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읽는 백온유 작가의 책이다. <유원>에서의 유원이 죽은 언니의 무게를 안고 살아야 했다면, <페퍼민트>에서의 시안은 죽지 않은 엄마의 무게를 견디며 산다. 시안의 엄마는 '프록시모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위중한 상태를 겪고 난 뒤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 이후로 시안의 삶은 달라졌다. 여느 아이들처럼 어느 대학을 갈까, 수능이 언제인가, 이런 것들을 고민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리고, 입시를 위해 학원에 간다. 시안은 학교가 끝나면 병원에 간다. 시안에게는 간병해야 할 엄마가 있다. 엄마는 제때 뒤집어 주지 않으면 욕창이 생겨 버리는, 눈을 뜨고 있어도 초점을 맞출 줄 모르는,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끝내는 자가호흡을 하지 못하는 존재니까.
그거 알아? 우리는 견디고 있어. 이 악취를, 시린 소독 냄새를, 좁은 침대를. 엄마는 뭘 견디고 있어?
문득, 엄마도 엄마의 좁은 몸을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의 유일한 딸이라서 모든 마음을 다 받고 자랐다. 염려, 걱정, 사랑. 엄마를 사랑하면서 엄마 곁에서 보내는 시간을 낭비로 여긴다는 게 미안하다. 엄마는 나를 키우는 동안 자신의 삶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한 적 있을까.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칠 때, 기저귀를 갈 때, 우유를 먹일 때. (P.121)
그러던 중, 시안은 병원에서 해원의 오빠 해일을 우연히 마주하고 이후 해원을 찾아가게 된다. 해원과 시안은 본래 친구였으나, 해원의 엄마는 해외에 있는 동생을 보러 갔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슈퍼 전파자가 된다. 그 과정에서 해원의 친구였던 시안의 엄마가 감염되어 식물인간이 되고, 해원의 가족은 자신들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치듯 이사한다. 그런 해원이 다시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 해원과 해원의 가족은 슈퍼 전파자가 된 이후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다. 순식간에 낙인이 찍혔고, 신상이 퍼지고 비난받는 일들. 그런 일을 겪으며 해원은 이름까지 바꾼 것이다. 그러나 시안에게 그런 것은 별로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해원에게 모든 화살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비약이겠지만 더 이상 그런 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면 뭘 원하는데?
저 애가 내가 느끼는 고통의 일부의 일부라도 이해하는 것.
과거를 잊고 편히 사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지 않겠다는 것이 고약한 마음이라는 건 나도 알았다. 하지만 그래서 뭐? 누구의 인생은 망했는데 해원의 행복은 보장되어야 할 이유라도 있나? (P.148~149)
소설은 두 아이의 위태로운 마음을 번갈아 가며 짚는다. 시안은 해원에게 엄마가 식물인간 상태라는 것을 숨기다가 이야기한다. 시안은 시안대로 해원을 만나며 그동안 눌러 왔던 마음과 마주하며 엄마의 무게에 허덕이고, 해원은 해원대로 시안의 엄마가 식물인간이 된 것, 그럼에도 해원의 엄마가 결국에는 해원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죄책감에 허덕인다. 그러나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 해원의 엄마는 엄마의 동생을 사랑했기에 동생을 만나러 갔다가 감염되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건강을 돌보지 않고 직장에 나갔고, 시안의 가족을 사랑했기에 시안의 가족을 만났다. 서로를 가까이했기에 병들었고, 아팠고, 비난받아야 했고, 죄책감을 가져야 했다. 전염병이 갖는 비극 속에서 그러나 두 아이는 결국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을 지킨다.
시안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시안은 오롯이 사랑한다. (오롯이는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다는 뜻도, 고요하고 쓸쓸하다는 뜻도 가진다.) 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나누지 못한 엄마를, 최선을 다해 온전히 돌본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어도 고요히, 쓸쓸히, 묵묵히, 혼자서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우리며 간병의 시간을 견뎌낸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예전과는 다르다. 힘듦을 말할 수 있고 고통을 나눌 수 있고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사랑했기에 아프게 되었으나 결국 그 아픔을 견뎌내는 것도 사랑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탓하고 누군가에게 모진 마음을 털어놓고, 그럴 수 있어야 개운함도 찾아온다. 마치 한 잔의 페퍼민트 차를 마시듯, 매운 순간이 지나간 후의 상쾌함을 맛보듯 말이다.
그러니 사랑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후회는 이름만큼이나 늘 한 발짝 늦어서 괴롭다.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갑자기 관계가 단절되더라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더라도, 후회 없도록 말이다. 소설을 둘러싸고 있던 띠지에는 "준비할 시간이 있다면, 분명 사랑을 말했을 것이다."라 되어 있다. 결국 사랑을 말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 짧은 문장에 담긴 후회와 슬픔을 알아챌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을 이야기해야 한다. 사랑에 상처받고 아플지라도 결국 삶을 살아가게 하는 추동력은 오로지 사랑일 것이므로.
우리는 재난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사실 그 누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간병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그게 마지막 대화라는 걸 알았다면 엄마는 내게 무슨 말을 건넸을까? 엄마는, 우리는, 분명 사랑을 말했을 것이다. (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