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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죽음 앞에서 해야 할 가장 적절한 행동이 무언지 아니?" 그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거나 별로 죽음을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다. "웃어주는 거야." 그는 맞지? 하고 묻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지금은 그렇게 말해도 좋겠지." 내가 말했다. "우리 둘 다 아직 죽을 때가 안 됐으니까." "이봐."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특유의 위험한 미소를 짓고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너랑 계약을 하나 해야겠어." "좋아." 내가 말했다. "뭐든지 한 번은 해 볼 거니까." "우리 중에 한쪽이 먼저 죽으면, 남은 사람이 그 사람 무덤 위에서 춤을 추는거야." 그는 다시 눈썹을 치켜세웠다. 나는 웃으면서 문을 향해갔다. ........더 이상 따지는 건 소용없을 것 같았다. 그가 원하고 있다. 그러니 굳이 싫다고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나한테 내가 이제껏 원하던 것을 주지 않았나? 그가 엉터리 같은 맹세를 원하고 잇었다. 지킬 필요같은 건 거의 없어 보이는 맹세를. 마법의 콩을 가진 소년이 내게 맹세를 하라고 한다. 그 순간 내가 그에게 해 주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약속할게." 내가 말했다. "오직 너를 위해서. 다른 이유는 없어." ... 본문중 ,223·225~226
제목만 봐도, 책표지의 그림만 봐도, 처음엔 난 이 책을 읽기 싫었다.
어둑한 그림과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라는 알 수 없는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이 책을 고른 것이 후회가 될까 도서관에서 몇번이고 고민을 했더랬다.결국 두번째에 도서관에서 나는 또다시 이 책을 들고 있었다. 가끔 이럴때가 있다. 원하지 않았는데 무의식적으로 어느 책장 앞에, 어느 책 앞에 도달하게 되는 현상. 꼭 그 책이 날 부르는 것 같이. 수요일에도 그랬다. 이 책이 날 불렀다. 그래 읽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 들고 집으로 왔다. 팀보울러의 소설 '스쿼시'를 읽고 나서야 이 책을 들었던 것도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조금은 느긋하게 그러나 빠르게 읽어내려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책을 잡는 순간 한장한장 궁금해져 도저히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헬이 배리를 만나는 순간부터 헬이 배리를 잃고 그와의 약속을 지키고 다시 일어날때까지. 헬은 16세, 취업이냐 대학이냐를 고민할 나이이다. 영국은 , 더빨리 어른이 되고 그들도 자신을 빨리 찾는다는걸 느꼈다. 그래서 난 영국소설이 좋다. 깊이감이 있다.
배리를 만나는건 배리가 헬을 도와줌으로서 시작된다.끝의 시작.처음에 헬은 배리에 대해 의심을 가진다. 하지만 운명의 끈은 질기고도 질긴법인가 보다. 헬은 어쩔 수없이 배리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되엇다. 아니 시작은 그렇지 않았다. 헬은 '단짝친구'에 집착하는 아이다. 그는 수많은 단짝친구를 겪었고, 드디어 그의 친구를 만났다. 배리.이야기는 꼭 1년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 하지만, 모든 일이 7주, 49일, 천백칠십육 시간, 칠만 오백육십 분, 사백이십삼만 삼천육백 초..헬은 털어놨다. 우리에게. 배리를 사랑했다고. 글 구석구석 배리에 대한 그리움과 집착을 느낄 수 있었고, 가장 아끼는 사람을 잃었다는 슬픔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은 최고의 자극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낙서
배리가 죽고 헬은 그와의 약속, 계약을 위해 그의 무덤으로 간다. 그 월요일 밤. 저번과 똑같은 핑계로 집을 나와 헬은 배리의 무덤으로 향한다.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땅속에 묻혀 다시는 볼 수 없는 친구의 곁으로 간다는게.
...다시 눈물이 흘렀지만, 그때 같은 흐느낌이나 괴로움은 없었다. 아마도 일종의 작별 인사를 하던 게 아니었나 싶다. 배리를 떠나보내는. 그렇게 서 있는데 머릿속에서 로렐과 하디 영화 시작 부분의 우스꽝스러운 음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딴다다 딴다다 따단따다 따단따다...뻐꾹!...뻐꾹!...뻐꾹!뻐꾸기 노래. 웃기면서도 슬픈. 언제나 내게 미소를 안겨 주는. 남의 무덤 위에서 춤을 출 때 반주로 삼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던 음악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전부터 남의 무덤 위에서 춤을 출 생각을 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때 내게 들리는 음악은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어설픈 리듬에 맞추어 발을 움직이면서 최선을 다해 댄스파티를 시작했다. 곧이어 머릿속 음악은 사라지고 박자는 내 멋대로 빠르고 거세졌다 . 배리의 소용없는 죽음을 추도하고, 그가 내게 지녔던 의미, 그 누구도 다시는 지니지 못할 의미를 찬미하는 북소리가 되어... 본문중, 373
이렇게 배리와의 약속을 지키고 그는 경찰의 보호관찰 명령을 받아들인다. 후, 그는 학교에 남기로 한다. 그가 아무리 배리의 죽음을 잊을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학교에 남았을 것이고, 시간과 그의 노력만이 그를 잊을 수 있게 하지 않을까
헨리(헬)의 이 기록은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과 깊이있는 그 무언가를 주었다. 처음과는 달리 난 이 책이 너무나 좋아졌다. 헬의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것 같다. 이건 그의 놀라운 기록이다.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나조차 무엇이 끝인지 아직 모르는데 이게 어떻게 끝일 수 있겠는가? 이건 어쩌면 그냥 시작일지 모른다. 아니 시작조차 아닐 것이다. 그냥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고, 대신 어떤 시작과 끝의 중간쯤에 있는 단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작과 끝은 우리 눈이 닿지 않을 만큼 너무도 먼 곳에 있어서 아예 그런 게 없는 것처럼 잊고 살아도 좋거나, 사실 생각해 보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이 현재의 나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 글을 썼다. 하지만 이것은 더 이상 현재의 내가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나는 지금까지 나를 만들어 온 것들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중요한 단 한 가지는 우리 모두가 어떻게 해서든 우리 자신의 역사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본문중,377
Friday, 16th July,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