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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커 ㅣ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평점 :

셰이커 (이희영/래빗홀)
이 책은 서른 둘의 ‘나우’가 우연이 시간 여행자가 되는 이야기다. 과거로 돌아가, 현재에 미련이 남은, 아픈 그 과거를 돌이키려 한다. 참신한 소재, 독특한 방향, 잔잔한 감동과 깊은 의미. 그렇다. 이희영 작가의 책이다.
얼마 전에 이희영 작가의 신작 <페이스>를 읽었는데, 불과 2주일만에 더(?) 신작인 <셰이커>를 읽었다. ‘래빗홀’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작가의 신간으로, 흰 토끼가 안내하는 이야기의 굴 속으로 흠뻑 빠져들었다.
서른두 살의 ‘나우’는 ‘하제’에게 프러포즈를 준비 중이다. 오랜 만에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 그 얘기를 털어놓는데, 성진은 축하를 건네지만, 한민이 이런 말을 한다.
“다른 새끼도 아니고 그 자식이랑 가장 친했던 네가 그러면 안 되는 거…..”
사실 나우가 결혼하려는 하제는 나우의 절친 ‘이내’와 중학교 때부터 사귄 사이다. 그러나 수능을 100일 앞두고 이내가 사고로 죽었고, 그 뒤 나우와 하제, 그리고 친구들은 꽤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자, 이제부터 참신한 소재, 독특한 방향이 나올 때다. 나우가 우연히 검은 고양이를 발견하는데, 어릴 적 이내가 키웠던 고양이와 비슷하다. 그 고양이를 따라 우연히 들른 칵테일 바에서, 바텐더가 ‘셰이커’로 만들어 준 ‘블루 아이즈’ 칵테일을 마시는데, 열아홉 살로 돌아간다. 열아홉 살의 상황을 뒤늦게 깨달은 나우는 어쩔 줄 모르는데, 다시 찾은 칵테일 바에서 바텐더가 건넨 ‘그린 데이’를 마시며, 이번에는 열다섯 어린 시절로 돌아가 버린다.
이왕 과거로 온 김에, 나우는 절친인 이내도 살리고, 친구들에게 하제를 빼앗았다는 말을 듣기 싫어, 계획을 세운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원래 자신이 나가기로 했는데, 게임하느라 이내가 대신 나갔던 ‘하제’와의 첫만남을 가진다. 하지만 하제와의 첫만남은 어색할 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중간에 끼어든 이내와 하제는 손발이 착착 맞는다. 나우는 자신이 어떻게 하든 과거를 둘의 사이를 바꾸는 일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또다시 칵테일 바를 찾은 나우는 바텐더가 건네는 ‘옐로 튤립’으로 스무 살 적으로 돌아가고, 이미 이내가 죽은 그곳에서 하제를 만난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둘은 이내를 추억한다.
이내의 죽음에 미련이 남은 나우는 바텐더가 건네는 ‘피치 블랙’을 통해 열아홉 살, 이내가 죽기 전으로 돌아오는데, 이내의 사고를 막으려 이내 집에서 함께 밤을 보내기로 한 날, 나우는 이 모든 일의 진실을 알게 된다. 과연 나우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리고 나우와 하제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얼핏 보면 전형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그보다는 아픈 과거와 성장에 관해 말하는 작품이다. 살면서 나우와 하제가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은 둘의 절친이던 이내가 죽은 일이다. 그것은 가장 가슴아픈 일이지만 지금의 둘을 있게 한 동력이기도 했다. 가장 힘든 순간을 함께 하고 이겨내면서,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되어간다. 그것은 성진 역시 마찬가진데, 어른들의 반대와 친구들의 비아냥에도 힘든 시기를 보내며 유명한 웹소설 작가로 거듭난다.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뎠냐는 나우는 말에 성진은 이렇게 말한다.
“견디기는 뭘 견뎌. 그냥 산 거고, 그냥 쓴 거야…(중략)… 어른들이 그러잖아. 살면 다 살아진다고. 뒤돌아 볼 것도 없고 너무 멀리 내다볼 것도 없고, 그냥 지금 발끝만 보고 가면 어디라도 도착해 있는 거야. 결국 사는 건 다 위대한 일이야.”
상처와 훈장은 구분할 수 없다. 내가 겪은 수많은 상처가 내 삶의 훈장이기도 하다. 나무에 있는 수많은 옹이가 나무에게 일어났던 생채기임을 생각하면, 삶의 모든 고난과 상처는 영광이고 훈장이다. 그저 ‘살아낸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멈추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매일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어설프게 살아가는 어린 어른들에게 희망이 될 만한 책이다. 부끄러운 과거, 아팠던 기억이 우리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갈 것임을 알려주고, 우리가 살아내는 일 모두가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정말 힘들었던 과거의 나 자신과 화해하는 장을 만들어 준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바꾸기보다, 나우 자신이 가장 큰 위로를 받는다. 이미 일어난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지금의 내 마음은 위로받을 수 있다. 어설펐던 수많은 과거와 지금의 위안을 재료로, 스스로 바텐더가 되어 ‘셰이커’에 담아 섞어내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이다.
영어덜트를 위한 소설이다. 어렵지 않고 흥미로우며, 그러면서도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하리라 생각한다.
중학생 이상에게 추천한다.
2024.05.15
*이 글은 래빗홀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소중한 도서를 읽은 소감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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