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재킷 창비청소년문학 127
이현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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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재킷>(이현/창비)


출간 되기 전에 좋은 책을 먼저 읽는다는 기쁨, 훌륭한 작가의 도서, 날것 그대로의 작품을 맞는 느낌이란! 게다가 어린이와 청소년 모두가 좋아하는, 이현 작가의 책이라니. 바로 <라이프 재킷>이다.


출판사에서 보낸 책을 받자마자 설렜다. 아무 장식도 없지만, 파란표지에는 푸른 바다가 담겨 있고, 제목을 둘로 가른 ‘라이프’와 재킷‘은 둘을 갈라놓을 암울한 결말을 의미하는 듯했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반가웠던 점은 배경이 내가 사는 부산이라는 점이었다. 부산 바다를 배경으로, 부산 아이들의 생생한 입말이 가득 담겨 있어 정겨웠다. 다만 부산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은, 경상 지역 이외의 아이들은 읽기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남은 아아도 잡겠네.”라는 표현에서 ‘아아’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아이’를 의미한다. 쉽게 ‘애’라고 생각하면 쉬운데, 초반에 많이 어색할 것이다. 아마 출간되면 이 부분이 가장 먼저 수정되지 않았까?


본론으로 넘어가서, 이 책은 고등학생들의 요트 세일링을 다룬다. 흥미로운 항해는 아니고 조난과 표류 이야기이니 그리 희망찬 얘기는 아니다.


천우와 신조는 이복 남매로, 부유한 부모님과 살지만 집이 망해버리고 가족이 아끼던 요트 ‘천우신조호’마저 압류된다. 천우와 신조는 각각 큰아버지와 이모네로 가게 되는데, 아쉬운 천우는 ‘우리 요트 탈래!’하는 인스타 스토리를 남기며 요트를 정박한 마리나로 향하고, 신조 역시 숨을 쉬기 위해 마리나로 향한다. 천우의 스토리를 본 노아와 장진, 태호와 류가 마리나로 오고, 이들은 압류 딱지를 떼어네고 요트를 타고 항해에 나선다. 장난처럼 시작하여 광안대교를 지나는데, 오래 방치되어 상태가 좋지 않은 요트는 전원이 꺼지며 표류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보트에서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는데, 아이들은 안전하게 구조될 수 있을까?


출판사에서 중요한 스포를 하지 말아달라고 했기에, 중반 이후의 내용은 자세히 다룰 수 없을 것 같다. 대신 인물의 특징을 간단히 정리했다.


천우는 험난한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다. 부모의 재력에 플렉스를 자랑하기도 하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리더십이 있다. 위기 상황에서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중요한 순간에 큰 결정을 내리는 아이다. 여섯 아이들에게 천우는 제 이름처럼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지는 못한다. 마지막까지도.


신조는 아버지에게 요트 세일링을 배울 정도로 적극적이고 모험심이 강하다. 이복 오빠인 천우를 잘 따르지만, 그와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강하게 주장할 줄도 안다.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해결하려 노력하는 아이다. 이 책에서 가장 무겁고 큰 아픔을 지닐 아이이기도 하다.


노아는 천우의 절친으로, 차분하고 냉정한 아이다. 폭주기관차 같은 천우를 진정시키는, 신중하고 사려깊은 아이다. 모범생이지만 주변의 그 기대를 부담스러워한다. 마지막에 모든 짐을 짊어지는 모습은 마음이 아팠다.


장진은 다소 소극적으로 그려지는데, 자신이 필요한 때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나설 줄 아는 아이다. 어머니와 누나와 살고 있는 장진의 상황은 작품 내내 의문부호를 갖게 만든다. 


태호는 할머니와 사는 아이다. 부모님은 어릴 적 사고로 돌아가셨지만, 유기견을 돕고 키울 정도로 심성이 곱다.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력이 뛰어나다. 류는 신중하고 차분하지만, 강한 책임감과 의지가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살지만, 아빠에게 배운 요트 기술이 표류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다.


주인공인 여섯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부산에서 이들을 찾는 친구 고은과 천우, 신조의 부모님, 큰아버지와 이모, 그리고 아이들의 가족들과 태호의 강아지까지, 족히 20~3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각 인물들의 색깔이 분명하고 각자의 입장에서 아이들과 사건을 바라보는 과정이 섬세하다. 여섯 아이들의 실종, 표류는 사회적으로도 큰 사건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인물들의 사투가 무척 생생하게 그려진다.


여섯 아이들의 표류는, 청소년 시기에 대한 매우 강력한 은유를 담고 있다. 몸은 컸지만 마음은 미숙한 아이들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 앞에 표류하는 듯한 처지를 잘 보여준다. 최고의 요트를 가졌지만, 고장난 (어쩌면 고칠 줄 모르는) 요트에서 어른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천우신조 호를 스쳐간 여러 배(어른)들은 자신들의 일이 아니기에 가볍게 지나친다. 우리가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아이들처럼 말이다. 그 표류 뒤에 도착한 곳에서도 아무 도움 없이 아이들이 해결하고 이겨내어야 했는데, 바다와 파도, 자연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었고 희생 없이 손에 쥐는 것도 없었다. 너른 바다는 사고를 일으키며 피를 부르고, 그에 맞서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처지와 본모습을 찾기 시작한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인스타 식의 모습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가치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결말은 예상치 못했기에, 이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랜 여운에 시달릴 것이다.


매번 새로운 소재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가 풀어내는 요트 이야기가, 어린 동생들이 읽기에는 조금 어렵겠지만, 고학년이라면 도전해볼 만하다. 부산이 배경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부산 사투리를 진하게 사용하기에, 익숙치 않은 아이들도 있을 테지만 문어체를 따라 읽다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것이다.


2024.07.28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한 가제본을 읽고 작성한 자유로운 글입니다.


#라이프재킷 #이현 #창비 #청소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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