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 - 인생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명상록 읽기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지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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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이해하기




책을 선택한 이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는 로마의 마지막 현명한 황제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로마 제국을 슬기롭게 이끈 정치가이자,

위대한 스토아 철학자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이 담긴 명상록은 유명한 고전이지만,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명상록의 이해 수준을 높이기 위해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을 선택한다.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는


1장 아우렐리우스와 《명상록》​

2장 철학이 나를 지킨다

3장 자신을 바라본다

4장 감정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5장 자연과 일치하여 살아간다

6장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법

7장 바깥에 있는 것은 사람을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

8장 곤경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9장 선악무기한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10장 운명을 받아들인다

11장 죽음에 관하여

12장 지금 여기를 살아간다

13장 《명상록》을 넘어서


로 구성되었다.






1장 아우렐리우스와 《명상록》 에서는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 시대는 수해와 질병이 발생하고,

외적이 국경 침입을 시도하면서, 로마 는 과거의 영광을 잃는다.


아우렐리우스 는 전쟁터 야영 텐트 안에서 양초 불빛에 의지하며

명상록을 써 내려간다.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 는 차기 황제로 아우렐리우스 를 지명하지만,

아우렐리우스 는 황제 지명을 두려워 한다.


아우렐리우스 는 스토아 철학에 심취한 철학자로서의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운명을 감내하고 책임을 다한다.


명상록 은 아우렐리우스 의 이야기지만, 고전으로 읽히는 것은

후세에 전할 가치와 보편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우렐리우스 는 라틴어 가 아닌 그리스어 로 명상록을 쓴다.


스토아 철학의 언어라는 이유뿐 아니라, 자기 내면의 생각을

엮어나가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명상록은 자신만을 위한 글이므로, 의미 파악이 어려운 부분이 많고,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기에 숨김없이 쓰게 된다.


사고는 내가 나와 행하는 내적인 대화다.


혼자 하는 대화는 논리가 물러지기 쉽다.

아우렐리우스는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고,

내적 대화를 타자와 대화할 때처럼 긴박하게 만든다.


자신에게 솔직한 말을 거는 아우렐리우스에게 공감하게 된다.


회의는 철학에 필요한 태도다.


스스로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고, 상식적 생각을

안이하게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하다.

아우렐리우스 는 노트 에 진짜 자기 생각을 쓴다.



2장 철학이 나를 지킨다 에서는


아우렐리우스 는 플라톤 이 말하는 철인 정치는 이상이며,

실현할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전진하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실현되지 않을 이상에 실망할 바에야 처음부터 이상을 내걸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현실에 매몰된다.


철학은 현상을 추인하지 않는다.

실현이 어려워도 어때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밝힌다.



아우렐리우스 는 황제로서 사는 것과 철학자로서 사는 것,

어느 한쪽을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관계는 고통의 원천이지만, 삶의 기쁨과 행복 역시

인간관계 안에서만 얻을 수 있다.


철학에서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를 문제 삼는데, 행복은 인간관계와 떨어져셔는

생각할 수 없다.


인간관계를 이해하려면 인간관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두가지 이상의 선택지를 두고 고민할 때,

우선순위를 정해서 중요한 것을 먼저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아우렐리우스 는 철학을 학문으로써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실 생활 안에서 연구하기로 마음먹는다.


경험이 있다고 저절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관계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다.



철학은 황제로서 사는 아우렐리우스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철학이 없으면 이성을 지켜낼 수 없다.


인생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와 행복에 관해 생각하는 사람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본래적 의미의 철학자다.




3장 자신을 바라본다 에서는


리듬 은 자기 삶 본래의 리듬을 뜻한다.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자신에게 있어서,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행복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외부적인 원인은 진정한 원인이 아니다.


자신 이외의 것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지 않는다면,

자신의 리듬을 되찾을 수 있다.


알 수 없는 것은 타인의 마음의 움직임뿐만이 아니다.


자기 마음의 움직임도 반드시 안다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행동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자기 마음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4장 감정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에서는


분노나 증오, 슬픔은 외부의 작용에 영향을 받아 일어난다.


외부 작용이 마음에 파도가 일어나는 것을 억제하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

스토아 철학의 행복이다.


평정심, 아파테이아 는 정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마음 상태다.



약자에게는 늘 분노가 있다.


분노에 굴복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며,

힘이 있는 사람은 분노에 굴복하지 않는다.



화를 내면 행동이 개선되지 않는다.

분노를 터뜨리면 관계가 멀어진다.


자신이 옳고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하면서,

누가 옳은지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권력 싸움을 하는 것이다.



분노는 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화를 내는 것은 반발을 초래할 뿐이다.

상대가 알아듣게 전달해야 한다.


상대방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가르쳐 달라고 해야 한다.

화내는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주목해야 한다.


자신도 잘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관용을 베풀 수 있다.



기대하지 않는 인간은 내어주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타산적인 사람은 타인이 무언가를 하면 상응하는 대가를 생각하고,

대가에 어울리는 정도의 일밖에 하지 않는다.


자신을 향한 관심을 타자를 향한 관심으로 바꿔야 한다.


타자를 향한 관심, 공동체 감각은 자신의 행위를 의식하지 않는다.

행위의 가치는 평가와는 별개며, 타자의 평가와 자신의 가치도 관계 없다.




5장 자연과 일치하여 살아간다 에서는


자연은 우주의 질서를 나타내는 법칙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본래 이유는 협력하기 위해서다.

소우주, 미크로코스모스 인 인간은 이성을 분유하며,

대우주, 마크로코스모스 와 서로 조화를 이루는 관계다.


아우렐리우스 는 로마 황제며, 인간으로는 우주에 속해 있다.


이성에 따라 판단하고, 타자와 관계를 쌓아 유지하는 일이 인간의 의무다.


타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갈 것이냐를 생각할 때,

타자에 관해 불평하고 비난하는 대신,

어떤 마음으로 타자와 관계를 맺을지 생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6장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법 에서는


뜻밖에 싫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보다는

예상해두는 편이 타격이 작다.


불평은 그만두고, 불만을 중얼거리는 것조차 그만둔다.

직책과 사람의 가치는 관계 없다.



아우렐리우스 는 잘못은 무지라고 말한다.


선과 악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무지 탓에 잘못을 저지른다.


누구도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는 사실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단죄할 수 없게 된다.



미워하거나 화를 내서 대립하는 일은 자연에 반하는 일이다.


경쟁은 인간 본래의 존재 방식이 아니다.

세계가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협력하는 것이

인간 본래의 존재 방식이다.


범죄자의 갱생에 필요한 것은 벌이 아니라 공동체 감각의 육성이다.


자신이 고독하지 않고 타자와 연결되어 있으며,

필요하면 자신을 도와주는 동료라는 사실을 알면,

문제만 일으키던 사람이라도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




7장 바깥에 있는 것은 사람을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 에서는


표상, 판타시아 는 감각기관이 인식할 때 마음 안에 각인하는 영상이다.


고민이 생기는 이유는 판단을 잘못하기 때문이며,

올바로 판단할 수 있으면 고민은 사라진다.


바깥에 있는 것에 관해 판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허위의 것, 명석하지 않은 표상을 승인하지 않는다.


타자가 자신을 나쁘게 말하거나, 타자에게 비난받거나,

배신당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영향을 받는 일은 없다.



8장 곤경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에서는


인간이 견디지 못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르는 것이 무지다.

허영은 고매함을 과시해 태연하게 피해를 보지 않는다.


사려 깊은 사람은 무시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일은 없다.


결과를 내지 않으려면 회피한다.

불안이나 두려움의 감정을 만들어서 도망친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슬픈 감정은 그대로 받아들여도 된다.


슬픔의 감정 안에 자신을 놓아버리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9장 선악무기한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에서는


진정한 선은 덕뿐이고, 악덕만이 악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재산이나 명예는 악이다.

선, 악을 제외하면 선악무기한 것이다.


선악무기한 것은 선, 악이라는 추단을 심어주지 않는 것이다.

판단이 각인되고 나면 나중이 되어서도 수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선악무기하다고 봐야 하는 이유는 언제 어느 때 잃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덕, 아레테 의 본래 의미는 좋음이다.

소피스트 는 정치가가 되어 성공하는 일의 선, 악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지만,

소크라테스 는 선, 악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레테 가 있다고 생각한다.


돈, 평판, 명예 자체로는 선이 아니다.

행복이 되려면 선인가,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운은 선악무기한 것이다.


비운에 사로잡히거나, 미래를 불안해하며, 절망하는 일 없이

견디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행복이다.


타자를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만 하고, 남에게 친절을 다하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만 한다.



10장 운명을 받아들인다 에서는


모든 것이 운명이나 신의 섭리에서 일어난다면,

무엇을 하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일어난 일이 모두 우연이라고 생각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거라는 간단한 예상조차 할 수 없다.


운명은 우연한 일이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자신이 부여하는 의미는, 운명에 농락당하지 않고 살 수 있게 한다.



운명이라는 처방을 받아들어야 한다.


우주에는 하나의 조화가 있고, 운명은 완전한 원인을 이룬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




11장 죽음에 관하여 에서는


죽음에 의해 헤어진다면, 자기 일부가 죽는 것처럼 느낀다.


죽음이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불안을 느끼게 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삶도 죽음도 선악무기한 것이다.


죽음도 삶의 변화일 뿐이다.


때가 차면 영혼이 육체에서 탈락하는 것이며,

죽음을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 태도는

사려를 갖춘 태도가 아니다.


죽음은 우주의 본성에 이익을 가져다준다.

만유의 자연도 새롭게 한다.



죽으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죽음이 임박했든 아니든 내가 할 일을 완수해 나가야만 한다.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자연을 따라 사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면,

다른 사람과 적절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12장 지금 여기를 살아간다 에서는


변화는 변화일 뿐이다.

판단을 더하지 않으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은 부재다.


죽음은 이별이지만, 내 안에서 계속 살아가는

사실을 자각하면 슬픔은 기쁨으로 변해갈 수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곧바로 착수하면,

내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인생은 분명 달라진다.



지금을 보면 과거도 미래도 모두 본 것이다.


경험을 아무리 거듭해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단 한 번의 경험으로도 배울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결심한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첫발을 내딛지 못하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은 오직 지금만을 살고 있다.

장래에 기대지 않고 지금을 살려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정의롭게 숙고해야 한다.



13장 《명상록》을 넘어서 에서는


자기 힘이 미치지 않는 것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외부로부터 닥치는 어려움이 인생의 앞길을 가로막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기 권한 내에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가 두렵더라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


인생의 의미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실천의 철학은 관조의 철학이어야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는 로마의 마지막 현명한 황제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로마 제국을 슬기롭게 이끈 정치가이자,

위대한 스토아 철학자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이 담긴 명상록은 유명한 고전이지만,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명상록의 이해 수준을 높이기 위해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을 선택한다.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는

아우렐리우스 의 생애와 명상록의 배경을 소개하고,

철학의 의의, 자기의 마음을 바라보기, 감정을 다루기,

자연과 사회 속 인간의 위치, 인간 관계의 마음가짐,

타자에게 흔들리지 않기, 운명을 사랑하기,

죽음을 받아들이기, 현재를 살아가기, 명상록의 철학을 다룬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 시대는 수해와 질병이 발생하고,

외적이 국경 침입을 시도하면서, 과거 로마의 영광을 잃는다.


아우렐리우스 는 전쟁터 야영 텐트 안에서 양초 불빛에 의지하며

명상록을 써 내려간다.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 는 차기 황제로 아우렐리우스 를 지명하지만,

아우렐리우스 는 황제 지명을 두려워 한다.


아우렐리우스 는 스토아 철학에 심취한 철학자로서의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운명을 감내하고 책임을 다한다.



아우렐리우스 는 모국어 라틴어 가 아닌 그리스어 로

자기 내면의 생각을 엮어나가기 위해 명상록을 쓰면서,

의미 파악이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숨김없이 쓰게 된다.


아우렐리우스는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고,

내적 대화를 타자와 대화할 때처럼 긴박하게 만들면서,

솔직한 아우렐리우스에게 공감하게 된다.




실현되지 않을 이상에 실망할 바에야 처음부터 이상을 내걸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현실에 매몰된다.


철학은 현상을 추인하지 않는다.

실현이 어려워도 어때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밝힌다.



인간관계는 고통의 원천이지만, 삶의 기쁨과 행복 역시

인간관계 안에서만 얻을 수 있다.


행복은 인간관계와 떨어져셔는 생각할 수 없다.

인간관계를 이해하려면 인간관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경험이 있다고 저절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관계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다.


철학이 없으면 이성을 지켜낼 수 없다.


인생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와 행복에 관해 생각하는 사람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본래적 의미의 철학자다.




리듬 은 자기 삶 본래의 리듬을 뜻한다.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자신에게 있어서,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행복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의 움직임도 반드시 안다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행동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자기 마음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분노나 증오, 슬픔은 외부의 작용에 영향을 받아 일어난다.


평정심, 아파테이아 는 정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마음 상태다.


분노에 굴복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며,

약자에게는 늘 분노가 있다.

힘이 있는 사람은 분노에 굴복하지 않는다.



화를 내면 행동이 개선되지 않는다.

분노를 터뜨리면 관계가 멀어진다.


분노는 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자신도 잘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관용을 베풀 수 있다.


자신을 향한 관심을 타자를 향한 관심으로 바꿔야 한다.

타자를 향한 관심, 공동체 감각은 자신의 행위를 의식하지 않는다.

행위의 가치는 평가와는 별개며, 타자의 평가와 자신의 가치도 관계 없다.



자연은 우주의 질서를 나타내는 법칙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본래 이유는 협력하기 위해서다.

소우주, 미크로코스모스 인 인간은 이성을 분유하며,

대우주, 마크로코스모스 와 서로 조화를 이루는 관계다.


타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갈 것이냐를 생각할 때,

타자에 관해 불평하고 비난하는 대신,

어떤 마음으로 타자와 관계를 맺을지 생각하는 것에 초점을 맟춘다.




불평은 그만두고, 불만을 중얼거리는 것조차 그만둔다.


선과 악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무지 탓에 잘못을 저지른다.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는 사실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단죄할 수 없게 된다.



미워하거나 화를 내서 대립하는 일은 자연에 반하는 일이다.


범죄자의 갱생에 필요한 것은 벌이 아니라 공동체 감각의 육성이다.


자신이 고독하지 않고 타자와 연결되어 있으며,

필요하면 자신을 도와주는 동료라는 사실을 알면,

문제만 일으키던 사람이라도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




표상, 판타시아 는 감각기관이 인식할 때 마음 안에 각인하는 영상이다.


바깥에 있는 것에 관해 판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허위의 것, 명석하지 않은 표상을 승인하지 않는다.



인간이 견디지 못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르는 것이 무지다.

사려 깊은 사람은 무시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일은 없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슬픔의 감정 안에 자신을 놓아버리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진정한 선은 덕뿐이고, 악덕만이 악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재산이나 명예는 악이다.

선, 악을 제외하면 선악무기한 것이다.



선악무기하다고 봐야 하는 이유는 언제 어느 때 잃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덕, 아레테 의 본래 의미는 좋음이다.


돈, 평판, 명예 자체로는 선이 아니다.

행복이 되려면 선인가,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운은 선악무기한 것이다.


타자를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만 하고, 남에게 친절을 다하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만 한다.



운명은 우연한 일이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자신이 부여하는 의미는, 운명에 농락당하지 않고 살 수 있게 한다.


운명이라는 처방을 받아들어야 한다.


우주에는 하나의 조화가 있고, 운명은 완전한 원인을 이룬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



죽음이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불안을 느끼게 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삶도 죽음도 선악무기한 것이다.


죽음도 삶의 변화일 뿐이다.


죽음은 우주의 본성에 이익을 가져다준다.

만유의 자연도 새롭게 한다.


죽으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죽음이 임박했든 아니든 내가 할 일을 완수해 나가야만 한다.



변화는 변화일 뿐이다.

판단을 더하지 않으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




죽음은 이별이지만, 내 안에서 계속 살아가는

사실을 자각하면 슬픔은 기쁨으로 변해갈 수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곧바로 착수하면,

내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인생은 분명 달라진다.



지금을 보면 과거도 미래도 모두 본 것이다.


경험을 아무리 거듭해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단 한 번의 경험으로도 배울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장래에 기대지 않고 지금을 살려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정의롭게 숙고해야 한다.



자기 힘이 미치지 않는 것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가 두렵더라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


인생의 의미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실천의 철학은 관조의 철학이어야 한다.



아우렐리우스 는 로마 의 마지막 오현제로,

쇠약해져가는 로마 를 위해 헌신한 철인황제다.


스토아 철학자이자 로마 황제인 아우렐리우스는

진중에서 황제이면서 철학자인 자신의 생각을

명상록으로 남긴다.


명상록은 오래된 고전이며, 개인적인 글이므로,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명상록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통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행동을 반성하며, 자신을 타이른다.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은 명상록의 의미를

저자의 삶의 경험과 여러 철학자 등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의 시각으로 해설한다.


세계 최강의 권력자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 도

인생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철학을 통해 자신의 인생의 길을 찾는다.


인생의 다양한 문제에 고민하는 철인황제의 철학은

현대인의 삶의 고민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은

아우렐리우스 의 명상록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삶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인생 해법을 찾도록 돕는다.


위즈덤하우스 와 컬처블룸 서평단에서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을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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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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