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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소크라테스 - 인공지능은 못하고 인간은 할 수 있는 철학적 질문들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4년 8월
평점 :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는 철학
책을 선택한 이유
알파고 바둑 대국은 인공지능의 성장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고,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은 가공할 인공지능의 위력을 알린다.
거부할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알아보기 위해
"AI 시대의 소크라테스"를 선택한다.
"AI 시대의 소크라테스"는
1장 인간과 인공지능의 파트너십
2장 사고하는 인공지능: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3장 공감하는 인공지능: 기계는 느낄 수 있는가?
4장 의식 있는 인공지능: 기계는 자유의지가 있는가?
5장 포스트휴먼 시대의 디지털 인간 조건
로 구성되었다.
1장 인간과 인공지능의 파트너십 에서는
조용한 혁명은 변화의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급격한 변화 자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은 혁명적 변화를 초래한다.
인공지능의 존재를 확실히 확인시키고, 삶과 사회에
혁명적 영향을 가지고 다가온 것은 챗GPT의 출현이다.
대화형 맥락에서 인간과 유사한 텍스트를 이해하고,
생성하도록 설계된 대화형 인공지능 모델이다.
기계가 인간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것은
새로운 인지 혁명의 전조다.
인공지능 시대는 인간이 기계와 대화를 나누는 시대다.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물을 수 있으며, 물음에 대해 정확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기계와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질수록, 대화 상대가
기계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 혁신과 혁명의 핵심이다.
사고방식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기술은 드물다.
사고방식과 소통방식에 혁명적 영향을 미칠
인공지능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이성의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은 직관이 없다.
사고방식의 혁명은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일어난다.
이성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해서, 대상의 성질에 관해
선험적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지 통찰할 수 없다.
이성은 자신의 설계에 따라, 자기 자신이 생산하는 것만을 이해한다.
질문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거부할 수도 없고, 대답할 수도 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공지능을 다루는 기술도 더욱더 중요해진다.
챗GPT에게 무엇을 질문하든 답을 얻을 수 있지만,
질문과 응답은 대화를 하듯 반복적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인간의 판단력과 의사소통 기술을 사용해,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예리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이 중심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질문에 답하더라도,
소피스트 처럼 결코 지혜를 주지 않는다.
인공지능의 답변은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이고 명료하다.
소크라테스적 질문의 핵심은 자기 성찰과 비판적 사고다.
과학혁명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내버려두고, 이성으로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올수록,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느끼는가,
자유의지의 의미의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2장 사고하는 인공지능: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아무리 잘 모방해도,
기계가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것이 남아있는지,
인공지능은 인간만이 가진 본성에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 생각하고 추론하는 과정에는 언제나 오류 가능성이 있다.
생각을 스스로 검토해야 하며, 생각은 결국 의심이다.
새로운 철학은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인간으로
살 수 있는가를 성찰해야 한다.
데카르트식 정신과 신체의 이원론을 잠시 배제하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자기 인식이다.
자발적 감시는 감시가 아니라는 착각에서,
우리 자신을 추적하고 기록함으로써,
감시의 데이터를 산출한다.
지식은 언제든지 개인을 통제할 권력으로 작용한다.
인공지능은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식할 수 있고,
미래의 행동을 에측하며, 제어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누군가가 우리를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이다.
철학은 무지를 이해의 전제 조건으로 삼았다.
현대는 이해의 개념을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축소한다.
수량화된 자기 인식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에 관한 지혜를 결코 제공하지 못한다.
수리 능력은 수학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이해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이해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면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패턴을 발견하고, 모델로 분석하며, 예측하면서,
방대한 데이터를 짧은 시간에 처리한다.
유사성이 서로 중복되고 교차하는 복잡한 연결망을 통해
패턴을 인식하고 세계를 이해한다.
인공지능이 우리 대신 생각하고 추론하며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인공지능을 의심하지 않으면 의심하는 능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이론도 이념도 위기에 처한다.
3장 공감하는 인공지능: 기계는 느낄 수 있는가? 에서는
인공지능이 정복하지 못한 영역은 몸과 감정이다.
인간의 상호작용에 필수적인 공감과 정서적 이해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받아들여진다.
감정과 공감은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인간의 특성이다.
감정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을 처리하고 이해하며,
모방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된 인공지능의 한 분야다.
감정 인공지능에서 중요한 것은, 기계가 감정이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감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가의 문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공감마저 정복한다면,
인간의 공감과 기계의 공감에 대해 물어야 한다.
공감은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인간의 감성 지능이다.
인공지능은 인터페이스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모방한다.
감정 인공지능은 감정의 현상학에 기반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상자 속의 딱정벌레 사고실험에서,
현상과 실재를 구별하는 건 무의미하는 건 무의미하다.
인간보다 모든 면에서 탁월한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에,
포커페이스는 인공지능 기술로 종말을 고할 운명이다.
인간은 모든 것과 관계를 맺으며, 관계의 의미를 세계로 파악한다.
도구적 존재에는 세계가 이미 항상 현존한다.
감정 인공지능이 작동할 수 있는 것은
감정과 공감을 사용해야 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 로봇은 규칙을 따르지만, 감정 없이 행동한다.
사이코패스 로봇의 가능성은 감정을 가진다는 것이 무엇인가.
정신과 육체의 상호작용을 전제하는 감정,
인간의 자기의식의 문제로 이끈다.
4장 의식 있는 인공지능: 기계는 자유의지가 있는가? 에서는
인공지능 시대는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보다 우월한 데서,
비롯되는 두려움이 싹트는 시대다.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 것은 의식을 인간성 자체로 여기기 때문이다.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인공지능에게,
수많은 정보와 결론에 이르는 추론 방식,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도덕적 규칙까지 부여하지만,
인공지능이 어떻게 답과 결론에 이르는지 알지 못한다.
페르소나는 인공지능이 인간과 소통하려고 작동시키는
외적 인격을 가리킨다.
마음은 주체와 주체 사이를 연결하는 상호주관성의 영역이다.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한 것이 마음이었다면,
마음이 작동하는 근본 방식이 의식이다.
의식은 바깥의 대상을 경험하는 동시에,
경험하는 자기 자신을 느끼고 경험하게 해준다.
인공지능은 뇌를 모델로 만들어진 정보 처리 프로그램이다.
객관적 사실과 기능은 설명할 수 있어도,
주관적인 경험은 설명하기 어렵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의식이라는 환영이 필요하다.
의식과 마음이라는 환영을 믿는 것이 해로운지,
환영을 파괴하는 것이 더 해로운지는,
인공지능 시대가 말해줄 것이다.
인공지능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공지능이
무엇을 바꿔놓을지 파악한다는 것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쇼펜하우어는 생명 운동의 주체를 의지로 파악한다.
자유의지는 몸이 산출하는 욕망에 수반되는 현상이다.
자유의지는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에 관한 문제다.
자유의지는 행위를 할 때 외부의 힘이 결정한 것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다고 느끼게 해준다.
인공지능은 역설적으로 몸과 분리된 기계,
신체와 분리된 정신을 절대화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꿈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진정한 인간성에 관한 꿈을 꿔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 만드는 세계가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어떤 세계를 만드는가다.
5장 포스트휴먼 시대의 디지털 인간 조건 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정체성을 위협함으로써,
인간 조직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마음을 기능적으로 모방할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트랜스휴머니즘 시대다.
기술적 전환은 특이점에 도달할 때 이뤄질 것이다.
포스트휴먼 시대에 인간 조건을 성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묻는 일이다.
노동의 인간적 조건은 삶 자체다.
노동이 가치를 창조하고 잉여가치가 부를 만든다.
정신 노동도 그 자체로 노동이다.
인간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인공지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일자리는 없다.
인공지능의 본성은 노동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노동과 일자리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노동이 없으면 공감도, 사회적 인정과 접촉도 줄어든다.
노동 없는 사회는 더 끔찍한 디스토피아며,
인공지능은 노동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도록 요구한다.
인공지능의 최종 목적은 세계 정복으로 보인다.
인간이 지구를 떠날 수 있다는 과학적 신념은
인류의 생태학적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지구 소외를 초래한다.
인공지능은 인간 지능의 외부 확장이다.
인공지능으로 인간 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면
중심적 사고에서 탈중심적 사고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정치는 공적 공간을 필요로 한다.
과거 정치적 행위가 이뤄졌던 광장이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대체된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커질수록 뉴스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가짜 뉴스는
디지털 시대 공론장의 변동과 변질이
어떻게 어떤 정도로 이뤄질지 상상하기 어렵게 한다.
공론장의 이중성은 공론장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동력이다.
공론장에 참여하는 개인들을 매개하는 미디어가
사적 개인으로, 공적 주체로도 만들 수도 있다.
대중매체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는 표면적으로만 공론장이다.
소셜 미디어의 혁명적 성격은 모든 잠재적 소비자를
독립적이고 동등한 생산자로 만든다.
인공지능을 갖춘 소셜 미디어는 행위의 가능성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인공지능이 유발하는 공론장의 긴장 관계를 해결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지혜가 필요하다.
"AI 시대의 소크라테스"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 인공지능의 사고, 공감, 자유의지,
인공지능 시대가 가져올 사회 변화를 다룬다.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은 혁명적 변화를 초래한다.
챗GPT는 대화형 맥락에서 인간과 유사한 텍스트를 이해하고,
생성하도록 설계된 대화형 인공지능 모델이다.
기계가 인간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것은
새로운 인지 혁명의 전조다.
인공지능 시대는 인간이 기계와 대화를 나누는 시대다.
기계와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질수록, 대화 상대가
기계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 혁신과 혁명의 핵심이다.
인공지능은 직관이 없다.
사고방식의 혁명은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일어난다.
질문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거부할 수도 없고, 대답할 수도 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공지능을 다루는 기술도 더욱더 중요해진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인간의 판단력과 의사소통 기술을 사용해,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예리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이 중심이다.
인공지능은 소피스트 처럼 지혜를 주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적 질문의 핵심은 자기 성찰과 비판적 사고다.
인공지능은 인간만이 가진 본성에 질문을 던진다.
생각을 스스로 검토해야 하며, 생각은 결국 의심이다.
새로운 철학은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인간으로
살 수 있는가를 성찰해야 한다.
지식은 언제든지 개인을 통제할 권력으로 작용한다.
인공지능은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식할 수 있고,
미래의 행동을 에측하며, 제어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패턴을 발견하고, 모델로 분석하며, 예측하면서,
유사성이 서로 중복되고 교차하는 복잡한 연결망을 통해
패턴을 인식하고 세계를 이해한다.
인공지능을 의심하지 않으면 의심하는 능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정복하지 못한 영역은 몸과 감정이다.
감정과 공감은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인간의 특성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공감마저 정복한다면,
인간의 공감과 기계의 공감에 대해 물어야 한다.
공감은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인간의 감성 지능이다.
인공지능은 인터페이스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모방한다.
감정 인공지능이 작동할 수 있는 것은
감정과 공감을 사용해야 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 것은 의식을 인간성 자체로 여기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공지능이 어떻게 답과 결론에 이르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한 것이 마음이었다면,
마음이 작동하는 근본 방식이 의식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의식이라는 환영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공지능이
무엇을 바꿔놓을지 파악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역설적으로 몸과 분리된 기계,
신체와 분리된 정신을 절대화한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 만드는 세계가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어떤 세계를 만드는가다.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트랜스휴머니즘 시대다.
노동의 인간적 조건은 삶 자체다.
노동이 가치를 창조하고 잉여가치가 부를 만든다.
인간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노동 없는 사회는 더 끔찍한 디스토피아며,
인공지능은 노동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도록 요구한다.
인공지능은 인간 지능의 외부 확장이다.
인공지능으로 인간 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면
중심적 사고에서 탈중심적 사고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정치는 공적 공간을 필요로 한다.
광장이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대체된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커질수록 뉴스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다.
대중매체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는 표면적으로만 공론장이다.
소셜 미디어의 혁명적 성격은 모든 잠재적 소비자를
독립적이고 동등한 생산자로 만든다.
인공지능이 유발하는 공론장의 긴장 관계를 해결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의 지식은 유한하지만, 인공지능은 무한에 가까운 지식을 사용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도구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게 된 전대미문의 사태에서,
인간 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면,
인간이 인공지능에 비해 열등한 존재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깊이 탐구하면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용할지 생각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소피스트 와 같다.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지혜는 없다.
인간만의 지혜로 인공지능 시대를 헤쳐나가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진지한 질문을 해야 하며, 인간과 기계의 차이를 성찰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해야 한다.
"AI 시대의 소크라테스"는 자기 성찰과 비판적 사고의 질문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면서,
주체적으로 인공지능을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AI 시대의 소크라테스"는
인공지능 시대의 본질과 위험 요소를 살펴보며,
인간의 정체성을 지키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면서,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지 않는 방법을 이야기 한다.
휴머니스트 와 컬처블룸 서평단에서 "AI 시대의 소크라테스"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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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