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소녀
마쓰자키 유리 지음, 장재희 옮김 / 빈페이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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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소녀>(마쓰자키 유리 / 장재희 역 / 빈페이지)


독특한 SF작품을 소개한다. SF면서 생명, 환경, 인간관계를 다루는 작품. 그리고 책에 수록된 모든 이야기가 여성의 서사로 진행되며,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어쩌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이야기. 바로 <슈뢰딩거의 소녀>다.


1. 65세에 반드시 죽음을 맞는 세계 <예순다섯 데스>

2. 수학 사용을 금지하는 왕국 <이세계 수학>

3. 꽁치가 자취를 감춘 미래 <꽁치는 가, 짠가>

4. 오징어 게임 ‘비판편’, 건강 지상주의 사회 <살 좀 찌면 안 되나요>

5. Z 바이러스로 팬데믹이 일어난 대도시,그리고 양자 자살<슈뢰딩거의 소녀>

6. 나무 하나 당 사람 하나 <펜로즈의 처녀>


이 책 속에 총 여섯 편의 작품이 있는데, 각각 색깔이 분명하다. 소재가 완전 다르지만, ‘미래’와 ‘소녀’라는 점은 모든 작품의 공통점이다. 독자의 대상도 비교적 명확한데, 청소년, 영어덜트가 대상이 아닌가 싶다. 근미래의 사회상을 주재료로 하여, 그 속에 현실에 발담군 우리가 겪는 문제를 소스로 버무린 작품이다. 하나하나가 개성있고 독특하다.


몇몇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큼의 재미와 서사, 사회 비판을 담고 있다. 게다가 매우 어려운 과학을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또 적당한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하기에, 깊이 파고들자면 얼만든지 얘기할 거리가 있는, 상당히 유연한 작품이다.


여섯 가지 이야기 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간단히 소개해 본다.


[예순다섯 데스]

-65세에 죽음을 맞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단편이다. 인구 과잉으로 자원 부족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세계는 인구 조절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은 65세까지만 살게끔 하는 방식이다. 특정한 병원균을 통해 모든 사람의 DNA의 텔로미어를 조정하여, 65세 전후로 사망케 하는 방식이다. 64세의 무라사키는 죽음을 앞두고 심리적 문제를 겪는 이들을 도와주는 불법 치료사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릴 적 만든 65리스트를 거의 다 이루었는데, 그때 만난 소매치기 소녀 사쿠라를 양녀로 받아들이면서 여러 사건에 휘말린다.-


이 단편은 설정이 무척 좋다. 예순다섯 생일에서 8개월 안으로 사망하는데, 비교적 짧은 생에서 해야 할 리스트를 정하고, 그안에 해내지 못하는 불안감을 잠재울 테라피스트를 찾는다는 설정. 유한한 삶을 살아야 하는 모두가 겪는 그 불안감은 과학이 고도로 발달해도 변치않을 것 같다. 65세에 세상을 떠나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을 전수하는 무라사키와 사쿠라의 활약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다. 넷플릭스 단편 애니로 제작되면 재미있을 것 같다.



[이세계 수학]

-수학 쪽지시험에서 3점은 받은 에미.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같은 반 남자애 다니야마가 신경 쓰인다. 수학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외침에, 갑자기 어딘가로 순간이동을 한다. 이곳은 어디인가? 마침 만난 농부들이 낸 수학문제를 맞힌 에미는 수학 공식을 알고 있기에 ‘개방파’로 몰려 사형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세계에서는 수학을 배우면 사형을 당한다니. 이때 위기에서 에미를 구해준 것은 다니야마를 닯은 쿠르트. 소피와 파울도 만나는데, 그들은 에미가 온 세계에서 모두가 수학을 배운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 이세계에서 수학은 왕의 권력인데, 고작 9살인 왕이 이세계의 수학을 혼자서 해낸다. 왕은 어떻게 혼자 수학을 해내고 있는 걸까? 에미는 이들을 통해 수학의 재미가 어디에서 오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쿠르트와 소피, 파울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만약 점수로 평가받지 않았다면, 나와 수학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134)


수학 점수가 낮아서 이세계로 갔던 에미. 수학이 좋아도 점수로 평가받는 지금 시대를 재치있게 비판한다. 이 단편은 중고등학생들에게 소개할 만한 작품이다.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수학을 그토록 재미없게 가르치는 수많은 학교, 학원 교사들, 그리고 현행 교육 제도 때문이다. 수학을 답을 찾는 학문으로만 여기고, 그 과정과 답을 맞혔는지를 보는 시험 제도가 아니라, 문제를 이해하고 탐구하는 과정, 답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가는 그 과정이 중요한데, 우리 교육은 그것을 간과한다.


“문제를 진득하고 끈질기게 생각하는 능력, 그게 진정한 소질이야.”(155)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이 단편을 읽는다면, 공부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SF 단편을 통해서 말이다.



[꽁치는 쓴가, 짠가]

-화자인 지하루가 사는 시대는 AI가 발달하여 사람의 화장을 대체하고, 촉각과 후각, 미각도 공유 가능한 시대다. 지하루는 방학 숙제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꽁치’에 관심을 갖는다. 할머니의 추억과 꽁치 전문가와의 통화, 숯 전문가와 통화를 하면서, 이제는 잊힌 50년 전의 꽁치 구이를 3D 푸드 프린터로 재현해 낸다.-


미래가 이런 모습이라면, 좀 살만한 것 같다. 감히 유토피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원한다면 누구와 연락할 수 있고, 나이대에 따라 어떤 정보에도 접근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개성에 맞는 삶을 살 수도, 그리고 옛것을 보존하거나 추억을 회생하고, 사라진 문화를 복원하는 일도 가능하다. 작가가 그려내는 미래가 어둡지 않아서 반갑다.



[살 좀 찌면 안 되나요]

-뚱뚱하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잘린, 고도비만녀. 일명 ‘리바운드’는 BMI 41을 자랑한다. 그녀는 정부에서 보낸 메일을 받고, ‘다이어트왕 결정전 제1대회’에 강제로 참가한다. 그곳은 고도비만인 다섯을 모아 음식과 트라우마로 유혹을 하고, 음식을 입에 대면 죽는, 마지막 남은 1인에게는 다이어트 시술과 5억엔을 주는 대회. 대단한 셰프와 먹방유튜버 등이 등장해서 이들을 유혹한다. 이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살 좀 찌면 안 되나요>는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오징어 게임의 비만 버전인데 우스꽝스러운 설정과 전개 속에 작가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비만은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지만,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 위험 때문에 차별받고 소외되고 놀림감이 되는 문제를 지적한다. 역사가 가장 풍족한 시대를 살고, 진정으로 배고팠던 시절이 없는 현재를 살면서도, 그 풍족함을 즐기지 못하는 뚱보 유전자를 가진 우리 모두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표제이기도 한 <슈뢰딩거의 소녀>는 좀 어려웠다. 양자역학을 활용하여, ‘양자 자살’을 다루고 있는데, 그 속에서 수많은 우주에 관한 이야기와 얽히면서, 뼛속까지 문과인 내가 한 번에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이 부분만큼은 다시 읽어야 하리라.


아, <펜로즈의 처녀>는 환경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대단한 수작이다. 나무 한 그루에 한 사람의 처녀를 공양해야 한다는 설정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너무나 깊이 있게 다룬다.


SF면서도 현재에 우리가 겪는 수많은 문제를 색다른 색채로 그려내는 작품이다. 거를 타선이 없는 매우 훌륭한 작품으로 SF를 처음 접하는 청소년 이상의 독자에게 적극 권장할 만한 작품이다. 거기에 과학과 수학 지식이 있다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그런 기반이 없더라도 충분히 흥미롭기에, 서점 서가를 지나다 이 책을 만난다면, 반가운 마음으로 책과 손잡길 바란다.


202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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