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궁빌라에는 킹콩이 산다 ㅣ 웅진책마을 129
김은아 지음, 주성희 그림 / 웅진주니어 / 2026년 4월
평점 :

『고궁빌라에는 킹콩이 산다』(김은아/웅진주니어)
공동주택에 살다 보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타인의 숨소리와 발소리가 섞여 든다. 우리 집만 해도 윗집 할아버지의 안마기 소리와 할머니의 청소기 소리가 들려오면, ‘오늘 몸 푸시네’, ‘청소하시네, 우리도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곤 한다. 과거에 창을 열면 보이던 옆집의 풍경처럼, 이제는 소리를 통해 이웃의 모습이 그려진다.
우리 곁에 들리는 여러 소리는 우리가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그 소리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배달 오토바이의 굉음이 누군가에게는 소음이지만, 마니아에게는 묵직한 기계음으로 들리는 것과 같다. 이웃한 벽에서 들리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소음’이라 규정하는 순간, 이웃은 낯선 적이 된다.
김은아의 『고궁빌라에는 킹콩이 산다』는 이웃 간 갈등 속에서 어떻게 ‘화해의 합주’가 이뤄지는지를 그려내는 흥미로운 동화다.
고궁빌라 402호에 사는 세영이는 ‘기타 소녀’다. 기타리스트 아빠가 음악 학원 원장이니 세영이도 당연히 기타를 잘 칠 거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세영이의 연주 뒤에는 물집이 터지도록 연습한 고독한 사투가 있다. 사람들은 벽 너머의 그 사정을 알지 못한다. 아빠의 권유로 학교 밴드를 시작하지만, 아이들과의 불협화음으로 힘들어하면서도 집에서 기타를 연습하며 꾸준히 노력한다. 물론 소음을 줄이려 노력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302호에 사는 오설아 작가는 그 소리에 가장 예민한 청중이다. 작가라는 허울 뒤에 가려진 초라한 현실, 엄마의 원조로 겨우 지탱하는 자존심은 그녀를 더욱 차갑게 만든다. 그런 처지는 ‘소리’를 ‘소음’으로, 나아가 ‘굉음’으로 느끼게 한다. 오 작가에게 세영은 ‘킹콩’일 뿐이다. 그런데 이 동화는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을 준비한다. 갈등의 정점이었던 층간소음이 어느 순간 생사를 가르는 구조 신호로 전치되는 것이다. 과연 그 벽 너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 소설에서 소리가 소음이 되고, 소음이 소란과 비명, 굉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변화한 것은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관계의 거리’다. 오 작가는 조용히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이웃과 소통을 단절하고 홀로 지낸다. 공동주택에서 이웃은 벽을 공유하는 이들로서 너른 이해의 영역에 있어야 하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기 삶에 대한 우울감과 외로움, 풀리지 않는 상황과 세상에 대한 냉소가 오 작가에게 들리는 소리를 폭음으로 변질시킨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온기의 전도 방식’이다. 오 작가를 버티게 한 것은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왕 반장이 건넨 김치 한 포기였다. “따뜻한 손을 잡아 본 적이 없어서 차가운 것”이라는 할머니의 말처럼, 이웃이 내민 따뜻한 손길은 오 작가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차가움은 본성이 아니라 경험의 결과다. 고궁빌라의 어른들이 보여주는 조건 없는 환대는 차가움을 녹이는 유일한 방법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건 우리가 이웃에게 건네야 할 손길이다. 승강기에서 만난 이웃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영이가 밴드부 합주에서 깨닫는 진리도 같은 맥락이다. 완벽한 연주는 악보를 정확히 따르는 데 있지 않고, 서로의 소리를 느끼며 시선을 맞추는 데 있다. 처음에는 날이 서 있던 인물들이 하나의 화음을 이루게 된 것은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어울리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불협화음을 조금씩 조율해간 덕분이다.
이야기의 끝에서 오 작가는 세영을 모델로 ‘기타 치는 소녀’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쓰던 글에서 벗어나 이웃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한 그 변화는 작지만 결정적이다. 좋은 관계는 함께하고 이해할 때 피어나고, 좋은 글은 타인을 경유할 때 태어난다는 것을 오 작가는 가장 절실한 방식으로 배운 셈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고궁빌라에 살고 있다. 위층의 소리가 킹콩의 발걸음처럼 버겁게 느껴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 소리는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어쩌면 그 소리는 우리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일지도 모른다. 그 마음이 맞닿는다면 소음이 환호와 합창으로, 아름다운 선율로 들리는 순간이 분명 찾아올 것이다.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은 소개하지 못했다. 너무 재미있는 장면이라 책을 꼭 읽으면서 반갑게 만나길 바란다. 초등 중학년 이상에게 추천한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고 작성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2026.04.17
#고궁빌라에는킹콩이산다
#웅진주니어
#김은아
#초등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