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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멧돼지 ㅣ 꿈터 그림책 7
이서연 지음 / 꿈터 / 2022년 9월
평점 :
배고픈 멧돼지(글/그림 이서연)

1.사랑스러운 그림이다.
이 그림책의 그림은 물감이 종이에 흠뻑 젖은 듯해 포근하다. 물감이 종이를 참 사랑해야만, 종이에게 흠뻑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때 나올 만한 그림이다. 그림에서 자연은 인상을 잘 나타내며, 인물의 모습은 세밀하다. 자연은 멀리서 보는 듯하지만, 사람은 가까이서 보는 듯하다.

우리는 늘 곁에 있는 우리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지만, 정작 곁에 있는 자연은 멀리서 보는 듯하다. 작가의 그런 의도가 숨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포근하며 따스한 자연과 세밀하고 뚜렷한 사람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잘 어울린다.
영유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과 글이 좋다. 흉내내는 말, 특히 소리 흉냇말과 동작 흉냇말을 골고루 활용하면서, 읽기도 재미있고 생생한 표현도 살아 있다. 아이들이 흉내내는 말을 통해서 표현력을 기르기에 아주 좋다. 덩달아 부모님이 읽어주는 재미도 있다. “꼬르륵~ 꼬르륵!” 아마도 꼬르륵은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을 웃게 할 마법의 주문이 될 듯하다.

그림에 짜임새가 있고 앞의 그림과 뒤의 그림을 견주어 보면서 무엇이 변하고 달라졌는지 알기 쉽게 되어 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동물들이 후반에서 감자를 맛있게 먹는 장면은 여러 번 되돌아 읽어도 계속 재미있고 흐뭇하다. 숲에서 잔치를 한다면 딱 저 모습일 것이다.
또한 그림으로 묘사한 장면들이 재미있다. 투박해 보이지만 섬세하며, 상황을 매우 깊이 묘사한다. 괴물의 실루엣이 보이는 장면에서는 두근두근하고, 방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할 때는 놀라지만, 아궁이에 끼인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꾀죄죄한 멧돼지의 모습은 처연하여 재미있다.

배고픈 멧돼지 말고도, 배고픈 숲속 동물들과 모두 함께 감자를 나눠 먹는 마지막 장면은 가슴이 따뜻해진다. 두런두런 모여 앉아 감자를 먹으며 무슨 말을 나누고 어떤 생각을 할지 이야기를 나눠도 재미있겠다.
2.정말 아름다운 내용이다.
산골 마을에 사는 미호와 미소. 부모님이 일 나간 사이, 작은 방안에 단 둘이서 감자를 먹는데 낯선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려고 한다. 부지깽이로 찌른다. 멧돼지는 놀라고 화가 나서 문을 열려고 하지만 열리지 않자 부엌 아궁이로 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끼어버린다. 두 자매는 끼어버린 멧돼지를 구해주고, 꾀죄자하고 배고픈 멧돼지에게 감자를 건넨다. 때마침 찾아온 배고픈 숲속 동물들에게 감자를 대접한다.

감자는 땅에서 났다. 모두가 함께 먹을 만큼 넉넉하고, 게다가 가을이잖은가? 먹을 게 넉넉한 이 시기에, 숲속 동물들 배에선 모두 꼬르륵 소리가 난다. 먹거리가 사람에게만 있었나 보다. 자연과 숲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그 열매는 사람만 누렸나 보다.
배고픈 수많은 생명을 대신해 멧돼지가 방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배가 고프다고, 좀 나눠 먹자고 말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방문은 닫혀 있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감자 냄새는 그렇게 풍겼으면서 말이다. 온 숲에.
단둘이 문을 닫고 작은 방에 있을 때, 미호와 미소에게 멧돼지는 ‘괴물’이었다.
문을 열고 끼어버린 멧돼지를 구한 후 마주했을 때 ‘배고픈 멧돼지’였다.
문을 닫고 보면 제대로 볼 수 없다. 문을 닫고 귀를 닫고 눈을 감은 채 바라보면, 그 누구라도 괴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마음의 눈을 뜨고 바라본다면, 또 모두가 친구다.

문을 열고 제대로 보았을 때, 비로소배고픈 한 마리의 멧돼지가 서 있고, 꾀죄죄하고 서글퍼 보인다.
요즘은 영유아 때부터 스마트폰을 보고 영상에 길들여진다. 엄마 품에서 차분하게 읽는 그림책, 그림 하나하나를 손으로 꾹꾹 짚어가며 보고 읽는 맛을 느끼기도 전에 핸드폰을 잡는다. 그림 하나의 소중함을 잃고, 손쉽게 접하는 자극적인 영상에, 우리 아이들의 마음도 자극적인 화면에만 길들여질까 두렵다.
하.지.만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있지만, 우리가 보고 듣는 핸드폰 속 세상은
창호지에 살짝 뚫어놓은 구멍일 뿐
대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마음을 열고 바라볼 때라야만
대상을 제대로 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우리가 문을 닫고, 우리끼리만의 세상에서 맛난 감자를 먹는 사이
방문 넘어에서는 배를 곯고 고통을 앓고 희망을 잃는다.
우리가 작은 창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이
빙하가 녹고
북극곰은 길을 헤매며
수많은 야생동물이 사라져간다.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처럼 작은 창의 세상에서만 살지 않길 바란다.
문을 열고 나와 세상과 마주하며
곯고, 앓고, 잃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면 좋겠다.
녹고, 헤매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사랑하면서 지켜주면 좋겠다.
어쩌면 그보다 먼저
우리가 가진 감자나 조금 나눠 먹도록 하자.
(본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산골 마을 작은 집에 미호와 미소가 살아.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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