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가해자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손현주 지음 / 우리학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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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밀한 가해자』 (손현주/우리학교)

'친밀함'이라는 단어는 참 묘하다. 다정한 안식처가 되어주다가도, 때로는 개인의 독립성을 억압하는 서늘한 족쇄가 되기도 하니까. 사회학적으로 가족은 가장 사적인 온기를 나누는 공간이지만, 그 단단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가해는 피해자에게 훨씬 깊은 내면의 파멸을 안기는 비극의 산실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한자 ‘밀(密)’은 빽빽하다는 뜻인데,  파자하면 집 면(宀), 반드시 필(必), 그리고 뫼 산(山) 자로 되어 있다. 집에 갇힌 상황인데, 그 앞에 산이 가로막고 있으니, 그 숨막히는 심정이 느껴진다.

대학 때 사회학 첫 시간에 배웠던 ‘거리감 유지’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가족과 타인, 그리고 나 사이에는 적절한 거리감이 필요한데, 그 거리감은 관계마다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거리감이 없는 사이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도 거리를 둬야 관계가 유지되고, 그것은 부모와 자식도 마찬가지다. 한없이 가까울 것 같은 가족이지만, 좁은 틈을 두지 않으면 관계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친밀한 가해자』는 지나친 보호가 왜 ‘밀폐(密)’된 공간일 수 있는지, 그것이 왜 문제인지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가짜 모범생』을 통해 부모의 기대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자기다운 삶’을 일구는 치열함을 보여준 손현주 작가는, 이번 신작 『친밀한 가해자』에서 그 통찰을 더욱 날카롭고 깊은 심리적 심연으로 확장해 나간다.


소설은 비상계단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진 예기치 못한 사고와 이를 은폐하려는 가족의 모습을 비춘다. 이를 통해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자행되는 밀폐된 공간에서의 정서적 폭력을 과감하게 고발한다. 주인공 준형의 부모는 아들의 미래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진실을 덮자고 종용하지만, 이는 자녀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건강한 성장을 가로막는 ‘잘못된 보호’의 전형일 뿐이다. 아버지가 외치는 “은폐가 아니라 보호”라는 말은 사실 아이에게 평생 씻지 못할 죄책감의 낙인을 찍는 행위이며,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가 아이의 영혼을 잠식하는 가해자가 되는 순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이가 어른으로 나아가는 시기에 얻은 첫 감정이 죄책감이라면,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다.


사춘기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거름 삼아 도덕적 자아를 옹골차게 키워내는 ‘성장의 봄’을 지나는 시기다. 하지만 소설 속 어른들은 준형에게 부끄러움을 외면하고 비겁한 안정을 선택하라고 속삭인다. 할머니는 그를 ‘결점 없는 아이’로 박제하려 하며 과분한 애정을 쏟아붓지만, 그 무게는 준형에게 숨 막히는 왕관처럼 조여온다. 작가는 이러한 관계를 통해 가장 친밀한 가족의 사랑이 어떻게 해로운 독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독이 아이의 성장을 어떻게 가짜로 만드는지 예리하게 짚어낸다.


어른으로의 성장은 자신의 허물을 똑바로 직시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용기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준형이 겪는 지옥 같은 시간은 결국 타인이 아닌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임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건 자신을 속이는 행위라는 현서의 충고는, 준형이 ‘가장 친밀한 자신’에게마저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마주해야 할 진실의 목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준형의 마지막 선택은, 자신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존재로 거듭나겠다는 치열하고도 눈부신 선언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우리는 아이를 사랑한다는 핑계로 그들이 마땅히 겪어야 할 성장의 진통을 가로채고 있지는 않은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과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야말로 아이를 진짜 어른으로 만드는 핵심 동력이다.


 『친밀한 가해자』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안락한 감옥을 부수고 나와, 잿빛 구름 너머의 태양을 스스로 기다리기로 결심한 한 소년의 시린 고백록이다.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내 사랑은 지금 누군가를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무너뜨리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떳떳할 때라야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그 자명한 진리를, 준형의 무거운 발걸음으로 묵직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초등 고학년부터 청소년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수작이다.


2026.01.19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소중한 가제본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감상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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