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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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아사이 료 / 민경욱 역 / 리드비)


“안 본 눈 삽니다.”

온라인에서 유행하던 말이다. 그걸 보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인데, 어차피 그럴 수도 없지만,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는 그걸 다시 볼 수밖에 없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않을 자 누가 있는가.


“이 책을 읽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정욕>을 읽으며, 이 말이 실감났다. 타인과 행동, 질서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나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 내가 알았던 모든 세계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사피엔스>를 읽고 느꼈던 지적인 충격이, 문학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읽은 지 1주일쯤 지났지만, 서평을 쓰지 못하고 한참 걸렸던 이유이기도 하다.


<정욕> 두 번 읽었는데, 처음엔 쉽게 이해하기도, 공감하기도 어려웠다. 두 번째 읽고 나서야 책 속 한가운데에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논란의 중심에 설 것이 뻔하다. 그러기에 호평과 혹평을 넘나들며 문제작이 될 것도 자명하다. 내가 알고 있던 질서가 붕괴하고, 질서 밖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수와 소수,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무거운 돌로 우리를 묶어두는 세상과 마주할 것이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내가 알고 있던 질서의 붕괴”다.

이 책에서 핵심적인 인물은 사사키 요시미치, 모로하시 다이야, 기류 나쓰키, 고바세 정도지만, 이들을 파헤치고 알아가는 인물인 데라이 히로키, 간베 야에코, 기류 나쓰키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데라이 히로키는 직업이 검사인데, 또래 유튜버의 영향을 받아 학교를 거부하는 초등생 아들 다이키 때문에 걱정이 많다. 다이키는 유튜버로 활동하겠다며 또래 친구와 영상을 찍고 올리며, 시청자들의 요구에 응한다. 히로키는 사회의 주류로 살지 못하는 아들에 대해 걱정이 크지만, 아내 유미는 이해하려 노력한다.


간베 아예코는 학교에서 열리는 축제 다이버시티를 계획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룹 ‘스페이드’의 ‘모로하시 다이야’를 알게 된다. 잘생긴 그에게 호감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 아예코에게는,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히키코모리가 된 오빠가 있는데, 오빠가 여고생 영상을 본 것을 알게 된 후로 오빠를 멀리하고 역겨워하며 방에서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백화점 침구 코너에서 일하는 기류 나쓰키는 우연히 학교 동창을 만나, 동창회에 가면서 예전 서로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사키 요시미치를 만난다. 그와 사랑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둘을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부부가 아닌 연대의 의미이자 사회적 울타리 안에 들기 위해서다.


다이키의 유튜브가 갑자기 정지되고 댓글이 차단된다. 시청자들이 올리는 요청사항을 재미있게 해내는 아이들이 기특한데 이런 일이 벌어져 의아한 히로키는, 후배 검사를 통해서 댓글과 요청사항에 있는 의미를 알고 놀란다. 한편 아예코는 자신이 좋아하는 다이야가 여느 남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여성에 대한 호감이 없고, 잘생긴 외모에 멋진 몸매이지만 남에게 그 모습을 보이기 꺼려하는 것이다. 또한 나쓰키는 사사키와 지내면서,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과 연대하기로 한다.


여기까지 적당한 내용을 말했지만,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요한 내용을 빠뜨렸기 때문인데, 이 책의 인물들이 가진 성적 지향이 매우 독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지향이 아니라, 그들의 지향점이 분출되는 물줄기, 물풍선이 폭발하는 모습,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지향이 이미 책의 초반에 기사화되어 등장하는데, 주택가 공원에서 모여든 아이들에게 다양한 도구를 주고 놀아주는 자원봉사자들 그룹인 ‘파티’가 사실은 아동성애자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물대포와 물풍선으로 놀아주고 사진을 찍었을 뿐이다. 아이들과 부모들에게는 좋은 청년들인데, 그 이면에는 물에 젖은 아이들 사진과 영상을 소장하려는 목적이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매우 역겹고 추악해 보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입장을 이해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야기의 흐름상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도 마냥 평범하지만은 않다. 오빠의 성적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감을 가진 아예코는 스페이드 그룹의 남성들의 젖은 셔츠를 입고 상반신이 훤히 비치는 모습의 사진을 계속 찾아본다. 나쓰키의 백화점 동료는 자신의 사생활을 이야기하면서 묘한 쾌감을 느낀다. 히로키 역시 아내의 눈물에 묘한 감정이 생긴다. 그 외에도 구토, 삼킴, 석화와 동결, 부풀리기, 묶기, 유혈, 진공 등 수많은 지향이 나오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지향은 과연 올바른가, 올바른 욕망(正欲)인가 생각한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다면,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신만의 지향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생식에 관여하는 지향만을 정상으로 취급하는 사회에서, 그 지점을 벗어난 욕망은 그릇된 것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그것이 사회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 한, 그들의 지향을 인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


“애초부터 아무도 판단할 수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탐구하는 방향. 언제나 누구 든 누군가의 '성적인 것' 속에서 살아간다는 전제 아래 나아가는 방향.”(320)


하지만 위의 내용처럼, 내가 누군가의 지향점이 된다면, 그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다이키가 시청자들의 요청으로 수영복을 입고 물풍선 놀이를 하며, 전기고문 벌칙을 하는, 그저 아이들의 놀이가 누군가에게는 성적지향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용인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기서 우리의 모순이 드러난다. 우리가 가진 욕망, 지향은 정욕이지만, 우리와 다른 남들이 지닌 욕망은 오욕일까? 아예코는 여고생을 좋아하는 오빠의 취향에 혐오를 품으면서도, 스페이드 남자들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사진이 올라오길 기다린다. 이 부분을 읽으며 무엇이 정욕이고 오욕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인간은, 스스로 만든 상상의 질서를 통해 사회를 견고하게 유지한다. 사회 질서와 도덕, 윤리와 규범, 법 모두가 상상의 질서이며, 우리는 그것을 옳다고 ‘믿음’으로써 상상의 질서는 실재가 된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다양성을 억압할 수밖에 없고 체계와 틀, 질서 안에 사람의 취향을 욱여넣어야 한다. 게다가 지금처럼 개인 간의 다양성과 이만큼의 통신이 가능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자신이 가진 그 지향이 우주에서 유일한, 독특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고, 그 자체를 죄악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세계가 구축되면서, 독특하고 유일한 이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다양성이 존중받으며, 그들이 연대하기 시작했다. 양지로 올라오며, 그것이 유일하지 않으며, 어쩌면 인구수만큼의 지향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상상의 질서는 깨기 힘들고, 가상의 실재도 분명 실재이기에, 우리는 다른 지향을 거부할 것이 뻔하고, 그렇기에 이 책은 논란이 될 것이 자명하다. 혹평이 이어질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논쟁을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지향이 ‘정욕’인 것은 우리가 그저 다수이고 주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후에, 자신의 정욕에 안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오욕을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길 바란다.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품어서는 안 될 감정은 이 세상에 없다. 게다가 우리가 다른 지향을 거부하든 거부하지 않든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저쪽을 받아들인다는 입장에서 오는 우월감일 뿐이다. 방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을 읽은 후,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유튜브, SNS에서 늘보는 시청자의 요구, 라이브 방송에서의 기부와 요청사항을, 이제는 웃고 보기 힘들 것 같다. 평범한 요구 안에 누군가의 욕망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니 등골이 서늘해진다. 어쩌면 이미 그런 세상에서 살아왔을 테지만, 그 세상을 인지한 후에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상상의 질서를 깨닫고 나가고자 해도, 우리는 늘 그 질서 안에 있는 것처럼, 내가 알던 세상은 이미 사라졌다.


이 책을 읽은 후유증이 한동안 클 것 같다.


이 책을 모든 이들에게 추천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이 우리가 가진 편견을 깨부수고, 알고 있던 세상의 틀을 바꾸며, 오만함을 깨뜨리리라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은, 소양이 깊은 어른들에게 추천한다.


2024.04.20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서평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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