동양방송 포기각서에 도장을 찍는다.
정치권력에 참여하지 않는 이상, 삼성은 기술만이 살길이다.
선진 기술을 도입해서 실력을 쌓고, 신기술 개발에 힘을 쏟는 것이
더욱 효율적인 해법이라고 확신한다.
이병철은 첨단기술을 눈여겨 본다.
삼성전자는 대량 생산 재고가 쌓여가면서, 경영난은 심각하다.
이병철은 산업의 쌀 반도체에 대해 학자 및 기업가들로부터 조언을 구한다.
반도체는 장래가 유망하지만 공급과잉으로 생사를 걸어야 한다.
이병철은 세계 공통 규격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첨단기술이 필요한 VLSI 개발 계획 수립을 엄명한다.
도쿄 오쿠라 호텔 에서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면서,
경쟁이 치열하고, 공급 과잉이 예상되지만
시장 규모가 큰 D램 산업 진출 결심한다.
이병철은 일본에 신년에 머물면서,경제 전문기자,
저명한 학자, 유명 기업가를 만나면서,
삼성 왕국에 도입할 새로운 시스템, 관리 기법, 비전 을 찾아내고,
확신이 설 때까지 거듭 확인한다.
삼성그룹 은 우리는 왜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 라는
선언문을 신문 지면에 발표한다.
극심한 기술 격차, 높은 위험성 등은 불가능에 가까운 맹목적 도전이며,
삼성왕국 전체가 뿌리채 흔들릴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살벌한 반도체전쟁이 가속되면서,
미국으로 건너간 우리 인재들을 찾아나선다.
국내파와 국외파가 경쟁하면서 256 D램 개발에 돌입한다.
국내파가 1M D램 개발에 먼저 성공하자,
누구도 시작하지 않던 4M D램 개발을 추진하고,
미국 현지법인이 뒤쳐지면 해체하겠다고 결정한다.
첨단기술의 장벽을 가까스로 넘어서면,
누적 적자라는 또 다른 장벽의 늪에 빠지지만,
이병철은 초지일관 흔들리지 않는다.
1M D램부터는 기술 격차가 줄어들고,
4M D램 생산은 선진국 기업보다 먼저 시작한다.
이병철은 반도체의 길을 열어 경제 영토를 넓혔지만,
삼성 제국을 위한 후계자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3장 못다 이룬 것들 에서는
이병철을 경영의 귀재라 부른다.
96%의 경이적인 사업 성공을 남기고,
질적인 면에서도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삼성 비서실은 세계 시장의 주요 정보를 수집하고,
각지의 지점을 통제하기 위한 헤드 쿼터 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깐깐한 완벽주의는
삼성만의 기업근육이다.
군사정권 출범으로 타의로 기업을 포기하는 희생양이 된다.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원칙을 잊지 않고 꾸준히 실천에 옮긴다.
준비되지 않은 허상의 투망질이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물러설 줄 아는 용기도 절감한다.
한국 비료 사건의 배경에는 정치인의 공작이 숨어 있으며,
신중함을 강조하고 기술을 중시하게 된다.
이병철은 일본으로 건너가 암 수술을 받기 위해 출국하기 전날 밤,
전 가족을 한자리에 모아 후계 구도에 대해 언급한다.
이병철이 3남 이건희를 후계자로 지목할 때가지만 해도
이건희는 미스터리 한 인물이다.
이건희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나고 스케일 이 크다.
왕국의 영속을 위해 3남 이건희에게 대부분을 넘겨주면서,
경영의 상속과 아울러 분가의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이병철은 약골의 모습이지만 회갑에 이르러서도
몸에 이렇다 할 이상 증상이 없다.
이병철의 건강 비법은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도쿄 에서 받은 건강 진단에서 위 수술을 진단받는다.
깊은 고뇌 끝에 병마에 도전할 결단을 내린다.
암 수술을 받은 후 이듬해부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10여년 동안 삼성 왕국의 영토를 왕성하게 확장해 나간다.
폐에 이상 징후가 있음을 느끼고, 암 판정을 받는다.
건강이 계속 나빠지자 의식이 흐려져 가고,
뇌에까지 병변이 전이된다.
이병철의 죽음에 애도의 줄이 이어진다.
숙명의 라이벌 현대그룹 정주영도 이병철을 애도한다.
"나는 이병철이다"는 중국 대륙을 여행 후 무역업에 투신하고 ,
해방 후 삼성을 세워 재계의 기린아로 성장하며,
글로벌 기업의 기초를 다진 이병철의 일대기를 다룬다.
이병철은 황금이 되는 산업을 찾아내어,
자기 기업의 조직과 문화에 효율적으로 접목해 낸다.
이병철은 CEO로서 목적이 누구보다 명확하고 매우 잘 아는
재의 수준을 일등정신으로 펼쳐보인다.
우리 나라 최초의 현대식 대규모 생산시설 제일제당을 건설하면서,
삼성은 무역업이라는 상업자본에서 산업자본으로 선구적으로 전환한다.
어린 시절 낯설기만 한 타향에서 이병철은 늘 외톨이였다.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하지만,
학업을 중단하고 쓸쓸히 고국으로 돌아온다.
마산에서 동업으로 시작한 협동정미소 사업이 부진하자,
이병철이 경영을 일신하면서, 단숨에 흑자경영으로 돌아선다.
중일전쟁 발발로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정미소와 운송회사를 헐값에 청산한다.
이병철은 대륙 기차여행을 하면서 엄청난 거래 규모에 놀란다.
주식회사 삼성상회를 대구에 설립하고 무역업을 시작한다.
8·15해방이 되자 대구 조선양조의 설비를 확충하고 영업을 재개하며,
삼성상회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간다.
이병철은 서울에 사업무대를 옮겨, 거대 무역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삼성물산공사를 시작한다.
이병철은 6.25 전쟁의 혼란 속에 속절없이 대구까지 피난길에 오른다.
조선양조에서 비축된 출자금 3억원으로 창립한 삼성물산주식회사는
창립 한 해만에 3억원의 자본금이 20배로 성장한다.
이병철은 6.25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이병철은 제조업에 투신하기로 결의를 다진다.
모두가 반대하지만, 제조업에 대한 열망을 거두지 않고 설립한,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는 수입 의존도 100%였던 설탕을
3년만에 국내 생산으로 대체하면서 재계의 정상에 우뚝 올라선다.
자유당 말기 시중 은행의 민영화에 성공하지만,
5.16으로 금융삼성을 세우려는 노력이 무너져 내리자,
이병철은 전자사업 부서를 신설하며, 기술 장벽에 도전한다.
수준 미달의 국내 전자산업 업체들의 삼성 합작 투자에 반대하면서,
전량 수출이라는 조건으로 삼성전자가 시작된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철권을 휘두르자 이병철은 동양방송을 포기한다.
이병철의 삼성가는 기업가는 정치와 직접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경영이념이 자리 잡는다.
삼성은 선진 기술을 도입해서 실력을 쌓고,
신기술 개발에 힘을 쏟는 것만이 살길이라 확신한다.
이병철은 첨단기술을 눈여겨 본다.
반도체는 장래가 유망하지만 공급과잉으로 생사를 걸어야 한다.
도쿄 오쿠라 호텔 에서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면서,
이병철은 첨단기술이 필요한 VLSI D램 산업 진출 결심한다.
반도체 산업 진출로 삼성왕국 전체가 뿌리채 흔들릴 수 있다.
미국으로 건너간 우리 인재들을 찾아나서며,
국내파와 국외파가 경쟁하면서 256 D램 개발에 돌입한다.
첨단기술의 장벽을 가까스로 넘어서면,
누적 적자라는 또 다른 장벽의 늪에 빠지지만,
이병철은 초지일관 흔들리지 않는다.
1M D램부터는 기술 격차가 줄어들고,
선진국 기업보다 먼저 4M D램 생산을 시작한다.
이병철은 경영의 귀재다.
삼성 비서실은 세계 정보를 수집하고, 지점을 통제하는 헤드 쿼터 며,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깐깐한 완벽주의는 삼성만의 기업근육이다.
군사정권 출범으로 타의로 기업을 포기하는 희생양이 되고,
한국 비료 사건과 정치인의 공작이 개입되면서,
삼성은 신중함을 강조하고 기술을 중시하게 되고,
준비되지 않은 허상의 투망질이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물러설 줄 아는 용기도 절감한다.
이병철은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나고 스케일 이 큰
3남 이건희를 후계자로 지목한다.
이병철의 건강 비법은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도쿄 에서 받은 건강 진단에서 위 수술을 진단받고,
깊은 고뇌 끝에 암 수술을 받은 후,
10여년 동안 삼성 왕국의 영토를 왕성하게 확장해 나간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맨 땅에서 일어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병철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한국을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부상시키는 기적을 만드는 데 앞장선다.
별다른 기술이나 남다른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인맥이나 학맥조차 뛰어나지 않았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진국의 제당 공업을 도입하면서,
한국에 근대적인 제조업의 길을 열었다.
이병철은 현재 한국의 위상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 그룹의 사활을 걸고 첨단 반도체 산업에 도전하면서,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IT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한국을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올려 놓는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있다.
효율적 업무 프로세스 와 엄정한 인사 고과 시스템을 갖춘다는 의미겠지만
성공 가능성이 높고 안전한 일만 추구한다는 선입견을 갖게 한다.
이병철은 한국 일등 기업에 안주하지 않는다.
삼성 의 명운을 걸고 제당 산업에 뛰어들고, 반도체 산업에 도전한다.
새로운 시스템, 관리 기법, 비전 을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전문가를 만나면서 자문을 받고,
확신이 설 때까지 거듭 확인하는 치밀함을 가졌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어렵고 힘든 도전이라도,
과감하게 추진하는 승부사의 모습을 보이면서,
삼성을 세계적 기업의 반열로 올린다.
삼성이 반도체 산업에 투자할 때, 대부분의 한국인은
노망이 난 이병철이 삼성을 말아먹으려 한다고 손가락질 하지만,
오늘의 한국은 이병철의 도전이 가져온 결실을 누리고 있다.
리더는 미래를 위한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면서 오늘을 살아가야 하며,
모두가 반대해도 미래를 향해 과감히 나아가야 한다.
기술과 자원이 일천한 상태에서, 세계적 경제 강국으로
한국을 발전시킨 데, 이병철의 결단과 도전이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이병철이다"에서 이병철의 도전의 삶을 살펴보면서,
리더가 갖추어야 할 자질과, 리더십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일송북 과 컬처블룸 서평단에서 "나는 이병철이다"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박상하 #일송북 #서평 #전기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