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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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국에서의 일년>(이창래)


이 책은 모든 면에서 평범하고 단조로운 남자인 스무 살 틸러 바드먼 이야기다. 대학 2학년인 그는 던바에 있는 집에서 여름을 보내다, 알바로 캐디를 하던 중 ‘퐁’이라 중국인을 만나고, 틸러의 삶은 하루아침에 완전히 바뀐다. 그 후 틸러에게 일어날 일은 너무나 믿기지 않을 정도로 터무니 없다. 그래서 빠져든다.


이 책에는 세 개의 줄거리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Pong과 함께 하며, 타국에서 겪은 일을 다루는 부분이다. 다른 하나는 밸이라는 이름의 나이든 여성과 그녀의 비만인 8세 아들 빅터 주니어와 함께 지내는 이야기다. 밸과 빅터 주니어는 그녀의 남편이 저지른 일로 FBI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밸과 함께 집에서 빅터 주니어를 키우는 이야기가 큰 부분인데, 이 책은 후자부터 시작하며, 두 이야기가 자주 교차한다.


또 다른 큰 줄기는 당시 다섯 살이던 퐁이, 자신의 부모를 회상하며, 1966년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이야기가나온다. 문화대혁명 때 일어난 수많은 폭력, 타락, 사회적 격변을 다루는데, 이 부분이 퐁의 입장으로 전개되어 독특한 재미를 준다.


틸러는 단조로운 청년이다. 아버지의 영향도 있는 것 같은데, 타국으로 1년을 떠나고 돌아올 때, 서로가 남기는 것은 우스운 이모티콘이 전부일 정도로, 둘은 단조로운 삶을 산다. 게다가 틸러는 자신에 대해서 큰 야망도 가능성도 보지 못한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중이다.


틸러는 퐁을 만나고 많이 변화한다.. 퐁은 모든 사람을 알고 친구로 지내는,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다. 굉장히 수완이 좋은 인물이지만, 그는 골프 캐디로 알바하던 틸러를 초대하여 자신의 여정에 함께 하도록 한다. 퐁은 틸러가 가진 무언가를 보았던 것일 테다. 틸러 역시 아버지와 달리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을 만나, 그 동안 채우지 못했던 갈망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퐁이 요청하는 모든 일에 투신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틸러는 그렇게 충동적으로 퐁과의 여정에 함께한다.


틸러가 여행하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틸러 자신은 보지 못한 무언가를 틸러에게 발견한다. 수많은 이들이 틸러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데, 그 두렵고도 신나는 일을 통해 틸러는 자신을 보는 방식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노래에 훌륭한 보컬 재능이 있는 걸 깨닫고, 맛에 관한 예민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결국 그가 아시아에서 보낸 시간은, 그저 타국에서 보낸 해외여행이 아니라, 일종의 귀향이기도 했고, 자신의 본질, 정체성을 착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타국에서 보낸 1년의 과정은, 읽기에 좀 거북하기도 했고 혼란스럽기도 했다. 건강음료를 만들기 위해 퐁을 드럼을 만나고, 그의 딸 콘스턴스도 만나는데, 퐁과 틸러는 그곳의 VIP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퐁이 떠나고 퐁과 럭키가 드럼에게 수은을 넣은 건강음료를 건넨 사실과 그의 사기가 밝혀진 후, 틸러는 장난감 소공자 신세가 된다. 틸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틸러는 콘스턴스의 성노예로 전락한 채 살아간다. 퐁이 잡혀오고, 퐁이 죽은 뒤 틸러는 우연한 계기로 그곳을 탈출한다. 


틸러가 해외에서 보낸 1년은, 그전에 평생 살아온 것과 다르게, 틸러 자신을 새롭게 규정짓는다.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고통스러운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는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그 과정, 그 1년은 그의 말대로 비참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타국에서 보낸 1년의 비참한 여정이, 틸러 삶의 비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틸러가 크게 변한 건 없지만, 올바른 선택과 결정을 내리고, 주변 사람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었다. 다소 무능하고 회색인간 같던 틸러가, 자신의 색채를 찾게 된 것은, 비참한 여정 때문이기도 했다.


틸러가 퐁을 만나면서 성장하는 과정과 여정을 보는 재미가 있고, 책 중반의 퐁이 들려주는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야기도 무척 인상깊다. 사실 이 부분이 없었다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었을지는 의문이다.


이 작품을 재미있다고 추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독서에 취미가 있고, 문학적 깊이와 서술적 특징,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보여주는 틸러의 경험과 그 변화, 그 속에서 의미를 찾을 만한 소양이 있는 사람에게만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11월 중순부터 12월 초까지 오래 붙잡고 읽은 책이다. 유쾌한 독서는 아니었지만 깊이 있는 작품의 한 귀퉁이를 조금 이해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내년에 다시 재독해야 하리라.


20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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