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그
이소영 지음 / 사계절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슈퍼리그>(이소영/사계절)


몇 달 전, <알래스카 한의원>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아픔에 관한 깊은 통찰, 알래스카의 바다와 빙하, 눈덮인 산과 야생에 관한 묘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작가의 책이 새로 나왔는데, 바로 <슈퍼리그>다. 저자를 밝히지 않았다면 같은 작가 책이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할 만큼, 새로운 소재와 독특한 설정, 깊이 있는 이야기다. <알래스카 한의원>이 개인의 고통을 다루었다면 <슈퍼리그>는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아픔을 다룬다.


<슈퍼리그>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인공지능, 로봇, VR이 발달하여 인간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다. 그러나 그 조화도 빈부격차가 큰데 빈곤층은 끼니를 얻기 위해 노숙을 하고, 그마저도 얻지 못한 이들은 죽음을 맞는데, 시신이 도심 곳곳에 방치되어 별독수리의 먹이가 된다.  주인공 ‘서만주’는 별독수리마저 처리하지 못한 시신을 처리한 청소일을 하면서, 마더하우스라는 종교단체에서 봉사하며 끼니를 겨우 해결하고, 좁은 고시원에서 살아간다.


매우 고도화된 과학 기술 사회에서, 모두가 바라는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슈퍼리그’가 열리는데, 그 중에서도 경쟁률이 가장 높고 치열한 ‘선화그룹’에 입사하려는 사람이 많고, 서만주 역시 10년째 이곳에 매달리고 있는데, 총 3차까지 있는 시험에서 만주는 1차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어느 날 만주는  쓰러진 노숙인 ‘우삼’을 마더하우스로 데려오는데, 우삼은 만주에게 구하기 힘든 최신형 VR 장비인 ‘무토’를 준다. 서만주는 이 무토를  통해 가상 현실에 접속해 가상의 우삼을 만나 선화그룹의 슈퍼리그 훈련을 받고, 진짜 슈퍼리그에 참가한다. 과연 만주는 선화그룹에 입사할 수 있을까?


슈퍼리그 참가 과정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무척 경이로우면서도 회사가 바라는 직원상이 왜 그래야 하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뽑고자 하는 인재의 모습과 목적은 무엇인지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작품의 끝에 나온다. 슈퍼리그에서 참가자가 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이 가진 의미를 곱씹다 보면, 우리가 직장인이 되는 일이 바로 그런 것이라 느껴진다. 자신의 감정을 없애고 철두철미하게 이익을 따지며, 주어진 목표를 향해 단호히 나아갈 수 있는 의지.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를 깎고 포기하고, 외면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주인공 서만주는 현실의 어려움을 슈퍼리그를 통해 단번에 극복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가상현실 장비인 무토로 트레이닝까지 받으면서 슈퍼리그에 도전하는데, 아버지의 죽음과 사라진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은 이 모든 걸 단번에 극복할 수 있는 슈퍼리그에 참여하는 가장 큰 이유다. 모든 걸 걸고 하는 마지막 도전을 통해, 서만주는 가장 소중한 걸 포기해야 한다.


 이 책에서 인간들은 모두 기계적이었다면 기계들은 인간적이었다. 쿠처럼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로봇도 있었고, 선화그룹의 인공지능처럼,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여 인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모습도 보인다. 그에 반해 사람들은 대기업에 입사하여 기계처럼 일하길 바란다. 사실 이는 지금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가상현실을 넘나들며 진행되는 취업 리그라는 독특한 세계관과 설정이 가장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현대 사회의 취업 경쟁과 계층 구조를 적나라하게 반영하며,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만주의 모습이 우리 자신에게 투영된다. 20대는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또한 <알래스카 한의원>처럼 몰입감 높은 전개 과정이 인상 깊다. 또한 입체적인 인물 묘사는 드라마나 영화로 내어놓아도 좋을 만큼, 캐릭터 특징을 정말 세심하게 다듬었다.


SF 작품으로서, 이 책은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의 윤리적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경제와 과학의 발전 속에 환경 파괴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우리 사회의 암울한 자화상으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마치 게임처럼 극한의 경쟁으로 치닫게 만드는 현대 사회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다. 경쟁이 극대화되고, 이에 열광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잃고 있다는 방증이다.


SF가 현실과 문학의 옷을 입으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고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두루 추천할 만하다.


2024.11.04


*본 서평은 출판사 ‘사계절’에서 받은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슈퍼리그

#이소영

#사계절

#가상현실

#인공지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