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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평점 :
『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 현대문학 )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한동안 푹 빠져 있었다. 작품 속에서 품격을 잃지 않으려 애쓰던 백작의 고요한 의지가 오래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새 단편집 『Table for Two』출판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가 컸다. 게다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여섯 개의 단편집이라니. 작가가 풀어낼 이야기가 가득하다는 소리 아닌가. 복잡하고 바쁜 도시의 틈 사이로 사람들의 사연이 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가제본인 프리북에는 「밀조업자(The Bootlegger)」라는 제목부터 낯설고도 묘한 이야기가 있었다. 아이들과 읽는 책 중에 <초콜릿 레볼루션>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의 제목이 Bootleg여서, 뭔가 밀매를 하거나, 금주법 시대의 밀조업자가 밀주를 만드는 이야기겠거니 짐작했다.
이 단편의 흥미로운 점은 이 이야기가 주인공 토머스 하크니스의 아내의 시점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시선을 통해 남편의 삶을 따라가게 된다.
토머스는 유능한 은행가다. 숫자와 사람 사이에서 정확하게 균형을 잡으며 성공의 길을 걸어온 사람. 그에게 삶이란 계획과 자산, 평판과 자기관리로 조율된 악장과 다름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카네기홀에서 열리는 첼로 독주회를 예약한다. 음악에 대한 애정보다는, 뉴욕 상류 사회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연주가 시작되었지만, 정작 토머스의 마음을 붙든 건 무대가 아니었다. 공연 중간에 조용히 들어온 레인 코트를 입은 한 노신사를 유심히 살피는대, 그 노인은 누군가의 눈을 피하듯 주머니에서 Y자 마이크를 꺼내 조심스레 연주를 녹음하고 있었다. 토머스는 그 모습에 본능적으로 불쾌함을 느낀다.
그는 다음 주에도 다시 홀을 찾는다. 같은 자리, 같은 행동. 결국 그는 관리인 미스터 코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경찰이 출동하면서 노인의 이름이 밝혀진다. 아서 파인. 그는 차분히 말했다. 병든 아내를 위해, 그녀가 다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매주 연주를 담고 있었다고.
그 말은 토머스를 흔들어 놓았다. 체면과 규율로 다듬어진 그의 삶 속에 갑작스레 파문이 이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해버린 일을 후회하며 아서 파인을 수소문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되었지만, 이미 그의 아내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놀랍게도 아서는 토머스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지난 세월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딸 메레디스는 차갑고도 선명한 말 한마디를 남긴다. “당신이 첼로 연주를 들을 때마다, 내가 여기 62번가에 서서 당신에게 ‘독선적이고 무신경한 개자식’이라고 말한 일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그녀의 말은 토머스의 삶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처럼 남는다.
이야기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와 함께 마무리된다. 그 단순하고 꾸밈없는 선율이 한 음씩 차오르며 깊어지는 흐름은, 마치 토머스 하크니스가 지나온 삶의 고비들을 닮아 있었다.
“저주는 딱히 얄궂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얄궂은 것과는 정반대다. 저주에 담긴 내용이 그대로 실현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실현되기를.”
아내의 이 말처럼, 메레디스의 저주는 오히려 축복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토미가 그 일로 자기 삶의 방향을 바꾸었으리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삶의 전환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것이 상대의 저주라 할지라도 말이다.
예술을 장식처럼 소비하던 그가 한 노인의 작고 고요한 사랑 앞에서 조금씩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밀조업자> 이야기는 그렇게,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삶의 본질을 살며시 건드린다. 이야기를 덮고 나서도 마음 한켠이 오래도록 따뜻하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가제본에는 단 한 편의 이야기만 짤막하게 실려 있지만, 원작에는 아직 다섯 편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또 다른 골목에서, 누군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 역시 꼭 만나보고 싶다.
에이모 토울스의 전작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이번에도 그의 매력에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참말로 기대되는 책이다.
2025.06.20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프리북을 읽고 작성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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