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울었다
나카가와 히로타카 지음, 초 신타 그림, 오지은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8월
평점 :

『울었다』 (나카가와 히로타카 글, 초신타 그림, 오지은 옮김)
어릴 적, 우리 집에도 나를 닮은 인형이 있었다. 텔레비전 위에 올려져 있던 울보 인형. 하루 종일 눈물을 머금은 표정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나도 다르지 않았다. 작은 실수에 당황해서 울고, 혼이 나면 서러워서 울고,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하면 떼를 쓰며 울었다. 그때의 울음은 억울함과 서운함, 그리고 세상과 맞서기 위한 가장 솔직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최근 내가 울었던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맺히지 않고, 장례식 같은 ‘당연히 울어야 할 자리’에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억지로 감정을 끌어올리려 애쓰는 내 모습이 오히려 더 서글프다. 부끄럽게도, 이제는 감동보다 웃음 끝에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만이 남았다.
나카가와 히로타카의 『울었다』는 제목처럼 ‘우는 일’을 중심에 둔 그림책이다. 주인공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음을 터뜨린다. 넘어져서, 부딪혀서, 혼나서, 길을 잃어서, 무서워서, 슬퍼서, 기뻐서… 이유는 끝이 없다. 심지어 텔레비전 속 전쟁 장면을 보고 있는 또래 아이를 보며 함께 울고, 키우던 강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한참을 운다. 이쯤 되면, 무언가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울고 싶은 마음’이 하루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울다 말고, 아이는 문득 궁금해진다. “어른들은 왜 울지 않을까?” 아빠가 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엄마가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지만, 대개는 ‘아니’라고 부인한다. 아이의 눈에는 하루에 한 번쯤 우는 일이 당연한데, 어른이 되면 눈물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의 모습과 어릴 적 나 자신이 겹쳐졌다. 학예회 무대에 오르기 전, 무대 뒤에서 손바닥이 땀에 젖고 목이 메어 울었던 기억. 사소한 말에도, 짧은 이별에도 울었던 나였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 모든 순간을 겪어도 눈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감정을 밖으로 흘려보내는 대신, 속으로 눌러 삼키는 데 익숙해졌다. 잘 큰 아이였는데, 영 못큰 어른이 된 듯하여 부끄럽다.
“금세 울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야. 매일 울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야.”
책장 마지막에 작가가 풀어낸 그 문장이 오래 남았다. 울 수 있다는 건 자기 마음에 솔직하다는 뜻이고, 아직 마음이 딱딱하게 굳지 않았다는 증거다. 아이들은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며, 그 감정을 가리지 않는다. 그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어른이 잃어버린 가장 부러운 특권일지도 모른다.
그림책 『울었다』는 ‘아이의 울음으로 채워진 하루’를 그린 듯하지만, 사실은 울음을 통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힘, 그리고 그것이 주는 위로와 성장을 이야기한다. 울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느끼고 살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오히려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우는 아이였기에 다행이다.”
울 수 있을 때는 마음껏 울어야 한다. 울음을 잃어버린 어른의 세계가 때로는 더 슬플 수 있으니까.
2025.08.16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도서를 읽고 작성한 솔직한 감상입니다.
#뭉끄5기
#울었다
#나카가와히로타카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