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딱지 얘기를 하자면
엠마 아드보게 지음, 이유진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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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딱지를 얘기하자면』 (엠마 아드보게 글·그림, 이유진 옮김, 문학동네)


미술관 한쪽에서 난해한 그림을 바라보던 중, 오랫동안 아끼던 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제는 성인이 된 아이였지만, 목소리 속에는 여전히 어릴 적 그 아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족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듯, 울먹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 또한 그 나이 무렵, 몸만 자라 있었을 뿐 세상과 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였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느껴질 막막함과 무력감이 얼마나 큰지, 그 속에서 버티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지, 고스란히 이해되었다. 그 아이가 앞으로 겪게 될 아픔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비록 시간이 지나면 치유되고 흔적만 남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은 피가 철철 흐르듯 생생하고 아릴 터였다. 그 상처 앞에, 나의 가슴도 함께 시렸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알았다. 아이 역시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털어놓고, 누군가와 나누고, 울고, 하소연하고, 그러는 사이에 조금씩 회복하게 될 것임을. 주변의 사랑과 관심이 그 과정을 지탱해 줄 것임을.


그때 떠오른 것이, 얼마 전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 『내 딱지를 얘기하자면』이었다. 책의 제목 속 ‘딱지’라는 단어를 처음 봤을 때는 아이들이 노는 네모난 종이딱지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서의 ‘딱지’는 상처 위를 덮고 치유를 돕는, 말 그대로 피가 굳어 생긴 피딱지다.


주인공은 쉬는 시간, 친구들과 탁구대 주변을 돌며 뛰놀다가 크게 넘어져 왼쪽 무릎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피가 운동장 바닥에 번질 만큼 깊은 상처. 선생님은 아이를 안아 교사 휴게실로 데려가 소독을 하고 커다란 밴드를 붙인다. 그 순간부터 상처와 통증은 반 친구들 모두의 관심과 화제가 된다. 글쓰기 시간에는 상처에 관한 시를 쓰고, 수학 시간에는 서로의 상처 개수를 세며, 미술 시간에는 빨간 크레파스로 상처를 그린다. 다친 아이를 위해 아이들은 ‘가마 태우기’ 놀이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연필을 대신 깎아준다.


이 상처는 주인공에게 고통이면서 동시에 즐거움이었다. 아픔 속에서도 친구들의 관심과 배려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처가 다 나을 즈음, 아이는 묘한 불안을 느낀다. 상처가 사라지면 이 특별한 시간과 관심도 함께 사라지는 건 아닐까. 밴드를 떼어내자 딱지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딱지는 여전히 친구들의 놀라움과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체육 시간, 수영장 다이빙 후 그 딱지는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아이의 무릎에는 분홍빛의 새살만이 남았다. 선생님은 이 자국이 오래 남을 것이라 말했고, 아이는 그 자리를 만지며 “좋네요.”라고 답한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깊다. 상처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타인의 관심과 위로를 받으며 상처만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주인공의 무릎 상처는 친구들과의 우정, 함께 웃고 도운 시간,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품은 ‘기억의 훈장’이 된다. 딱지가 떨어진 자리는 상실이 아니라, 회복과 성장을 증명하는 표식이 된다.


『내 딱지를 얘기하자면』은 일상의 상처를 통해 인생의 보편적인 진리를 그려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때로는 그 상처가 아물기를 바라지 않을 만큼, 그로 인해 얻게 된 관계와 배움이 소중하다. 결국 시간은 상처를 메우고, 우리는 그 과정 속에서 한 뼘 더 자란다. 그리고 언젠가, 그 자리를 어루만지며 “좋네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오랜만에 연락 온 제자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동시에 이 책 속 주인공을 생각했다. 무릎의 상처가 친구들의 관심과 위로를 불러왔듯, 지금 이 아이의 상처 또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손길 속에서 조금씩 회복될 것이다. 언젠가 이 아이도 오늘의 눈물과 아픔을 지나, 그 자리의 흔적을 어루만지며 말하리라.


“좋네요.”


2025.08.15


*본 글은 뭉끄5기로 활동하며,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솔직한 감상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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