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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니를 찾아서
엘렌 오 지음, 천미나 옮김 / 길벗스쿨 / 2023년 2월
평점 :

<김주니를 찾아서> (엘렌 오 저/ 천미나 역)
인간이 자신의 뇌를 외부에 저장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오랜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문자로 기록되기 전의 경험과 역사는 추억과 기억으로 남아 전설과 신화로 자리잡았다. 퇴색된 사실은 사실의 폐부를 찌르기도 하지만, 그 농도를 옅게 만들기도 한다. 가공과 변질은 사실의 빛과 그림자이지만, 그 나름의 목적과 의미가 남으므로, 그래서 역사는 기록되어야 하고 경험은 추억으로 남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로서의 한국전쟁의 경험과 역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20~30년 후에는 한국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만 남을 것이고, 그 경험과 역사는 전설과 신화로 남을까 두렵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가 끝났어도 분단과 아픔은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성세대인 어른들과 청소년, 아이들에게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과 경험, 역사를 알려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굳건하게 살아가는 뿌리가 그곳에 있고, 그 경험의 가치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살아갈 길을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을 제대로 보여주는 아동, 청소년 문학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전쟁으로 인한 고통의 편린을 다루거나, 개인의 영역으로 국한하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경험은 결국 사회 전체의 경험 속에 녹아 있을 테지만, 당시의 대립과 혼란, 사회상을 고스란히 드러내지 못한다면, 당시의 이념대립과 혼란이 그저 개인적 경험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완서와 권정생의 몇몇 작품은 아이들에게 한국전쟁을 소설로 들려주기에 참 적합한 작품이지만, 그 작품을 넘어설 이야기가 부족한 점은 늘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읽은 <김주니를 찾아서>는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과 아픔, 역사를 고스란히 들려줄 수 있는 책이어서 기뻤다. 물론 이 작품이 전쟁의 아픔보다 더 큰 범주의 ‘혐오’를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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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책을 전쟁의 아픔 이야기로만 끝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전쟁의 아픔 이야기를 혐오라는 액자에 넣어 풀어낸다. 초반에 김주니가 학교에서 당하는 인종 차별을 통해서, 이 모든 문제가 서로에 대한 편견, 막연한 관념, 즉 ‘혐오’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린다. 김주니와 다채로운 피부색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는 차별과 그들의 인종주의적인 표현이 나오고, 그 잘못을 알리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김주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한국전쟁 이야기를 듣는다.
할아버지 도하가 고향 서산에서 겪은 한국전쟁은, 박완서의 작품과 닮았다. 명망 있는 의사 아버지를 둔 도하는 자기 고향에서 벌어지는 이념 문제와 공산당의 남침으로 분열되는 사람들의 모습, 그로 인해 끔찍한 살육이 벌어지는 현장을 목격한다. 그저 그곳에서 살아왔을 뿐인데 이념이 갈라놓은 사회가 우리를 어떻게 갈라놓았는지를 매우 깊이 있게 다룬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리게 될 장면이 너무나 많다. 할아버지 도하는 자신의 안전보다는 친구를 택하기도 하는데, 도하의 아버지는 안전을 택해도 원망하지 않았을 거라면서 아들의 선택을 지지해준다.
할아버지가 겪은 이야기를 통해 주니는 이념과 갈등 저변에 깔린 혐오가 얼마나 큰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와 같은 경험에도 사람을 비난하기보다는 갈등과 혐오를 비난하는 할아버지를 통해서, 우리가 비난해야 할 것 역시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또한 할아버지의 선택을 통해서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다.
할아버지를 통해서 알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주니는 용기를 내어 친구들과 목소리를 내려 노력한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서 할머니가 힘겨워하자, 녹화해둔 할아버지의 영상으로 할머니에게 그 마음을 전한다. 할머니는 주니의 과제를 위해, 그리고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한국전쟁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천에 살던 할머니 진주는 쳐들어온 공산당 때문에 친구끼리 흩어지고 가족이 붕괴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공산당에 의해 감옥에 갇혀 서울로 간 아버지를 찾아 엄마는 떠나고, 남겨둔 돈과 음식을 갖고 떠난 식모로 인해, 진주 4남매는 똘똘뭉쳐 어려움을 버텨낸다. 좋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힘겨운 여정을 거쳐 부모님을 만나는 장면 내내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고, 그 여정에 함께 한 독자의 마지막은 터질듯한 감동과 뜨거운 눈물이 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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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2월에 가장 기대가 컸던 아동문학이 <김주니를 찾아서>다. 여러 수식어가 따르겠지만, 역사를 이야기로 어떻게 풀어내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점차 잊혀지는 한국전쟁 당시의 아픔과 이산가족, 이념대립과 혐오 범죄를 아우르며, 결국 우리가 도달해야 할 여정의 끝은 혐오가 아니라 그 상처를 인정하고 아픔을 이해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한국전쟁이란 역사적 뿌리 위에서 발전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 뿌리는 상처 투성이고 여전히 아프지만, 굳건하게 땅 속에 뿌리내렸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잊지 않되, 이제는 서로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공통점을 찾고 이해해야 한다. 진부하지만 옳다.
<김주니를 찾아서>를 이야기로 읽겠지만 분명 사실이며 역사다. 우리 아이들이 조부모님께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읽으며,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안목과 품을 갖길 바란다.
이 책은 글밥이 많지만, 천미나 역자의 훌륭한 번역으로, 전혀 외국 소설이라 느껴지지 않기에, 초등 중학년 이상부터 모든 청소년, 그리고 어른들까지 두루 읽어야 할 소설이다. 단 한 페이지도 지루하지 않으며, 전쟁, 차별, 혐오, 그 역사까지 두루 이해하고 나눌 만한 작품이다.
읽는 내내 아팠고 힘겨웠으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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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책을 제공해주신 ‘길벗스쿨’ 출판사에 감사하며, 주관적 견해를 밝힌 글임을 밝힌다.
20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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