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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이 뿔났다
지승룡 지음 / 하움출판사 / 2022년 11월
평점 :

조선시대 선비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문방사우였다고 하지요. 먹, 종이, 붓, 벼루가 있어야만, 선비다울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여성에게는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여성에게 꼭 필요한 것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는 <규중칠우쟁론기>라는 작품입니다. <아씨 방 일곱 동무>라는 동화책으로도 각색된 이 작품은, 자, 가위, 바늘, 실, 골무, 인두, 다리미를 의인화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칠우를 다루는 규중 부인도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현대사회, 우리 가정에서의 칠우, 혹은 팔우는 누구쯤 될까요? 그런 생각을 담아 만든 작품이 바로 <가전제품이 뿔났다>입니다.

아주 깊은 밤, 거실에 있던 텔레비전을 시작으로 해서,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컴퓨터, 에어컨, 스마트폰, 이렇게 일곱 가전제품이 서로의 능력을 자랑합니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자랑하는데, 주인 아줌마가 나와서는 어차피 전원을 켜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말하지요. 가전제품들은 자신들을 우습게 봤다고 화를 내지만, 그 때 등장한 또 하나의 제품은 무엇일까요? 궁금하죠?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보면서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글과 그림이 재미있습니다. 대화글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말하듯 풀어가는 문장이 좋고, 눈에 보이는 듯 현실감 있게 표현한 점도 좋습니다.
“이집 식구들은 매일 나만 바라보고 산다고.”(텔레비전)
“안 먹고 살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냉장고)
“나 없으면 다들 외출도 못 한다고.”(세탁기)
“청소를 깨끗이 해야 건강을 챙기지.”(청소기)
“지금은 정보화 시대야.”(컴퓨터)
“매일 계속된 올여름 열대야를 나 없이 견뎠겠냐고.”(에어컨)
“나 부들고 있는 거 보셨수 못 보셨수?”(휴대폰)
그림도 재미있습니다. 두 팔 벌려 항의하고, 팔짱을 낀 채 우리를 바라보는 가전제품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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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 편리해졌습니다. 세탁기 덕분에 주부들에게 가장 고된 일이었던 (이제 먼 옛날 속의 일) 빨래가 대폭 줄었고, 냉장고 덕분에 음식을 저장하고 보관이 용이해졌습니다. 다른 전자제품에 대해서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지요.
하지만 편리한 만큼 사라져버린 것도 많고, 문제가 많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냉장고가 생기면서 남은 음식을 이웃과 나누던 아름다운 문화가 사라졌고 빨래터가 사라지면서 이웃과 친해지기 어려워졌습니다. 세탁기와 식기세척기가 생겼다고 주부들의 일거리가 줄어든 것도 아니지요. 게다가 스마트폰으로 인해 관계는 넓어졌지만 깊이는 얕아졌습니다. 우리와 타인의 관계가 스마트폰의 두께만큼이나 얇아졌습니다. 이런 제품 덕에 지구는 더 온난해졌습니다.
규방에서의 일곱 동무들이 여성들의 좋은 친구였고, 문방사우가 선비들의 벗이었다면, 우리 주변의 가전제품들은 우리에게 벗일까요, 적일까요? 우리 곁의 가전 동무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지요.

가전제품들의 쓴소리를 듣기 전에, 우리가 가전제품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추천하며, 그 아래 동생들은 부모님과 함께 번갈아 읽거나, 역할을 맡아 구연해도 재미있겠습니다.
2022.12.14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소중한 도서로 작성한 솔직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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