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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악어 ㅣ 당신을 위한 그림책, You
루리 그림, 글라인.이화진 글 / 요요 / 2022년 1월
평점 :
어쩌다 원치 않게 도시에 살게 된 악어.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시에 적응하려 애쓰다 다다른 강가.
물 속에 빠지며 자신이 악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글라인, 이화진 작가의 글과 루리 작가의 그림이 만나 깊이있는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장면마다 우리 사회의 내면을 관통하며 마음을 머물게 한다.
앞면지에서 악어가 바지를 입으며 등 돌기까지 축 늘어져 옷에 자신을 끼워맞추는 듯한 느낌이다.
1인가구도 많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각박한 현대사회. 어디서 어떻게 이곳에 살게 된지 모른 채 도시에서 살아가는 악어. 토마토와 햇볕을 좋아하는 온순한 악어이지만 그의 그림자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무서운 모습으로 표현되어 외모로 판단하는 현실의 씁쓸함이 잘 투영되었다.
악어는 피부관리도 해 보고, 이빨를 무디게 갈아보기도 하고, 꼬리를 잘라야 한다는 진단을 받기도 하는 등 최선을 다해 자신을 사회에 맞추려한다. 하지만 쇼윈도의 악어백처럼 자신의 존재는 하나의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 또한 인간성을 배제한 채 하나의 상품이 되어가는 요즘의 모습이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에 빠지고 만다. (화면분할부터 시선의 위치, 가로에서 세로로 구도의 변화까지 루리 작가님의 역동적인 화면구성에 감탄을 자아낼 수 밖에 없다.) 세로 구도로 바꿔 물에 빠진 악어가 자신을 감싼 모든 번뇌를 훌훌 던져버린 장면에 희열을 느꼈다. 잠시나마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자유롭게 물 속을 유영하는 도시악어로 투영되었다.
뒷면지에서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동화된 모습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루리 작가님께서 <도시 악어>를 그리시며 들었다는 라디오헤드의 'Creep'.
학창시절 줄기차게 들었던 그 노래의 애절한 기타리프소리와 보컬의 감성적인 노랫소리가 아련해질 때가 있다.
나 스스로 패배자, 루저라고 생각했던 때
도시 악어마냥 꼬리를 자르려, 나를 누군가에게 맞추려 안간힘쓰던 때
어울리지도 않는 곳에서 억지 웃음을 지어야만 했던 때
세상의 틀에 맞추어야 하는 현실에 고뇌했던 그 때와 겹쳐진다.
도시악어의 끊임없는 고민
원하지 않아도 있어야 하는 곳
하지만 여기에 있고, 살아가야 하는 곳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며 고뇌하는 현대인의 삶과 닿아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것을,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빛이 나는 것을 바쁜 삶 속에서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린다. 내 속의 악어를 토닥이며 위로해 본다.
처음 도심 속 "나는 악어야."와 물 속에서의 "나는 악어야."의 모습을 겹쳐보며 이제 꼬리가 부끄럽지 않은 도시 악어로의 삶을 응원해본다.
루리 작가의 글과 그림은 위로와 희망을 주는 힘이 있다.
코뿔소 노든과 펭귄 치쿠가 긴긴밤을 함께 보내며 걸었던 그 여정 속에서,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는 이들이 결국은 브레맨에 가지 못했지만 희망을 꿈꾸는 모습에서, 외로운 도시 악어가 자신이 악어임을 깨닫는 순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