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과 오른손이 파란색 연필을 들고 있는 표지부터 재미있다. 서로의 손과 연필을 그려주는 발상이 신선하다. 특히나 왼손으로 그린듯한 오른손이 들고 있는 어눌한 연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앞면지에 "정말 참을 만큼 참았어." 그리고 이어진 "더이상은 못 참아. 오늘은 기필코 말할 거야." 연필을 꽉 쥐고 있는오른손의 모습에서 뭔가 비장하면서도 단단히 화가 난듯한 분위기에 먼저 압도된다. 그 동안 왼손에서 서운한 것이 많았던듯 '왼손에게'라고 꼭꼭 눌러쓴다.대부분의 물건을 집고 사용하는 것도, 글씨를 쓰는 것도, 요리를 하는 것도 죄다 오른손이다. 오른손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을 기점으로 그 동안 쌓였던 묵혀두섰던 둘 사이의 감정들이 폭발하고 만다. 격해지는 감정에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과 함께 돌이킬 수 없을 듯한 감정의 골이 생긴다. 이 난국을 두 손은 어떻게 해결해나갈지...내 왼손과 오른손은 어떤가 하고 동시에 펴며 이리저리 살펴봤다. 왼손에 비해 오른손이 더 고생을 많이 한듯 주름이 더 깊다. 울퉁불퉁하게 뼈마디가 튀어나온 곳도 보인다.일전에 칼에 손을 베어 오른손에 붕대를 칭칭 감은 적이 있다.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도, 머리에 샴푸질하는 것도, 글씨를 쓰는 것도 모두 왼손차지가 되었다. 뼈속깊이 오른손잡이인 내게 왼손 사용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비로소 그때서야 오른손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도 왼손은 핸드폰을 잡고 있을 뿐 이리저리 움직이며 바쁜 건 오른손이다. (컴퓨터였다면 동등했을텐데!)하지만 왼손은 세밀한 뭔가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오른손이 편하게 자판을 누를 수 있도록 핸드폰을 화면이 잘 보이는 각도로 맞춰주고 흔들리지 않도록 꽉 잡아주기에 편안하게 입력을 할 수 있다. 머리를 감을 때도 묵묵히 샤워기를 잡아주고, 뜨거운 냄비를 들 때도, 상자를 옮길 때, 악기를 연주할 때도 왼손은 항상 최선을 다한다.우리 주변에도 잘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 가정이, 사회가, 국가가 잘 굴러가도록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누군가가 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지만 그들이 당장 없는 상황이 닥친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불편한 경험을 해 보지 않으면 그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어버리기 일쑤이다.표지를 다시 보니 서로를 연필로 그리며 이어지는 왼손과 오른손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리고 뒷표지 오른손의 작은 하트사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너그러이 감싸주는 포용이 따뜻한 사회의 시작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