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위대한 예술작품을 보고 나면 한없이 숙연해지다가 갑작스레 카타르시스가 휘몰아치는 순간이 있다.

가끔 베토벤의 음악을 듣듯, 고호의 그림을 보듯, 도스토예프스키 책을 읽듯, 그런 영화들이 있다.

아주 가끔 찾아오는 순간이지만 그 순간은 너무나도 황홀해서 장엄해지기 까지 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대학시절 선배 연구실에 가면 24시간 무한반복으로 이 영화의 ost가 흘러나오곤 했다.

영화 동아리 회장직을 넘겨주며 후배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하나 남겼는데,

그게 또 바로 이 영화의 대형 포스터 판넬이었다.

작년에 우연히 가게된 엔니오 모리꼬네 콘서트에 입장하자 막 연주하고 있었던 음악도 바로 이 영화의 ost.

 

이 영화는 보고 나면 예의 하는, '재미있다' '잘만들었다' 뭐 이런 말보다는, 그냥 '좋다' 혹은 '침묵'이 더 어울릴법한 영화다.

 

처음으로 이 영화를 제대로 된 복원판 필름 프린트로 스크린에서 227분짜리 버전으로 보고 나니 든 생각은.

그동안 이 영화의 반도 못봤구나...

자고로 영화는 극장에서, 더군다가 이런 마스터피스는 꼭 극장에서 봐야한다.

VHS는 말할것고 없고, DVD나 BLUE-RAY로는 이 섬세한 필름영화의 질감은 절대 느낄수 없는 법이다.

특히, 세르지오 레오네처럼 화면비가 시네마스쿠프일 경우는 더더욱 그렇고 말이다.

 

이 영화는 4시간여에 걸쳐 숨한번 쉬지 않고 경탄하며 관객들과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종교의식처럼 경배하며 찬미하며 관람해야만 제대로 본 것이다.

아니, 평생을 두고두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번 봐야 할 영화라고나 해두자.

 

30대 중반 이 힘든 시절에 본 이 영화의 감상의 결은 '권력과 사랑'으로 모아졌다.

첫사랑 데보라를 향한 누들스의 여정이 이 영화의 전부인 것이다.

어리지만 당찬 데보라는 첫 만남부터 누들스에게 '권력을 가질것'을 종용한다.

 

'난 당신이 맘에 들지만, 내가 찾던 그런 남자가 못 될것 같네요. 자신을 한번 둘러보시죠?'

 

누들스는 어쨋든 데보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인생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신념에 대한 순수를 지킨다.

하지만 이 모든게 죽마고우 맥스와의 만남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맥스는 누들스를 번번히 데보라에게서 훔쳐내어 갱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러다. 누들스는 친구에게 버림받고, 애인까지 뺏기고 쓸쓸히 살아가는 인생을 살게 된다.

 

왜 누들스의 인생은 이토록 잔인했던 것일까.

 

 

영화 초반에 누들스가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아지트로 활용하는 화장실에서 몰래 보는 책이 나온다.

바로, 사회주의 소설가 잭런던의 '마틴 에덴' 이다. 이 책의 내용은 빈민층의 남자가 상류층의 여자를 사랑해서 그 여자를 갖기 위해 소설가로 성공하려는 잭 런던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권력을 가지려 한다' 바로 이 영화의 전체 플롯이자 테마를 소설로 보여준다.

 과연 누들스는 데보라를 가질수 있을까?...

 



 

누들스는 친구 뚱보의 레스토랑 창고에서 발레 연습을 하는 데보라를 몰래 훔쳐본다.

데보라는 '곡물창고'에서 '축음기'를 틀고 '발레'를 하고 있다.

누들스는 화장실 구멍으로 몰래 훔쳐볼수 밖에 없다.

데보라도 그런 누들스의 시선을 즐기며 슬쩍 미소를 보내고, 나신을 보여주기 까지 한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자 수많은 남성들을 눈물짓게 한 제니퍼 코넬리의 환상적인 자태가 보여진다.

 



 

하지만 누들스는 데보라에게 바퀴벌레 취급을 받는다.

'넌 더럽고, 역겨워. 화장실 벽이나 기어다니는 바퀴벌레쯤 되는거지. 너가 뭐라고 생각해? 니 꼴이나 보셔!'

좋다고 은근슬쩍 보여줄뗀 언제고, 바로 튕기는 이 팜므파탈 데보라 같으니.

근데 이런 여자 너무 멋지다...흑.

 



 

이 영화에선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일명 거울씬이 많이 보인다.

라깡의 거울단계까진 가진 않더라도, 거울을 보며 내가 뭘까? 내가 왜 이렇게 살까?

뭐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감정을 보여주는데 아주 그만인 씬이다.

영화 초반에 금고에 돈이 없자 뉴욕을 떠나려다 거울을 향해 걸어간다.

거울에 비친 누들스는 백발의 노인이다. (최고의 명 트랜지션 중 하나.)

이 영화 전체가 누들스 자신의 인생. 혹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어낸 경제부흥기의 주역인 한 인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하여간. 데보라에게 한방 맞은 누들스는 거울을 보며 우울해 한다. 친구들은 뻐기느라 바쁜데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데보라를 가지기 위해선 어떤 내가 되어야 할까?

이제 범죄의 세계로 슬슬 빠져들어간다. 이민자 출신 빈민인 그의 성공은 이길밖엔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슬슬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어깨에 힘 좀 주게 된 누들스는 용기를 내어 당당히 데보라 앞에 섭니다.

데보라는 남들 다 교회가는 감사절에 뭐하냐며 그분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며 자리에 앉히고 성경문구를 읽어줍니다.

바로 연인들의 성서파트. 아가서 죠.

아가서 4장 1절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아가서 4장 3절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데보라의 은근슬쩍 고백에 누들스는 한껏 들뜬다.

허나, 바로 데보라의 한방 "작년 12월 이후로 씻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제부턴 데보라의 고백, 혹은 데보라의 시가 이어진다.

"그의 눈은 비둘기 같고, 그의 몸은 환한 아이보리 같고, 그의 다리는 대리석 조각같고,



 

그러다 다시한방을 날린다.

"팬티는 더러워서 난리가 나있지만 말이다"



 

다시 감동의 싯구. "허나 그는 사랑스럽구나"



 

다시 한방. "그렇지만, 그는 양아치일뿐,그는 내 사랑이 될수 없으니 안타깝구나"



 

데보라는 누들스에게 '넌 참 멋져. 아마 널 사랑하는 거 같아. 하지만 내 짝이 되기엔 아직 부족해. 분발해라'라는 고백을 한거다. 이런 고백을 받은 어떤 남자가 그 말을 듣지 않으리...

게다가 키스가 이어지는데 말이다... 코넬리 넘 멋져... 흑...

 



 

하지만, 친구인 맥스가 판을 깬다. 어찌할줄 몰라하는 누들스.

역시 강한 데보라. "가봐. 니 엄마가 부르잖니" 타고난 팜프파탈이다!



 

결국, 누들스와 맥스는 동네 양아치패들에게 한방 당한다다. 이제 당했으니 갚아주러 가야지.

사랑이냐? 폭력이냐? 혹은 데보라냐? 맥스냐? 혹은 여자냐? 우정이냐? 뭐 이런 갈림길에 선다...



 

금방 올게... 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얻어터진 누들스는 데보라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사정한다.

허나 데보라는 눈물을 참으려 문을 굳게 닫는다. 거봐,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데, 맘 돌아서면 끝이야.

어설픈놈!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스틸컷. 포스터 이미지로도 쓰였다.

누들스는 맥스와 함께 비즈니스를 하며 제법 어깨에 힘주며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동네 갱들에게 막내가 당한다.



 

막내는 누들스에게 한마디 남긴다. ' 나 미끌어진거 같아'

가장 힘이 없고, 작고, 어렸던 막내는 차마 도망갈수 없어서 죽음을 맞이 한 것이다.

이 세상의 생리가, 아니 특히 이 갱들의 세계는 무자비한 곳이다.

누들스의 인생이 앞으로 이렇듯 미끌어질거라는 묘한 암시를 주고 죽어간다...



 

결국, 누들스는 복수를 하고 빵에 간다. 친구들을 남긴채.



 

 

빵에가서 살다온 누들스는 금주법 시대에 한몫 잡고 있는 친구들에게 돌아간다.

나오자 마자 맥스는 응축을 풀게 해준다. 여자한테 거기 잡히면 끝이라니까...



 

친구들은 뚱보의 레스토랑 한편에 비밀 바를 차려놓고 대박을 내고 있었다.

왼쪽에 렘피카의 그림이 보이는가?

열정과 관능의 팜므파탈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렘피카가 1930년대 초반에 주목받기 시작한 작가였으니 고증에 충실했다라고 볼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의도적으로 대마이에 툭하고 그림을 미장센으로 활용하고 있다.

열정의 화가. 렘피카. 상류층 여성들을 독특한 화법으로 그려낸 그녀는 관음증, 그룹섹스, 동성애등 파격적인 소재를 그려내 유명해진 그녀는,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지만 항상 망명자로서 불안과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암울한 어둠이 있던 화가였다.

맥스의 삶이 앞으로 그러할 것이고, 이들 모두 그런 상류층을 꿈꾼다는 걸 아주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드디어 데보라와의 재회.

그런데 이번엔 데보라 뒤 그림을 '아담과 이브'를 걸어놨다.

아담인 누들스는 이브인 데보라의 유혹에 넘어가 사과를 따 올것인가?

데보라는 여전히 차갑고 뜨거운 팜므파탈이지만, 뭔지 모를 거리감이 있다.

아마도 세상의 때가 덜묻은 누들스는 여전히 순진한  소년이고, 데보라는 조금은 타락한 성녀가 아닐까?



 

어린소녀역의 제니퍼 코넬리의 환상적인 외모와 표정에 못미치는 성인역의 데보라는 늘 실망이다.

이렇게 크면 안되잖아...

어린 데보라의 눈빛이 있지만 뭔가 세상에 찌든 여인이 되어 있는듯 하다. 절묘한 캐스팅이다.

이번에도 맥스가 누들스를 부르자 "가봐, 엄마가 부르잖니" 라며 예전 대사를 쳐추시는 센스를 보인다.



 



이리하여 누들스는 다시 출소첫날 범죄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여놓는다.

조 페시 형님 깜짝 출연하신다.

다이아 훔치러 가서 맥스는 주인의 아낙을 범한다.

데보라와 전혀 다른 창녀같은 그녀에게 말이다. 누들스는 데보라의 순수를 차마 범할수 없어 이렇게 푸는건가.

점점 누들스의 사랑이 꼬여만 간다.

 



 

여기서 참 묘한 시선이 등장한다. 당한 이 여인네는 뭔가 아픔보다는 환희에 찬 얼굴을 하고 있다.

레오네의 모든 작품에서 여성들은 항상 이렇게 남성들에게 당하고 약간은 그걸 즐기고 있다.

레오네는 분명 여성에게 된통 차인 아픈 사랑의 상처가 있을거다.

이런식으로 밖에 풀지 못하는 남성들을 줄곧 그리니말이다



 

경찰청장이 나와 노조 시위진압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한마디 던진다.

"에, 그건 과잉진압이 아닙니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한것이죠..."

1930년대 미국이나 지금 이땅이나 권력자들의 꼼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리 변함이 없을지...



 

그리하야, 이들은 4녀 끝에 득남해 좋아라하는 경찰청장의 아들을 바꿔치기 하는 테러를 저지른다.

어청수에게 이 방법 하실분 누구 하실분 없나?

근데 독특한 씬연출이다. 온 세트와 의상과 소품을 화이트로 도배를 했다.

1930년대라고 하기엔 뭔가 포스트포더니즘 스럽지 않은가?

아주 유쾌하고 빠른 템포에 게다가 음악은 베토벤이다. 바로 그 유명한.... 

그렇다. 아마 큐브릭의 '클락웍 오렌지'에 대한 오마주 가 아닐까 싶다.  



 

이런 극단적인 직부감 샷은 레오네 영화에서 아마 이 샷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큐브릭에게 경배를~



 

이들의 소굴에 아까 그 당한 여인네가 고급 창녀로 들어온다.

그래놓곤 맥스에게 꼬리를 친다.

이 여인네의 캐릭터는 아주 단순한 창녀캐릭터로 데보라의 성녀캐릭터와 극적으로 대비된다.

허나 마지막엔 아주 극단으로 반전을 주지만 말이다.


 


 






누들스는 데보라를 화려한 레스토랑에 데려간다.

어디서 많이 본 씬 아닌가? 그렇다.

김유진 감독의 '약속'에서 박신양이 전도연을 레스토랑에 데려가면서 이렇게 전 테이블을 예약해 구애를 했다.

레오네가 그의 영화에서 꾸준히 말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비극성이 단적으로 보여지는 씬이 아닌가 한다.

누들스는 갱스터로 성공도 했고, 이젠 이렇게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서 데이트를 할 만큼 성공한 권력자다.

그토록 원했던 누들스의 첫사랑이자 순수와 구원의 여신 데보라는 과연 넘어갈 것인가?

 



 

누들스는 이렇게 궁전같은 레스토랑 앞 화려한 해변가에 양탄자를 깔아놓고 샴페인을 마시며 구애를 한다.

이미 세상을 더 알아버린 데보라는 어릴쩍 꾸질꾸질했던 뒷동네 양아치 누들스가 이정도 성공한 것만으로 만족할수 있을까?



 

여기서 감동적인 프로포즈 씬이 시작된다.

"빵에서 매일밤 성경을 읽으며 당신 생각을 했었지"

데보라는 역시 누들스의 성모 마리아였던 게다.



 

눈물나는 프로포즈가 시작딘다

어릴적 데보라가 누들스에게 고백했던 바로 그 '아가서'를 인용하면서 누들스가 데보라에 대한 맘을 고백한다.

 

(아가서 7장2절)
[너의 배꼽은, 섞은 술(개역:포도주)이 고여 있는 둥근 잔 같구나

 



 

(아가서 7장 2절)

[너의 허리는 나리꽃을 두른 밀단 같구나]



 

(아가서 7장 8절)

[그대의 가슴은 포도 송이,]

 




(아가서 7장8절)
[그대의 코에서 풍기는 향내는 능금 냄새]

 



 

"이 모든게 내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고 있지?"

싯구를 통해서 사랑을 고백하고 고백하는 이 둘의 사랑은 참 안쓰러우면서도 짜릿하다.

게다가 성경문구로 표현하다니. 아, 성경문구가 작업의 수단이 될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 고마운 작품...

감독은 누들스를 끝까지 비열한 권력게임을 거부하는 순수를 간직한 남자로 그려낸다.

후에 맥스를 경찰에 고발하면서 까지 구원을 찾는 인간이 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데보라의 거절. "전 헐리우드에 갈거에요. 건달 싸모로 만족할순 없는걸요. 알잖아요"

아,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사랑에서 시작하는게 아니라 이별에서 시작하는 법.

이제 이 둘의 안타까운 사랑은 파멸로 향해가려는가?


 


 






여성들이여, 사랑에 거절당한 남자의 고통을 아는가?

누들스의 구원의 여신인 데보라와 이렇게 파멸을 맞는다.

'너의 맘을 가질수 없으면 너의 몸이라도 갖겠어!'

이 심정은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행해본, 혹은 행하고픈 충동을 느끼는 감정이다.

레오네의 영화에서 유난히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이 자주 등장한다. 아마 거의 모든 영화에서 일것이다.

페미니스트 평론가들에게서 지탄을 받는 이유이기도 한데.

레오네의 영화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들은 여성들에 대한 폭력적인 구애로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을 풀고 있다.

[석양의 건맨]에서 나오는 회중시계속 옛 연인의 배신도 그러하고,

[원스어폰어타임인더웨스트]에서 유혹하는 여인은 '전 목욕물만 있으면 어디든 좋아요'라 한다.

아마도 레오네 자신은 사랑에 대한 아주 깊은 배신 혹은 상처로 인해 여성에 대한 동경과 애증이 가득한 삶을 살았음이 분명하다. 



 

이 씬에 대해 찬성하지는 않지만, 십몇년간 빵에서 데보라만 그리며 살았던 누들스에게 이 거절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 씬의 감정에는 동의한다.

관객이 불편해 할만한 장면연출을 하면서도 그 감정에 푹 빠져서 수긍하게 만드는 그 절묘한 선타기란....



 

맥스는 누들스에게 여자에게 빠지면 비스니스에 방해되니 정신차리라 호통을 친다.

정작 자신은 교황이 앉던 의자(맥스 뒤에 보이는 화려한 의자다)에 앉아 권력에 대한 꿈을 꾸면서 말이다.

누들스도 질수 없다.

"너도 캐롤이랑 살면서 내게 그런말 할 형편이 되냐" 그러자 맥스는 이 여자에게 갖은 욕설을 하며 내보낸다.

큰 건 하자는 맥스의 제안에 누들스는 "편히 해변에서 쉬고싶네"라며 나가 버린다.



 

이렇게 이둘은 마이애미 해변에서 망중한을 보낸다.

헌데 난리가 났다. 바로 금주법이 풀린것. 이제 이들의 사업은 끝장이다.

맥스와 누들스에게 달려드는 여성들의 자세연출을 보라.

아, 역시 남자는 권력이 있어야 ...



 

맥스가 엄청난 건을 터드리려고 하자 이 여자는 누들스에게 검은 제안을 한다.

"맥스를 죽이기 싫으면 경찰에 고발해요. 빵에 가더라도 사는게 낳잖아요..."

캐롤은 영화내내 누들스와 앙숙이었다. "이번만 같은 편이 되어봐요. 뒤엔 다시 앙숙으로 돌아가죠"

섣불리 결정을 못하는 누들스를 몰아치는 캐롤의 연기가 발군이다.

친구 맥스를 경찰에 고발하는게 누들스에겐 친구를 선의 길로 인도하는 지저스가 되는건가?

아니면, 누들스는 혈육같고 아버지같던 동지를 팔아먹는 유다가 되는 건가?

누들스에게 연인을 고발하라고 설득하는 캐롤은 성모 마리아 인건가?

아니면 또 하나의 함정을 파고 누들스를 끌어들이는 악녀 마리아 인건가?

이렇듯 레오네의 캐릭터들은 시시때때로 선과 악의 묘한 경계에서 고뇌하곤 한다.

물론, 관객도 선뜻 절대악, 절대선에 대한 판단을 내릴수가 없다.

그저 인간은 상황에 따라 선하기도, 악하기도 하다는 것뿐...

 



 

이렇게 금주법을 애도하는 금주법 장례식을 치룬다.

이제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금주법을 만들고, 갱들과 연합해 떼돈을 벌어 미국의 경제부흥을 일으킨 시대가 끝나가는 것이다.

물론 맥스와 누들스를 비롯한 이 "옛날옛적미국갱들"의 시대도 끝나는 것이고 말이다.

이 날, 이 친구들은 남은 술을 처분하기 위해 마지막 선적을 하기로 했고, 누들스는 그걸 경찰에 제보한다.

이들 친구들간의 우정도 이날로 장례식을 치루는 것이다.

아니러니하게도 여기에 국화를 건네는 이 짝눈과 눈썹 이 둘만 죽음을 맞게 된다. 이날 밤에 말이다.

그것도 친구인 누들스의 제보와 보스인 맥스의 음모로 말이다.

레오네는 참 이런 다중적인, 혹은 아주아주 섬세한 디테일을 4시간에 걸친 러닝타임 내내 선보인다.

쩝. 할말이 없는 거장이다.

아마 봉테일도 분명 무릎꿇고 울고 갈거다.



 

맥스는 이렇듯 이 둘 친구와 누들스를 바라보며 알듯 모를듯한 표정을 짓는다.

저 뒤에 렘피카 그림 역시 이번에도 확 눈에 띄게 보여준다.

열정과 관능의 여인이지만 냉정하고 비정한 여인.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성녀이자 창녀인.

데보라와 캐롤도 있지만, 누들스에게 진짜 연인은 바로 이 맥스다.

그 핵심엔 맥스가 있다.  가슴에 꽂힌 국화꽃 또한 맥스가 오늘 서류상 죽는 날이 될꺼라는 디테일.



 

그리하야, 자 다시 이 영화의 오프닝으로 돌아가보자.

아편굴에서 마약을 하는 누들스의 귀에 전화벨이 줄기차게 울리고,

그 벨은 이 장례식 파티장으로 울리고,

누군가 전화를 드는 걸로 울리고,

마침내 경찰서에서 울리는 걸로 맺는다.

관객들은 도대체 저 전화가 뭐야? 라는 호기심과 궁금함을 가지고 이야기에 빠지게 되고,

3시간 30분을 기다려서 아. 이게 누들스가 맥스 제보하는 전화였구나. 라는 해답을 얻게한다.

참 과감한 플래쉬백 편집법이다.

어쨋든, 시체발견현장에서 누들스는 불에 타버린 맥스를 보고, 아 저게 맥스가 아니구나 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노인이 된 현재의 누들스가 도대체 맥스는 어디간거야 라는 추적의 플롯 또한 힘을 받게 된다.

 

굴러굴러 찾아간 맥스는 노인요양소에서 할망구가 된 캐롤을 만난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볼보며 쓸쓸히 살아가는 캐롤. 그녀 역시 창녀로 나왔지만 성녀의 인생을 살고 있는것.

그런데 병원 창립자 사진 중앙에 떡하니 '데보라'가 보인다.

데보라는 그렇게 누들스에게 사진속 프레임의 추억으로 존재하는, 가질수 없는 그런 이미지일 것이다.

 



 

노인이 된 누들스는 데보라를 찾아간다.

브로드웨이에서 스타가 된 데보라가 분장을 지우고 있다.

이 둘 사이에 멀리 떨어진 거리를 보라. 그 사이엔 거울과 의자가 떡하니 가로 막고 있다.

조명은 또한 데보라를 향해 비추고 있다.

뭔가 진실을 밝히고 싶은 누들스의 심정을 전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데보라의 뒤에 보이는 포스터 보이는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다.

'나이도 그녀를 어쩔수 없었네' 라는 홍보문구.

황금과 젊음에 대한 욕망속에서 살다가 결국엔 파멸하는 클레오파트라의 비극적인 삶이 바로

데보라의 삶. 혹은 물질 자본주의를 탐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미국시민들의 안타까운 운명일 것이다.

 



 

데보라는 묵묵히 분장을 지운다.

가면을 쓰고 평생을 살아왔던 인생을 지우듯.

누들스에 대한 죄책감을 벗어가듯,

광대가 되어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 살았던 인생을 후회하듯,

데보라는 누들스에게 "추억은 추억으로 남기자"라고 한다.

누들스는 진실을 원한다. "도대체 내게 초대장을 왜 보냈지?"

"왜 맥스의 애인이라는 걸 말 안하는거냐구!"

누들스는 그렇게 배신을 당했으면서도 데보라에 대한 순수를 믿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내게 왜 그깟 사실 하나 이야기 못하는거니?'

'날 생각한다면, 진실을 말해줘야 하는거 아니니?'

캐롤이 누들스에게 맥스의 제보를 하라고 했듯,

데보라는 누들스에게 맥스를 만나지 말라고 설득한다.

데보라는 친구의 소중한 우정과 애잔한 추억을 지키고픈 성녀인가?

아니면, 친구의 애인이 된 자신에 대한 변명과 애인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지키려는 창녀인가?

누들스에게 구원의 천사였고, 순수의 표상이었던 성녀 데보라는 이렇게 비참한 말로를 살고 있다.

최고의 스타가 되었고, 최고 권력자의 여인이 되었지만 데보라는 웃음과 몸을 팔고 살았던 창녀가 된 것이다.

 



 

"나도 이제 늙었다구요. 어쩔수 없잖아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에 안착할수 밖엔 없었다구요"

누들스에게 던지는 이 대사는 과연 진실인가. 아니면 이 또한 변명일 뿐인가.



 

그토록 말렸건만 누들스는 파티장에 온다. 놀란 데보라의 표정.

이전에 맥스가 교황의 의자에 앉았던 걸 기억한다면, 이 씬에서 주교가 내왕하는 이 신의 미장센 또한 이해가갈터. 황금으로 치장된 인테리어며, 수많은 천사와 성자 조각상들, 게다가 주교까지 아부하러 오는 그런 교황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오른편엔 휘장을 두른 장교가 서있다.

종교과 군대를 등에 업고 스타 데보라를 가운데 둔.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보여주는 미장센이다.

 



 

맥스와 누들스는 이렇게 참으로 안쓰러운 해후를 한다.

그냥 만나지 말았으면 좋을것을...

맥스는 누들스의 여인인 데보라를 가졌고, 친구들을 배신하고, 아니 누들스를 이용해서 새 신분을 얻어

정치권력의 정점까지 올라가 이렇게 화려한 황금으로 둘러싼 노년을 맞고 있다.

누들스는 친구들을 배신하고 죽였다는 죄책감에 여생을 고통속에 보냈고, 유일한 사랑 데보라를 놓쳤다는 아픔에 눈물속에서 살았다.

"나를 죽여주게"

"그럴순 없네. 우린 참 많은 나쁜짓을 했지. 살인강도방화강간.

 우리에게 의뢰한 많은 이들이 있었지. 어떤건 했지만 우리가 해서는 안되는 일은 하지 않았어.

 너가 건드린건 우리가 절대 손대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었어."

이민자 이탈리언 갱들을 통해 경제부흥을 했고, 그들을 배신하고 소탕하며 그 부를 독점했고,

노조와 손 잡고 정치권력을 얻어 갖은 권모술수로 민중들의 피를 빼먹으며 이렇게 황금궁전에 사는것.

그건 우리가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는 누들스의 회환어린 고백.   



 

끝내 맥스는 누들스에게 용서받지 못한채, 죄책감을 덜지 못한채

쓰레기 차속에 몸을 던진다.

영화초반에 누들스가 경찰에 도망가면서 지나가던 마차에 몸을 숨겼던 씬과 묘하게 피드백되는 씬이다.

화려한 파티를 뒤로한채, 자신의 비리가 까발려져 정치생명이 끝나는건 견딜수 없기에

그렇게 맥스는 쓸쓸한 인생을 정리해 버린다.



 

맥스가 실린 쓰레기차가 지나나고 나서,

흥청망청 술과 마약을 하며 노니는 젊은이들이 무심하게 지나간다.

미국을 만들었던 선조들의 시대가 가고 그 풍요를 이어받은 새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이 젊은이들에겐  황홀하고 즐거운 파티이겠지만, 그걸 바라보는 관객은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안에 분명 또다른 누들스와 맥스, 데보라와 캐롤이 있을거구, 이들의 말로 또한 눈에 훤히 보이는 것이기에.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속성이란 그런 태생을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 기나긴 4시간여의 대 서사시는 끝을 맺는다.

친구를 배신하고 고통을 참을수 없어 아편굴에서 마약을 하며 껄껄대고 웃는 누들스의 얼굴에서 프리즈된다.

누들스처럼 살아온 미국인들은 과연 지금 행복한가?

당신은 지금 황금궁전에 살아서 행복한가?

이래도 권력과 돈만 탐하며 살고 싶은가?

그냥 이렇게 한바탕 헛헛하며 웃으며 마음 편하게 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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