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의 슬기로운 생활수행
법상 지음 / 열림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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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알려주는 삶의 지혜





책을 선택한 이유


여법하다는 말은 이치에 맞는다는 말이다.


21세기 혁신의 아이콘 은 스티브 잡스 다.


PC 시장의 개척자며,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시대를 개막했다.

찬란한 성공 후 배신으로 몰락하지만, 오뚜기처럼 일어나

화려하게 재기한 인생 드라마를 그려낸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망하기 직전 애플을 세계 최고 IT 회사로 부활시킨

스티브 잡스의 성공의 핵심은 단순함에 있다.


스티브 잡스 는 선불교에 심취한다


불교의 여법함에 따라 직관과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단순함이 애플의 창의와 혁신을 이끌어 낸다.


불교의 가르침을 알아보기 위해 "법상의 슬기로운 생활수행"을 선택한다.




"법상의 슬기로운 생활수행"은


1부 괴로움은 생각으로부터

2부 중도, 인연 따라 왔다 가는 것

3부 여덟 가지 생활수행, 팔정도八正道

4부 진실은 이미 눈앞에

5부 삶을 놀이처럼

6부 행복을 찾아서


로 구성되었다.





1부 괴로움은 생각으로부터 에서는


괴로운 이유는 괴로움이 진짜 같아서이다.


현실에서 느끼는 모든 괴로움들이 실제라고 여기면서,

빠져들어가 있으니 괴롭다.



현실은 분별이 만든 꿈이다.

견디지 못하면 자기 마음을 바꾸는 방법을 쓸 수 있다.


분별심은 허망하다.


내면이 쉴 때, 분별이 쉴 때, 올바르게 진리를 체득하는

무분별지에서 근원적인 지혜가 드러나는 줄 모른다.


생각이 없어야 된다는 말은 생각을 하되 생각에 사로잡히거나

집착하지 않고, 생각을 하라는 뜻이다.



번뇌망상, 괴로움은 집착에서 온다.

무위로서 임하면 집착을 내려놓고, 순수한 열정이 붙는다.



집착하면 삶이 제한되고 고착된다.

집착하지 않으면 전체를 보게 된다.



무위에 자연스럽게 사는것이 삶의 지혜다.


제법실상은 삶이 그대로 실상이란 말이다.

내가 판단하는 건 중생의 분별망상이다.



인연에 내맡긴다는 건 어떤 방식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다.


삶을 거부하지 않고,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

불이중도의 실천이고 수행이다.


삶이 바로 진실이니 이 순간이 바로 진실이다.


주어진 현실에 삶을 100% 허용하고 받아들이고

삶을 연소하고 사는 것, 완전히 내맡기고 사는 삶,

그게 진정한 불이중도 지혜의 실천이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무아다.


인연 따라 잠깐 인연이 화합된 것뿐이다.

마하는 진정한 자기를 말한다.

남들과 비교하는 모든 생각을 믿지 않으면 자유로워진다.



마하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상대적인 세계는 연기의 세계다.



남들과 비교하는 모든 생각을 믿지 않으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분별의 세계에 휩쓸려 다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상온은 표상 작용이다.


세상을 간접 경험하게 만드는 말이라는 필터,

언어 개념과 모양을 명상이라고 부른다.



헛된 망상은 표상으로 걸러서 보는 마음이다.


세상을 본다고 보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있는 그대로를 못 보고 내 표상으로 걸러진 것만 보며

전체를 보지 못한다.



불교는 실상을 본다.


표상을 진실인 줄 알고서,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집착하고 버려야 한다고 느끼면서 취사 간택해서 만들어놓은 것을

내가 쥐고 살았구나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2부 중도, 인연 따라 왔다 가는 것 에서는


중도로 사는 것은 과도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매 순간 새로운 것밖에 없다.

내 눈으로도 달라진 걸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머릿속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


무아는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

끊임없이 인연 따라 변화해가고 있을 뿐이다.



인연 따라 생기고 사라지니까 공하고 실체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분별로 내 것이라고 규정한다.



모든 것들은 그냥 잠깐 생겼다가 사라질 뿐이다.

분별로 내 것이라고 규정한다.



나는 나 아닌 것들이 인연 따라 모여서 이루어진다.


인연을 잘 가꾸면 내 인생도 잘 풀린다.

인연을 소홀하게 여기면 자기 인생에도 소홀해진다.


가장 가까운 인연이 나의 업을 드러내는 인연이다.

가까운 인연부터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당장 복을 하나 지어야 한다.

업이라는 건 습이 되어서 반복만 하면,

선업 짓는 것이 훨씬 쉬어진다.



중도를 실천하게 되면 저절로 있는 그대로를 허용하게 된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것이다.

중도를 실천하는 것은 수행을 하는 게 아니다.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할 건 다 한다.



시간 많다고 공부되는 것이 아니다.

공부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마음의 간절함이 중요하다.


제도는 자기가 준비돼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를 제도하는 것, 중생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의지해서 나 자신을 깨닫는 것이다.



3부 여덟 가지 생활수행, 팔정도八正道 에서는


팔정도는 여덟 가지 바른 견해, 바른 길이다.


중도적으로 보고, 중도적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정견 正見은 바르게 보는 바른 견해로 중도의 핵심이다.

분별로 보면 바르지 않게, 무분별로 보면 바르게 보는 것이다.


정견은 있는 그대로 보는 무위법이다.

분별하지 않고 바라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


마음의 분별이 괴로움을 만들 뿐, 괴로움의 실체는 없다.



괴로워하는 건 분별이 괴로워하는 것이다.

분별이 진짜라고 생각해서 주인 자리를 내주고 괴로워진다.



본래는 불생불멸, 무생법인이지만

분별의 세계로 본래를 보지 못한다.


해탈, 열반, 자성, 불성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괴로움이 사라지면 아무 일이 없다.


머릿속 생각만 내려놓으면 해탈이고, 열반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정견이다.



정사유 正思惟는 바른 생각, 바른 뜻이다.


사유하되 집착할 바가 없다.

생각에 과도하게 머물러 집착하지 않는다.


생각에 집착하지만 않으면 된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되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다.



정어 正語는 바른 말이다.


지혜는 자비다. 화에 휘둘리지 않는다.

연기법은 지혜이고, 지혜가 공성이며,

무아, 동체대비심이다.


바른 자각과 자비심이 바탕이 되면 자비로운 말이 나온다.

상대방을 얕보는 말과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정업 正業은 바른 행위를 한다.


정견에서 정업이 나온다.

연기적 자각은 인과적인 지혜가 있다.


몸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은 같은 파장을 끌어당긴다.



정명 正命은 직업이다.

삿된 마음과 행동으로 직업 생활을 하는지 견책하는 것이다.


상생 경영, 융합, 통섭 등의 상관적 개념들은

연기법의 상의상관성이 정신적 바탕이다.



정정진 正精進은 수행의 바탕이다.


부지런하고, 바른, 꾸준한 노력이다.

나쁜 법은 서둘러 없애려고 노력해야 하며,

분별 망상이라는 나쁜 법에 끌려가지 않는다.



정념 正念은 순간순간에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분별에 끌려가지 않도록 알아차린다.

있는 그대로 과날하는 것이 신념처 수행이다.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모든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다.


수념처는 느낌,감정을 그대로 관찰한다.


십념처는 느낌을 제외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동일시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법념처는 몸과 느낌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법이다.


정정 正定은 올바른 집중이다.




4부 진실은 이미 눈앞에 에서는


올바로 사는 삶이란 현실을 사는 것이다.


인연 따라 생겨난 모든 것들은 반드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본래 면목은 태어난 적도 없고, 죽을 수도 없다.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고, 실상 실체가 없다.

삶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것이 삶의 지혜를 실천하는 길이다.



삶을 구경하는 게 진짜 자기다.


화는 손님이다. 화는 내버려둔 채로 잠시 본다.

화와 내가 하나가 돼면 온통 내가 화가 돼버린다.

화에 끌려다니는 건 주인이 아니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이 자기다.

마음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지혜는 좋음과 나쁨, 옳음과 그름이 항상 같이 있다.

나라는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모든 문제와

모든 괴로움이 시작된다.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 깨달음의 반을 성취한 것이다.


삶을 심각하게 보지 않고 가볍게 바라볼 수 있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가볍게 바라보는,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집착없이 바라보는 의식 상태로 바뀌게 된다.



생각을 지켜보면 생각은 끊임없이 왔다 간다.


과거는 허상이며 실재하는 게 아니지만,

과거의 기억을 실제라고 여긴다.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는 것은 허망한 것이다.





5부 삶을 놀이처럼 에서는


세상은 개념과 분별로 만들어 놓은 상징이다.


분별상을 스스로 만들고 사로잡혀서 실제라고 믿는다.

무위행은 하되 함이 없이 하는 것이다.

유위행은 지금 하는 걸 열심히 하는 것이다.


유위를 하는 사람은 실제인 줄 안다.

무위인 줄 아는 사람은 본래 가치가 없다는 걸 안다.


모든 것들은 현상이다.


있음은 없음으로 인해서 서고,

없음은 있음으로 인해서 나타난다.


무위를 잘 공부하는 사람은 무위를 취하는 사람이 아니다.

진짜 무위는 유위도 넘어서고 무위도 넘어선다.



이치를 밝게 알면 참된 해탈이며 법문을 아는 것이다.


판단하고 분별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하면서

조작하는 일을 멈추게 된다면 아무일이 없다.


분별을 놔버리고, 어떤 것이 오든 무방비로 경험해버리며,

완전히 내버려두는 허용이 나를 살리는 일이다.



삶은 쉽게 살아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다르게 말하면 놔버린다.

괴로움과 분별에서 벗어나면 극락국토다.



괴로움이 인생에 나타나는 유일한 이유는

괴로움이 커야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발심이 커지기 때문이다.


무너질수록 크게 발심을 하게 된다.


인생이 이끄는 대로, 인연 따라 가면, 힘을 빼고 흘러간다.

삶의 지혜를 따라서 자유롭게 흘러가면, 걸림 없는 삶이 된다.


이 세상은 본래 의미가 없다.


지금 여기가 성지며, 자기가 있는 곳이 성지다.

성스러움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부처라는 상을 만들어놓고 부처가 있다면 허망하다.



상황에 사로잡혀 있으면 상황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는 착각을 한다.


돈이라는 데 구속되어 있으면, 사로잡혀 있으면,

인생의 전부라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인생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언가에 사로잡혀

변하는 집착의 대상에 꽃혀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집착이 크면 클수록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돼도 좋고 안 돼도 좋아라는 마음이 있으면 언제나 자유롭다.


위파사나는 삶을 구경꾼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삶과 노는 사람은 힘을 주지 않는데도 될 것들이

아주 쉽게 이루어진다.




6부 행복을 찾아서 에서는


자기 삶의 경험에 의해서 의식이 만들어진다.


부처의 차원에서는 평등하게 똑같은 것이 통달이다.

인연이 달라서 모양만 다른 것이다.


하나의 본성이지만, 모였다 흩어지는 인연이 다른 것뿐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지만, 반드시 이루어내겠다는

마음은 어리석음일 수 있다.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연기법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 인연 따라 된다.



세상은 환영이다.

절대적으로 고정된 실체나 진실 같은 것은 없다.



모든 일은 나를 위해 일어난다.


자기 생각과 자기 분별심은 지옥을 만든다.

저마다의 자리가 있는 것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옳다라는 집착으로 살아왔던 견해를 놓기는 쉽지 않다.

내가 옳다는 생각보다는 틀렸다는 생각이 더 진실에 가깝다.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갈 뿐인 것을

마음에 드는 것만 취해서 생각이라고 쥔다.


본성은 공하다.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끝나버린다.



가난과 부는 왔다 간다. 몸도 마찬가지다.


인생에서 오고 가는 것을 자기라고 여기면

삶과 죽음을 흘러다니면서 어지럽게 미쳐 날뛴다.


왔다 가는 것들은 인연의 조화일 뿐이다.




"법상의 슬기로운 생활수행"은

삶의 실상, 중도의 실천, 생활수행과 팔정도八正道,

삶을 관조하기, 위파사나 의 삶, 세상의 본질을 다룬다.



현실은 분별이 만든 꿈이다.


괴로움들이 실제라고 여기니 괴롭다.

분별심은 허망하다.


생각을 하되 생각에 사로잡히거나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번뇌망상, 괴로움은 집착에서 온다.

집착하지 않으면 삶 전체를 보게 된다.



무위에 자연스럽게 사는것이 삶의 지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삶을 거부하지 않고,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

불이중도의 실천이고 수행이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무아다.


인연 따라 잠깐 인연이 화합된 것뿐이다.

마하는 진정한 자기를 말한다..

마하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상온은 표상 작용이다.


헛된 망상은 표상으로 걸러서 보는 마음이다.

있는 그대로를 못 보고 내 표상으로 걸러진 것만 보며

전체를 보지 못한다.



불교는 실상을 본다.


표상을 진실인 줄 알고서,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집착함을 깨닫는 것이다.



중도로 사는 것은 과도하게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안다.



무아는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

끊임없이 인연 따라 변화해가고 있을 뿐이다.



인연을 잘 가꾸면 내 인생도 잘 풀린다.


인연을 소홀하게 여기면 자기 인생에도 소홀해진다.

가까운 인연부터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업이라는 건 습이 되어서 반복만 하면,

선업 짓는 것이 훨씬 쉬어진다.



중도를 실천하게 되면 저절로 있는 그대로를 허용하게 된다.


중도를 실천하는 것은 수행을 하는 게 아니다.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할 건 다 한다.



제도는 자기가 준비돼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를 제도하는 것, 중생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의지해서 나 자신을 깨닫는 것이다.



팔정도는 여덟 가지 바른 견해, 바른 길이다.


정견 正見은 바르게 보는 바른 견해로 중도의 핵심이다.

정사유 正思惟는 바른 생각, 바른 뜻이다.


정어 正語는 바른 말이다.

정업 正業은 바른 행위를 한다.


정명 正命은 직업이다.

정정진 正精進은 수행의 바탕이다.


정념 正念은 순간순간에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정정 正定은 올바른 집중이다.



올바로 사는 삶이란 현실을 사는 것이다.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고, 실상 실체가 없다.

삶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것이 삶의 지혜를 실천하는 길이다.



화는 손님이다.


화와 내가 하나가 돼면 온통 내가 화가 돼버린다.

화에 끌려다니는 건 주인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모든 문제와

모든 괴로움이 시작된다.



여행을 떠나면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있는 그대로 집착 없이 바라보는 의식 상태로 바뀌게 된다.



무위행은 하되 함이 없이 하는 것이다.

유위행은 지금 하는 걸 열심히 하는 것이다.


유위를 하는 사람은 실제인 줄 안다.

무위인 줄 아는 사람은 본래 가치가 없다는 걸 안다.


있음은 없음으로 인해서 서고,

없음은 있음으로 인해서 나타난다.

진짜 무위는 유위도 넘어서고 무위도 넘어선다.


분별을 놔버리고, 어떤 것이 오든 무방비로 경험해버리며,

완전히 내버려두는 허용이 나를 살리는 일이다.



괴로움과 분별에서 벗어나면 극락국토다.


괴로움이 커야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발심이 커진다.

무너질수록 크게 발심을 하게 된다.


인생이 이끄는 대로, 인연 따라 자유롭게 흘러가면,

걸림 없는 삶이 된다.



집착이 크면 클수록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돼도 좋고 안 돼도 좋아라는 마음이 있으면 언제나 자유롭다.


위파사나는 삶을 구경꾼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힘을 주지 않는데도 될 것들이 아주 쉽게 이루어진다.



하나의 본성이지만, 인연이 달라서 모양이 다르다.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연기법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 인연 따라 된다.



세상은 환영이다.

절대적으로 고정된 실체나 진실 같은 것은 없다.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갈 뿐인 것을

마음에 드는 것만 취해서 생각이라고 쥔다.


왔다 가는 것들은 인연의 조화일 뿐이다.




불교는 올바른 삶의 이치를 이야기 한다.


세상은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지만,

분별과 집착에 사로잡히면 괴로움에 빠진다.



삶의 관조하면서 인생의 진실을 알게 된다면,

본래 면목을 깨닫고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다.



불교는 삶의 진실을 알려준다.


삶의 진실을 깨달으면 여법하게 살 수 있다.

여법하게 산다면 삶의 바르게 살 수 있다.



삶은 온갖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삶의 본질을 깨달으면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는다.


"법상의 슬기로운 생활수행"은 불교의 근본 원리를

쉽게 설명하고, 불교가 가르침을 일상에 적용하면서,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열림원 과 컬처블룸 서평단에서

"법상의 슬기로운 생활수행"을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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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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