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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ㅣ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2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켄 리우 / 황금가지)
켄 리우의 새로운 단편집이 나온다는 소식에 반가워했다. 너무나 <종이동물원>에서는 SF가 우리 사회 문제에 어떻게 녹아들 수 있으며, 인간의 관계와 감정을 새롭게 풀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동안의 SF가 공간적 배경의 확장을 다루었다면, <종이동물원>은 정서적 배경의 확장을 나타낸 것 같았다.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는 시간적 배경을 확장한다. (물론 이 책의 단편들은 <종이동물원>보다 이전의 작품들로 보인다.) 작가는 이 책에서 SF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그 시간을 과거로까지 확장한다.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이 아니라, 과거 그 자체를 SF로 보여준다. 대체역사 혹은 스팀펑크 같기도 한데, 저자는 여기에 실크펑크라는 장르로 명명한다. 과거 역사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다루는데, 그 속에 SF 요소를 담아낸 점이 독특하다.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는 2010년에서 2015년까지 켄 리우의 작품을 엮은 책이다. 작가가 엮은 책이 아닌 옮긴이가 엮은 단편집임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볼 것은 단편집 속에 있는 연작이다. 2014년에 쓴 작품으로,<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 <신들은 순순히 죽지 않을 것이다>, <신들은 헛되지 않지 않았다> 세 편의 포스트 휴먼 3부작이다. 이 책의 제목도 이 연작을 바탕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연작으로 이어지는 이 단편은 여자 아이 ‘메디’의 이야기다. 로고리즘스의 직원이었던 아빠가 죽자 회사에서는 메디의 아빠를 인공지능으로 만들어, 서버에 넣는다. 그가 가진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정작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도 없고, 그의 창의성과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포스트 휴먼이 된 아빠의 이야기를 다룬다.
인공지능이 된 아빠와 메디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SF문학에서 훌륭한 이정표가 될 장면이다. 메디의 아빠처럼 된 이들이 더러 있는데,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신’은 바로 이런 이들을 가리킨다. 포스트 휴먼, 혹은 신.
이들이 벌이는 게임과 문제점이 드러나고, 포스트 휴먼을 막으려는 이들과 살아남으려는 신들 사이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진진하고, 딸 메디의 입장에서 풀어가는 서사가 매력있다.

이 단편집의 몇몇 작품은 한국사와 관련이 있어서 흥미롭다. 임진왜란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북두’는 왜국의 침략에 명의 도움을 구하러 온 조선의 보병 장교 담원사의 이야기로, 이순신 장군과 명나라 장군 이여송 등, 익숙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와 반가웠다. 적을 해칠 위대한 무기를 발명했음에도, 그 자료를 폐기하라는 명령을 내린 황제 만력제의 인품에 고개가 숙여졌고, 과학을 대하는 방식이 도덕적이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우수리 불곰>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우수리 불곰을 잡는 모습을 통해서 역사적 사건이 개인적 아픔과 연결되며, 그 속에서 보여주는 공상과학적인 모습을 통해 대체역사물이 아니라도 SF가 역사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그 길을 보여주는 것 같아 놀라웠다.
이 외에도 무인 드론 조종사로서 겪는 트라우마를 보여주는 <루프 속에서>, 머나먼 우주에서 출발한 중성미자가 뇌의 한 부분을 건드리며 생겨나는 문제를 하루는 <1비트짜리 오류>, 비행선으로 물류를 옮기는 장거리를 이동하는 부부를 통해 중국 여성 문제를 다루는 <장거리 화물 비행선>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특히 <장거리 화물 비행선>은 그 주제 면에서 <종이동물원>과 맞닿아 있었다.
켄 리우의 최근 작품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저자의 단편을 모았는데, 출판사와 역자가 그 내용과 방향에 매우 깊이 신경 쓴 점이 눈에 보였다. 또한 굳이 SF라는 타이틀이 없어도,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읽어나가는 그 자체로 흥미 있는 작품이다.
나는 켄 리우는 아직 그의 작품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작가로서의 위대한 걸음의 시작이라 생각하며, 발전하고 변화하는 현대 과학과 사회의 모습에 발맞추어, 작가는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작품을 더 내놓으리라 생각한다.
중국 출신의 미국인 작가이기에, 중국과 한국, 주변 아시아 국가에 대한 애정, 과거를 기반으로 한 평화로운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을 기대해 본다.
2023.03.05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로 작성한 자유로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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