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콘서트라는 게 있는 줄은 알고 있었다.

kbs 낭독의 발견 이라는 프로그램 보면 왜 작가들이 나와서 자신의 작품을 낭독하고 그것과 관련된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고듣고 이야기 하지 않는가. 바로 그게 북 콘서트 인 것이다.

 



 

처음엔 그냥 호기심에서 이벤트에 신청을 한 북 콘서트 였다.

초대손님중에 '정희성' 시인이 계셔서 망설임 없이 바로 신청을 했는데 당첨이 되어 다녀왔는데,

생각보다 기대 이상이었다.

 

몰랐었는데, 이 북콘서트는 평화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북 콘서트'의 공개방송이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 9시 5분에 방송하는 이 프로는 작가와 뮤지션이 낭독하고 토크하고 노래하는 컨셉이다.

 

매주 '문장'에서 보내주는 나희덕의 시읽기와 김연수의 문장읽기 플래쉬가 내겐 큰 낙이었는데,

분명 앞으로 이 북콘서트도 내게 큰 낙을 주는 것중 하나가 될듯하다.

 

마침 이날은 상상마당 북 콘서트 1주년을 맞아 특집으로 tv 녹화까지 겸한 그런 콘서트였다.

지미집에 달린 eng 카메라 하며 번쩍이는 조명하며 사회자분 꽤 긴장하며 시작하였다.

 

처음 무대에 나온 이들은 힙합그룹 타타클랜.

 



 

바로 이 노래를 불렀다. 그 유명한 '워키워키 송'을 피쳐링한 노랜데, 은근짜 신난다.

자메이카 랩인듯 한데, 젊은 인디 힙합그룹이 열정적으로 노니는 모습을 보니 에너지 충전 만땅 팍팍이다.

 

몰랐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한국문학 음악에 담다'라는 cd 작업을 진행했단다.

문학작품을 뮤지션에게 주고, 그것을 읽은 뮤지션은 영감을 받아 음악을 만들어 녹음하는 그런 프로젝트란다.

 

오호, 이 타타클랜이라는 그룹이 받은 책은 바로 손홍규 작가의 '봉섭이 가라사대'


              

 

  "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쓰는 이유는, 더는 소설을 쓰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평생 손에서 일을 놓아보지 못한 부모님 역시 더는 일하지 않아도 좋을 날이 올 것이라 믿었으리라. 때로는 사람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노예로 태어난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그럴 때면 나처럼 외롭고 쓸쓸하여 눈을 감고 돌아누울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만큼 견디지 않는다면, 삶을 어찌 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누추한 삶을 선사한 신에게 축복이 있기를! 그러므로 모든 영광은 스스로 아름다워지려 애쓰는 '사람들'에게 돌려야 한다. - 손홍규 "

 

책 제목은 익히 들어보았느나 딱히 읽을 맘이 나지 않아 내 리스트에 없던 책이다.

구수한 사투리에 순박한 미소를 가진 청년인 이 작가는 내 동갑내기였다. !!

 

한국 소설을 펼칠때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 바로 출생년도를 제일 먼저 보게 된다.

이제 슬슬 나이가 꽤 적지 않은데, 아직까지 딱히 내 이름으로 된 책도 없고, 내 이름으로 된 영화도 없어서 그런지 이네들은 언제 이름을 내밀었나 이런걸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내공부족 같으니라구.

 

최근에 질투를 느꼈던 어린 작가들, 김애란이 그랬고, 전아리가 그랬듯.

어리다고 덜 익거나 가벼운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젊은 작가일수록 패기가 넘치고 깊이는 기본이다.

 

하여간 이 손홍규 작가의 이 소설을 가지고 타타클랜이 노래를 만들었는데,

소를 둘러싼 소설의 모티브를 따와 '소인지 사람인지 헷갈려 하는 청년'을 가사로 힙합랩을 불렀다.

 

손홍규와 타타클랜. 눈여겨 볼 이들로 추가!

 

다음은 팝 클래식 연주그룹 '콰르텟 엑스'.

 



 

리더 이름이 낯익어서 알아봤더니, 예당아트라는 케이블 채널에서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이란 프로를 진행하는 뮤지션이란다.

 

뭐 나름 이런 책도 낸 꽤 유명한 이더라.

 

클래식이나 팝, 영화음악등을 쉽게 편곡해서 대중들에게 연주하는 그런 연주단인듯 하다.

이들 역시 꽤 유명한듯 한데 처음 들어본걸 보니 요즘 꽤 음악 안듣고 살아왔나 보다.

리더 조윤범씨는 꽤 또박또박 말을 하는게 딱 봉준호 감독 화법하고 닮았다.

듣는이가 귀가 솔깃해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쭈욱 빨려들게 하는 그런 사람인듯 느껴지더라.

 

콰르텟 엑스가 받은 책은 바로 서유미의 '쿨하게 한걸음' 이란다.

 

 하하. 이 책은 출간되자 마자 읽은 책이닷 !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눈여겨 뒀던 작가기에, 수상작이라길래 냉큼 읽어버렸다.

로맨틱 코메디를 쓰기 위해서 한동안 '칙릿'에 올인한 적이 있었는데,

올초에 '한국형 칙릿'을 읽어가던 중에 걸린 작품이었다.

 

30대 회사원 여주인공이 짤려서 빈둥대다가 도서관서 영화 평론가 공부를 시작하는 뭐 그런 내용이다.

이런 류의 상처치유 성장소설을 조아라 하지만 솔직히 '악마는 프라다'나 '쇼퍼홀릭''워커홀릭' 같은 스토리텔링과 상업성이 하모니를 이룬 작품을 더 높이 평가하기에 생각보다는 별로였던 소설로 기억에 남는다.

 

콰르텟 엑스는 이 소설을 테마로 녹음한 곡을 연주했는데,

하모니가 시작되자 마자 느낀게, 딱 '히사이시 조'군 !

 

센과 치히로나, 하울, 동막골 등에서 나올법한 그런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 나왔다.

역시나 연주가 끝나고 리더 조윤범은 영화 ost같은 느낌을 내려고 했다고 한다.

좀 더 정직하게 히사이시 조 느낌을 내려고 했다고 했으면 더 멋졌을 것을...

 

여하튼, 이들은 앵콜곡으로 역시나 모리꼬네의 '시네마 천국 테마곡'을 연주한다.

 



 

아. 작년 엔니오 모리꼬네 콘서트에서의 전율이 다시 떠오른다...

2시간에 가까운 공연시간동안 단 한마디도 안하고 연주만 딱 하고 뒤돌아 선 그 거장의 아우라란...

특히 얼마전에 모리꼬네의 음악이 너무나 멋졌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를 필름으로 본지라

작년 공연에서 그 음악을 두 귀로 직접 들었던 게 얼마나 큰 영광이었던가...

 

정말 끝내주는 음악을 가진 영화 '원스어폰어타임인더웨스트' 오프닝 씬을 보라.

 

 

엔니오의 연주모습은 언제봐도 환상이다.

 


 

이후에는 드디어 정희성 시인님 등장!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바로 싸부 김대우 감독님이 예전 대학교 시절 학교 벽에 붙어 있던 이 시를 보고 와락 눈물을 흘렸다는 그 시.

고단한 노동을 끝내고 삽을 씻으며 슬픔도 버리며 담배 한대 피우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뒷모습이 그려진다.

 

할머니와 함께 달동네 초입에 사셨다는 감독님은 늘 밤이면 창밖으로 불콰하게 취해서 비틀거리는 막노동꾼들을 보고 물었다고 한다.

 

"저들은 가난한데 왜 저렇게 술을 마시는 거에요?"

"저 사람들은 돈을 그날 그날 받아서, 밤마다 술을 마실수 있는거란다. 그리곤 돈이 떨어지니 담날 또 일을 나가야 하는거구"

"에이. 그거 아껴서 모아야지. 왜 술을 먹고 그런담"

"너도 공부한하고 놀면 저 사람들 처럼 된단다."

 

그런데, 파리 유학시절 힘든 육체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언덕에서 늘 얼콰하게 취해서 노래를 부르며 걸어올라가며 이 어릴적 에피소드가 생각나셨다고 했다.

 

 누구나 이렇게 '저문강에 삽을 씻으며' 살아간다.

직장인들이 안정적인 직장에 가정을 가졌음에도 늘 밤마다 회식에서 술에 삽을 씻듯이,

작가들도 고단한 자기와의 싸움을 끝내고 글을 쓸때면 밤마다 이불을 들척이며 삽을 씻는다.

 

이 시집 정말 발군이다. 시편 하나하나가 진주 같아서 빨리 읽어버리기가 아까운 그런 시집이다.

 

정희성 선생님이 직접 신작 시 한수를 낭독해 주셨다.

 



 

실황 영상이다. 클릭!

http://video.naver.com/2008091817272417311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

 

 

                            정희성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모래처럼

외로운 지를 알았다

나의 불온성에 비추어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음을 안다

그리고 모든 망가지는 것들이 한때는

새것이었음을

 

하지만 나에게 무슨 영광이 있었던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바라보았으나

사람들은 내가 한쪽 눈으로만 본다고

그래서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다고

세상은 그렇게 일목요연한 게 아니라고

 

내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다른 무엇일 거라고

결코 상상해서는 안 된다고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이념을 내려놓으라고

그런데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버릴 수 없는 꿈이 있기에

 

나는 내가 많이 망가졌음을 알면서도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내가 더 망가지기 전에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더 외로운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왔던 한 노시인의 이런 득도한 자기고백은 정말 사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저문강에 삽을 씻으며' 살아왔던 시인은 '망가졌음을 안다며' '희망을 버리지 않기에 외로운' 것을 노래한다.

 

신념대로 살아가기엔 세상은 너무나 유혹적이고,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

적당히 세상에 뭍어가라고, 대충 남들처럼 살라고, 그런게 인생이라고 다들 내게 말한다.

 

올초에 너무나 힘들어서 한나라당 선거운동원 알바자리를 놓고 잠시 고민했었다.

헌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까지 버릴수 없는게 있더라.

내가 아니다라고 생각한 건 하지 말고 살자는 작은 존심 같은게 있는데,

만약 그 선택을 했다면 아마 엄청 큰 충격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지금도 여전히 남들은 내게 좀 영악해 지라고, 비즈니스를 좀 하고 살라고, 현실을 좀 똑바로 보라고,

그렇게 말하지만 여전히 난 꿈에서 희망을 보기에 '저문강에 펜을 씻으며' 뚜벅뚜벅 걸어간다.

 

구부정하게 등장한 한 더벅머리 청년.

바로 하이미스터메모리 라는 록커다.

정희성 시인을 너무나 좋아한다며 꼭 시 한편을 음악으로 만들게 해달라며 싸인들 부탁하는 순박한 청년.

 

이 친구는 은희경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테마로 노래를 만들었단다.

 

문을 두드리는 소년에 관한 노랜데, 문득 이 노래를 들으며 짤막한 단편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문 두드리는 소년> written by 상범.

 

추운 겨울밤. 바람은 몰아치고, 언 손을 호호 불며 소년이 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아무리 두드려도 문 안쪽에서는 대답이 없다.

까치발을 세우고 창문 안을 들여다 본다.

서리를 닦고 바라본 안쪽은 파티가 한창이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노인들이 샹들리어 아래에서 와인을 마시며 왈츠를 춘다.

소년은 배가 고픈지 침을 삼키곤 고개를 툭 하고 떨어트린다.

그때 저 안쪽에서 소년이 아비가 고개를 돌려 소년을 쳐다본다.

소년은 창문에 얼굴을 박고 세차게 두드려 보지만 아비는 무심히 고개를 돌린다.

뚜벅뚜벅 다가와 아비는 창문의 커튼을 닫는다.

문앞에 선 소년은 다시 문을 세차게 두드리다 지쳐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

소년은 언 손을 호호 녹이곤 거리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 혼자가 아니야. 너 혼자가 아니야...’

고개를 둘러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살짝 구름에 가린 달이 드러나자 길가에 주욱 늘어선 주택앞에 모두 언손을 녹이고 있는 소년과 소녀들이 늘어서 있다.

왈츠 소리가 적막한 거리를 울린다.

 

이 노래 발군이다.

딱 듣는 순간 그림이 딱 그려지는 그런 노래. 덕분에 나도 단편 시나리오 생각거리를 하나 얻었다.

 

이날 든 생각인데,

맨날 컴퓨터에 머리박고 글 쓰거나 책 읽는 것만으로는 절대 영감이 나오진 않는다는 거다.

 

거리를 다니고, 공연에 가서 음악도 즐기고, 사람도 만나면서 세상을 느끼고,

뭔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이미스터메모리와 함께 했던 그 고운 목소리의 여성 보컬이 누군지 궁금하다.

참 분위기 있던데 말이다. 하여간 이 청년도 주목할 뮤지션으로 찜!

 



 

마지막으로 토미키타 라는 록커가 등장했다.

커다란 선글라스에 망사셔츠를 입고 하드한 보컬을 내지르니 이거 왠 마쵸맨 인가 했는데,

막상 말을 하는 걸 보니 순박한 면도 있는 뮤지션이다.

 

이름은 들어봤다 토미키타.

토미 힐피거 때문인가, 토미 리 존스 때문인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말이다.

재미교포 출신 록커인데, 모델도 하고 '마리아 마리아' 뮤지컬에서 예수 역할도 한 배우이기도 하다.

근데 이 록커가 부른 문학 노래는 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연을 끝내고 싸인회를 하는 작가에게 싸인들 받았다.

정희성 시인에게 '저문강에 삽을 씻고' 책을 내밀며 '싸부님이 영화감독이신데 내일 생신이라 선물로 드리려 하니 코멘트 해주세요' 라며 말이다.

 

아까 위에 말했듯 싸부가 참 좋아하는 시라 직접 시인이 싸인한 시집을 드리면 참 좋아하실듯 해서 그런건데,

역시나 선물로 드렸더니 무척이나 감동하셨다. ㅎㅎ.

물론, 나도 '돌아다보면 문득' 시집에 싸인을 받았지만 말이다.

 

좋은 책에, 멋진 음악에 참 오랜만의 나들이라 기억에 남았지만,

그것보단 역시 방구석에서 글만 쓰지 말고 좀 돌아다니자 라는 생각이 든 날이었다.

 

특히 음악. 그동안 음악을 참 멀리 했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사운드 데이에는 홍대에 가서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의 세례에 푹 빠져봐야 겠다.

 

물론, 매달 상상마당에서 하는 북콘서트를 꼭 챙겨볼거고 말이다.

 

책과 음악.

그리고 영화.

 

내 인생의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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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광대 2008-10-10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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