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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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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읽는 백온유 작가의 책이다. <유원>에서의 유원이 죽은 언니의 무게를 안고 살아야 했다면, <페퍼민트>에서의 시안은 죽지 않은 엄마의 무게를 견디며 산다. 시안의 엄마는 '프록시모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위중한 상태를 겪고 난 뒤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 이후로 시안의 삶은 달라졌다. 여느 아이들처럼 어느 대학을 갈까, 수능이 언제인가, 이런 것들을 고민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리고, 입시를 위해 학원에 간다. 시안은 학교가 끝나면 병원에 간다. 시안에게는 간병해야 할 엄마가 있다. 엄마는 제때 뒤집어 주지 않으면 욕창이 생겨 버리는, 눈을 뜨고 있어도 초점을 맞출 줄 모르는,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끝내는 자가호흡을 하지 못하는 존재니까.


그거 알아? 우리는 견디고 있어. 이 악취를, 시린 소독 냄새를, 좁은 침대를. 엄마는 뭘 견디고 있어?

문득, 엄마도 엄마의 좁은 몸을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의 유일한 딸이라서 모든 마음을 다 받고 자랐다. 염려, 걱정, 사랑. 엄마를 사랑하면서 엄마 곁에서 보내는 시간을 낭비로 여긴다는 게 미안하다. 엄마는 나를 키우는 동안 자신의 삶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한 적 있을까.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칠 때, 기저귀를 갈 때, 우유를 먹일 때. (P.121)



그러던 중, 시안은 병원에서 해원의 오빠 해일을 우연히 마주하고 이후 해원을 찾아가게 된다. 해원과 시안은 본래 친구였으나, 해원의 엄마는 해외에 있는 동생을 보러 갔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슈퍼 전파자가 된다. 그 과정에서 해원의 친구였던 시안의 엄마가 감염되어 식물인간이 되고, 해원의 가족은 자신들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치듯 이사한다. 그런 해원이 다시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 해원과 해원의 가족은 슈퍼 전파자가 된 이후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다. 순식간에 낙인이 찍혔고, 신상이 퍼지고 비난받는 일들. 그런 일을 겪으며 해원은 이름까지 바꾼 것이다. 그러나 시안에게 그런 것은 별로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해원에게 모든 화살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비약이겠지만 더 이상 그런 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면 뭘 원하는데?

저 애가 내가 느끼는 고통의 일부의 일부라도 이해하는 것.

과거를 잊고 편히 사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지 않겠다는 것이 고약한 마음이라는 건 나도 알았다. 하지만 그래서 뭐? 누구의 인생은 망했는데 해원의 행복은 보장되어야 할 이유라도 있나? (P.148~149)



소설은 두 아이의 위태로운 마음을 번갈아 가며 짚는다. 시안은 해원에게 엄마가 식물인간 상태라는 것을 숨기다가 이야기한다. 시안은 시안대로 해원을 만나며 그동안 눌러 왔던 마음과 마주하며 엄마의 무게에 허덕이고, 해원은 해원대로 시안의 엄마가 식물인간이 된 것, 그럼에도 해원의 엄마가 결국에는 해원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죄책감에 허덕인다. 그러나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 해원의 엄마는 엄마의 동생을 사랑했기에 동생을 만나러 갔다가 감염되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건강을 돌보지 않고 직장에 나갔고, 시안의 가족을 사랑했기에 시안의 가족을 만났다. 서로를 가까이했기에 병들었고, 아팠고, 비난받아야 했고, 죄책감을 가져야 했다. 전염병이 갖는 비극 속에서 그러나 두 아이는 결국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을 지킨다.


시안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시안은 오롯이 사랑한다. (오롯이는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다는 뜻도, 고요하고 쓸쓸하다는 뜻도 가진다.) 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나누지 못한 엄마를, 최선을 다해 온전히 돌본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어도 고요히, 쓸쓸히, 묵묵히, 혼자서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우리며 간병의 시간을 견뎌낸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예전과는 다르다. 힘듦을 말할 수 있고 고통을 나눌 수 있고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사랑했기에 아프게 되었으나 결국 그 아픔을 견뎌내는 것도 사랑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탓하고 누군가에게 모진 마음을 털어놓고, 그럴 수 있어야 개운함도 찾아온다. 마치 한 잔의 페퍼민트 차를 마시듯, 매운 순간이 지나간 후의 상쾌함을 맛보듯 말이다.


그러니 사랑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후회는 이름만큼이나 늘 한 발짝 늦어서 괴롭다.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갑자기 관계가 단절되더라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더라도, 후회 없도록 말이다. 소설을 둘러싸고 있던 띠지에는 "준비할 시간이 있다면, 분명 사랑을 말했을 것이다."라 되어 있다. 결국 사랑을 말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 짧은 문장에 담긴 후회와 슬픔을 알아챌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을 이야기해야 한다. 사랑에 상처받고 아플지라도 결국 삶을 살아가게 하는 추동력은 오로지 사랑일 것이므로.


우리는 재난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사실 그 누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간병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그게 마지막 대화라는 걸 알았다면 엄마는 내게 무슨 말을 건넸을까? 엄마는, 우리는, 분명 사랑을 말했을 것이다.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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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세세 씨 마음그림책 8
김수완 지음, 김수빈 그림 / 옐로스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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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세세 씨’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세세 씨로 추정되는 고양이는 반듯한 양복을 입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철조망 뒤로는 공장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세세 씨는 표정이 없습니다. 궁금해집니다. 


표지를 넘기면 아이스크림이 가득한 면지가 등장합니다. 한 장을 더 넘기면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세세 씨가 나오죠. 세세 씨는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아이스크림 공장에서 일하실 고양이 모집’이라는 광고를 보게 됩니다. 이 책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공장은 딱딱하고 질서가 가득합니다. 동료는 이것이 지겹다고 이야기하지만 세세 씨는 이 일이 좋은지, 어떤지도 잘 모르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출근해서 일하고, 출근하지 않는 날은 잠만 자는 날들이 계속됩니다.


세세 씨는 어느 날 꽉 막힌 도로에서 자신과 똑같은 모습들을 마주합니다.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공장의 기계 부품 같기도 합니다. 개성이라곤 하나 없는, 즐거움이나 달콤함이라고는 하나 없는 도로 위의 모두가 무섭습니다.


세세 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동료가 차린 낚시터로 달려갑니다. 도로 위에 빼곡히 들어찬 차들과 달리 낚시터는 고요하고 탁 트인 모습입니다. 진짜 행복은 뭘까요? 내 삶을 잘 사는 방법은 뭘까요? 세세 씨는 낚시를 하면서 아마 그런 것들을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중요한 건 집에 돌아가는 세세 씨의 발걸음이 가벼웠다는 것입니다.


책의 말미에서, 세세 씨는 자신이 정말 행복해지는 일을 선택합니다. 계속 아이스크림을 만들기는 하지만, 맨 뒤의 면지에 가득한 아이스크림은 앞의 면지에 그려진 그것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아이스크림을 비교해 보면, 세세 씨가 정말 행복하게 일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서 일하는 것에도 꽤 많은 생각과 성찰이 필요함을 보여 줍니다. 좋아하는 것을 무작정 선택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도 않으며, 자신이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초반부의 세세는 삶에 매몰된 모습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큰 고민도 하지 않고, 자신이 진짜 하고픈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로 일을 선택하다 보니 자신의 선택에 끌려다니는 모습입니다.


책 중반부에 등장하는 도로 속의 수많은 세세 씨들 중 하나가 바로 나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나는 진짜 행복한가? 이 직업을 선택했을 때 내가 주체적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가? 좋아하는 일이어서 선택했지만, 진짜 행복하려면 어떻게 일해야 할까? 여러 질문들이 쏟아집니다. 


이 책을 진로독서 시간에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합니다. 단순히 좋아한다고 해서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그 이후 어떻게 살아갈지, 그 직업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할 것인지도 지속적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최태성 선생님이 언젠가의 강의에서 ‘여러분의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여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납니다. 그 직업을 선택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까지를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진로탐색의 완성일 것입니다.


그저 단순히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의 꿈을 선택하고, 저는 이제 정했어요! 하는 학생들과 책을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지속 가능한 행복은 어떻게 하면 가능한 걸까, 같이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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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철학연습 - 십대들의 마음과 생각을 키워주는 그림책 읽기 생각하는 청소년 14
권현숙 외 지음 / 맘에드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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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그림책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은 신규 연수 때였습니다. 연수 프로그램 중 그림책과 관련된 내용이 있었는데, 모든 게 낯선 와중에도 그림책을 중고등학생에게 적용한다는 것은 더욱 그랬습니다. 당연히 그림책은 유아가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할 만큼, 그림책으로 할 수 있는 수업은 무궁무진했습니다. 이후 그림책의 매력에 빠지게 됐고,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 즐거움을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하던 찰나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철학 연습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만큼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실에 잘 적용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철학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어떤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교실 현장에서도 꼭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겠지요. 학생들에게 생활지도를 하면서 철학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피상적인 안내에 그치거나 교사가 단순히 규칙을 읊는 데 지나지 않아 항상 아쉬웠습니다.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가치를 지니면 좋을지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고민에 대해 그림책이라는 해답을 제시합니다.

 책은 총 4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를 알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상대와 관계를 맺는 방법,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세, 미래 사회에 대한 고민까지 알차게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그림책이라는 아주 쉽고 흥미로운 제재로부터 시작됩니다. 유치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 책에 소개된 그림책을 곁들여 읽어 보니 그런 생각은 금세 사라졌습니다. 다만 그림책을 읽고 나서, 재미있었다, 로 끝나면 안될 것입니다. 왜 이 책을 소개하는지, 이 책이 학생들의 삶에 어떤 연관이 있고 무엇을 생각해볼 수 있는지, 이 책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심화된 주제가 무엇일지 하는 것들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겠죠. 이 책은 그런 점에서도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주제에 맞는 그림책을 소개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 그림책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수업에서 어떤 유의미한 질문을 던져 심화된 사고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를 함께 제시합니다.

 이 책의 주제들을 따라 머릿속으로 수업의 장면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벌써 어떤 그림책을 보여 줄지, 어떤 질문을 던질지, 어떤 토론을 하고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가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무엇보다 학생들 스스로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해 나가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여러 수업 장면 중 제 교실에 맞는 내용을 선택하여 다음 학기부터 적용해 보아야겠습니다. 제 학생들이 제가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목표에 있어 그림책이, 그리고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고민을 갖고 계신 선생님들께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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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폐기 안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채소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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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을 유예한다. 잠든 사람이 반드시 꿈을 꿀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꿈을 꾸는 사람은 대부분 잠들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살아 있지도 않는 내가 잘사냐고 너에게 묻고, 그러니 대답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덜 아프다는 것이 나아졌다는 것으로 착각되는 일. 번화한 도시의 우울한 홀로. 이 세계는 온종일 밝다. 그 안에서 웃는 사람은 우는 사람과 거의 동일하다. 나의 병명을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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