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 (양장)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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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이야기의 주인공은 정인이다. 정인이는 인정이 많다. 정인이의 인정은 여유 있는 사람들의 인정이아니다. 가지지 못한 자가 할 수 있는 인정이다. 고마워하고 감사하며,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인정이다. 조손가정의 아이인 정인이는 부모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폐지를 주워 팔아야 하는 집안의 사정을 이해한다. 햄버거 가게에서 해야 하는 알바를 선택하고,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할 상황도 이해한다. 정인이는 인정이많다.

그런 정인이에게 검은 고양이가 다가온다. ‘만약에’를 말하면서 원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 이뤄주겠다고 유혹한다. 그것은 마치 예수를 유혹했던 악마의 달콤한 유혹이었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정직하지만 교묘하고, 꿈을 꾸게 하지만 마주하는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흉악하게 아름다운 유혹이었다.

정인의 상황을 보면, ‘하필이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하소연할 만하다. 하지만 악마는 지혜롭다. 우리는 불행과 불운 앞에서는 ‘하필 나에게’를 외치지만, 행복과 행운 앞에서는 ‘하필 나에게’를 외치지않는다며, 우리가 가진 탐욕을 지적한다.

휴가 중인 악마 헬렐은 쉬는 동안 가볍게 정인을 유혹한다. 오르톨랑의 맛을 기대하며, 잊을 수 없는 작은 행복을 준비한다. 악마의 달콤한 유혹은 아주 간단했다. 그 앞에서 ‘만약에 ~~ 한다면.’만 말하면 된다. 우리가하루에 열두 번도 더 외치는 그 말이다. ‘만약에 내가 부자라면.’, ‘만약에 내가 공부를 잘한다면.’, ‘만약에 내가 재능이 뛰어나다면.’ 그 외의 수많은 ‘만약’, ‘만에 하나’들. 우리의 모든 ‘만약’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이며, 그 탐욕은 끝이 없다. 식욕은 밥을 먹으면 해결되지만, 식탐은 밥을 먹을수록 더 커진다. 욕구는해결할 수 있지만 욕망과 탐욕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이야기에서 정인은 작은 유혹에 여러 번 넘어가고 있었다. 햄버거 가게의 오래된 빵과 패티를 빼돌렸고, 폐지를 주워 갔다 줄 때, 박 코치가 더 얹혀주는 돈을 기대했다. 오토바이를 타는 위험을 무릅쓰고 더 큰 돈을 벌욕망에 빠지기 시작했다. 누구나 정인이처럼 작은 욕망과 유혹에 넘가며, 그 탐욕은 점점 더 커지고 우리를집어삼킬지도 모른다.

악마는 언제나 찾아온다. 내가 가지지 못했을 때,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남들은 다 하는 걸 나는 할 수 없을때. 악마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가 ‘만약’을 생각하는 모든 순간에 악마는 우리의 뒤에서 미소짓고있다.

악마의 이름은 헬렐, 타락천사인 루치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el’은 신, 하느님을 의미하는데, 악마의 이름에도 신의 이름이 적혀 있다. 가브리엘, 미카엘, 라파엘처럼. 악마가 과거 천사였음을 생각해 보면 많은 것을알 수 있다. 우리가 ‘만약’을 생각할 때 찾아오는 것은 악마만이 아닌 것이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를 외칠때, 우리에게는 ‘나에게도 이런 일이’라고 할 만한 일이 늘 일어난다. 네잎클로버 곁에 늘 있는 세잎클로버처럼.

행복의 또다른 이름은 ’만족’이다. 만물을 가졌더라도 이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남과나를 ‘비교’할 때 만족은 사라진다. 내가 가진 것이 나에게 충분함을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 정인이 마주한모든 유혹 앞에, 불만과 비교가 있었다.불만과 비교는 악마의 호출 기호였다.

할머니의 사고 후, 악마는 정인에게 아름다운 지옥을 보여주고 선택을 기다린다. 그런데 달콤했던 지옥은 오로지 정인의 생각으로만 만들어진 환상이었고, 악마는 정인이 바라는 것을 이뤄줄 수 없었다. 지옥이 환상이라면, 천국도 환상이다. 오로지 지금 현실만 있을 뿐이며,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만이 현실이다.

돌고돌아 정인은 모든 유혹을 벗어나 제자리로 돌아온다.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삶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 바꿀 수 없어서 바꾸고 싶겠지만, 바꾸는 것도 좋지 않고, 바꾸는 것이 행복도 아니다. 

이 책에서 악마는 정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저 ‘소년’이라고 할 뿐. 그래서 소년은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고, 이 책을 읽는내내 우리는 정인이 된다. ‘만약’을 기다리는.

이야기의끝, 정인은, 할머니가 차려 놓은 사흘된 밥상을 먹는다. 밥은 굳었고 김치는 시었지만 정인은 말한다.
“…… 맛있네.”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그것을 고마워한다. 바늘 끝의 천사와 인사를 나눈다.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몇 문장을 남겨 본다.

“만약에는 백 번 해도, 네가 있어야지.”
할머니의 ‘만약’은 정인을 전제로 한다. 할머니에겐 정인이가 행복의 시작이고 끝이다. 행복은 늘, 거기에, 곁에, 가까이에 있다.

“신은 명령하지만 악마는 시험에 들게 하지. 선택은 인간이 하는 거야.”(111)
모든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그런데 선택은 하나도 어렵지 않다. 우리가 선택을 어려워하는 건 그 뒤에 따라올 ‘책임’ 때문이다. ‘책임’질 필요가 없다면, ‘선택’은 쉽다. 책임져야 한다면, 선택하기 힘들다.

“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 춤을 출 수 있을까?”
악마의 아름다운 유혹이다. 내가 가진 불행은 댄스홀처럼 크지만, 가진 행복은 바늘 끝처럼 좁다. 바늘 귀도아닌 바늘 끝이라니. 그러고 보면 부자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불행에서 벗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악마의 이 말을 들으면, 나에게 행복과 천사는 없을 것 같다. 침울하고 불만이 시작되는 불안한 감정과 이성 사이를 파고드는 악마의 광고문구다. 하지만 잊어선 안 된다. 공기 중의 단 0.01%의 분자하나가 향기를 바꾼다. 바늘 끝에 불안하게 서 있는 단 하나의 천사만 있다면, 그걸로 됐다.

고통스럽지만 비루하지 않고, 힘들고 아프지만 유쾌한 삶. 그것을 보여준 정인이 인상깊었다. 정인이가 작품이었다.
작가가 펼쳐낸 이야기 속에서 어두운 현실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시선을 배워간다. 달은 우리를 상념에 젖게하듯, 이 책이 어둠과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과 상념을 가져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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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명령하지만 악마는 시험에 들게 하지. 선택은 인간이 하는 거야.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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