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반양장) - 천 개의 종이학과 불타는 교실 창비청소년문학 118
이종산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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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비 오는 날, 도서부이자 종이접기 클럽의 부원인 세연, 모모, 소라가 학교의 귀신을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주인공인 세연이 종이학을 접어 달라는 귀신을 직접 만나게 되며 시작된다. 이 첫 챕터인 '비 오는 날의 괴담과 판다와 종이학'은 창비어린이 통권 제69호에 실린 단편을 다듬은 것이기도 하다. 단편을 먼저 읽어 보았을 때에는 단순한 학교 괴담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밤에 홀로 학교에 있어 보면, 왜 학교 괴담이 심심찮게 등장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귀신, 괴담, 그런 소재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이 소설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이후의 전개는 학교 괴담과는 사뭇 달랐다.

세 명의 등장인물은 책도 읽고, 학교의 귀신에 대해 관심이 많은 졸업생 선배도 만나고, 왠지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선생님에게도 질문을 하고, 블로그에 종이학 귀신을 적어 둔 할머니 졸업생과도 만나며 귀신의 정체를 파헤쳐 나간다. 언뜻 들으면 무슨 그런 일에 관심을 두느냐, 싶겠지만 세 명의 소녀들은 진지하게 사건에 임한다.

"제가 이상한 일들을 좇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저를 자꾸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이상한 일들이 저를 따라올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저는 그래서 비밀을 찾고 있어요. 그러면 이상한 일들도 멈출 것 같아서요."

92~93쪽

소설은 사건을 좇는 동시에 도서부의 일상, 그리고 종이접기 클럽의 일상을 함께 다룬다. 서로 수다를 떨거나 학교 생활을 해나가는 모습은 여느 중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럴 때쯤, 잊을 때쯤 사건이 지속적으로 부원들을 건드린다. 각자가 사건을 대하는 마음은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세 명의 소녀들은 언제나 연대한다. 무조건적으로 동조하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외면하지도 않는다. 소라가 사라졌을 때, 세연과 모모는 무서움을 무릅쓰고 함께 소라를 찾아 나선다. 홀로 서는 힘도, 연대하는 힘도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우리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의 규칙이 있다.

절대 대신 접어 주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워도 스스로 끝까지 해내야 한다. 그 대신 모모나 소라는 내가 종이접기를 하다가 막혀서 절망할 때마다 옆에서 속도를 늦춰 천천히 종이를 접는다. 두 사람이 접는 모습을 집중해서 따라 하면 아무리 어려운 부분도 결국은 접을 수 있다. 모모와 소라는 내가 해낼 때까지 몇 번이고 옆에서 종이를 다시 접어 준다.

106~107쪽

귀신이라는 소재를 차용했을 때부터 일반적인 내용은 아니리라 생각했으나, 세 명의 소녀들이 서고의 미스테리한 공간을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1937년, 모교의 재학생들이다. 시간을 거슬러 가며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역사의식이 함께 드러난다. 일제의 오리가미 클럽과, 종이접기가 애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소설을 착안했다는 작가의 말에서 드디어 이 책의 모든 구성과 의도가 이해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일제 강점기의 절망과 비극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치욕스러울지라도 살아서 이를 극복하는 것, 연대하여 맞서는 것, 그럼으로써 결국 미래의 어느 도래할 희망을 기꺼이 기다리는 것. 그런 것으로부터 비극 속 희망이 새어나온다.

'불타는 교실'은 이야기를 쓰는 초반부터 떠올린 이미지였다. 고통과 핍박, 죽음, 희생이 내가 이 이야기에서 발견할 비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료를 조사하고 취재를 하면서 내가 발견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살아 있던 얼굴들. 생생하게 살아 있었고, 불의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싸웠고, 웃고 울었던, 그리고 살아남았던 사람들.

202쪽

1937년의 풍영중 학생들에게, 그리고 지금의 풍영중 세연, 모모, 소라에게 종이학을 접어 날려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여름날 저녁, 도서부 학생들과 함께 꼭 한번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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