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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고통 - 거리의 사진작가 한대수의 필름 사진집
한대수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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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우리는 ‘사는 것이 고통’이라고 말할까? 살다 보면 기쁜 날도 있고 힘든 날도 있다. 좋은 날도, 좋지 않은 날도 영원할 수 없는데,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나서 며칠 동안 이어질지 알 수 없어 우리는 늘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간다. 무엇 하나 확실하게 알 수 없어 마음 한편에 불안함을 가지고 살아야 하기에 ‘삶은 고난의 연속’이라고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있기에 서로 갈등하고 해코지한다. 명백한 의도를 가진 말로 타인을 음해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력을 행사하여 상대방을 자신의 지배 아래에 두고자 한다. 가끔은 ‘서로를 공격하고 지배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가’ 의문이 든다. 정말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인정(人情)의 뜻을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정’, ‘남을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정의해도 괜찮은 것일까?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믿어도 되는 걸까? 만약 타인을 해치려는 의도와 행동이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이라면, 어째서 우리 사회는 남을 짓밟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일까?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꿋꿋이 살아간다. 누군가는 죽지 못해 살아간다고 말하지만, 모두들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과연 무엇이 우리를 버티게 만들고, 고난이 끊이지 않는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일까?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거야', '참고 버티다보면 좋은 날이 올 거야'라는 희망 아닐까 싶다.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무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꼬여버린 것 같은 하루에도 좋았던 일이 하나쯤은 있고, 그 사소하지만 행복했던 기억이 우리를 버티게 한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순간에는 언젠가 따뜻한 말을 건네준 사람이 떠오르고, 일이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한 순간에는 과거의 내가 이뤄낸 작은 성취들이 버팀목이 된다.

좋아하는 노래 가사 중 ‘걸어온 길은 한바탕 마술 같아,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 내 것이 되니까’라는 부분이 있다. 책의 제목인 ‘삶이라는 고통’과 연관 지으면, ‘고통스러운 순간도 지나고 나면 경험이고 성장의 계기가 된다’라는 의미로 느껴진다. 작은 고비를 이겨낸 경험은 앞으로 힘든 일을 마주했을 때 극복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라는 고통'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기를, 온 힘을 다해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여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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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항우울제 대신 시를 처방해 주세요 - 오늘도 잘 살아 낸 당신의 마음을 토닥이는 다정한 심리학 편지
성유미 지음 / 서삼독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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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정리하는 데 있어 누군가의 위로 섞인 말보다 노래를 듣거나 글을 읽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나의 감정을 가장 잘 이해하고 적절한 처방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은 나이기에,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마음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나 자신을 ''으로 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성장과정에서 주위 어른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보다는 비판과 안타까움이 섞인 피드백을 더 많이 받은 경우도 있지만, 더 좋은 성적을 얻고 '성공'하기 위해 경쟁하는 분위기 속에서 본인도 모르게 또래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위축되는 경우도 있다.


문득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라는 곡이 떠올랐다. 인생이 추울 때 꽃으로 대해 준 ''가 있었기에 시의 화자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고, 겨울이었던 ''의 인생에 봄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상담, 심리학을 주제로 한 컨텐츠를 보면, 가족을 잃었음에도 마음껏 슬퍼하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하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장례와 같은 사회적 절차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마음에서도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충분히 애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꼭 상실 경험이 아니더라도, 슬픔이 아니더라도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좋지 않다. 감추고 억압한다고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난 후에 그동안 참았던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 마구잡이로 분출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주일에 한 시간씩이라도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습관처럼 내뱉은 말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에게 '말이 씨가 되니 조심하라'라는 말을 건네는데, '자기암시'처럼 긍정적인 말도 반복하다보면 현실이 될 것이라 믿는다.

 

걱정하고 불안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니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지도,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도 말고, 그저 잘 될 거라고, 내일은 오늘보다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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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엔 아무것도 못 쓰겠다 - 연극에서 길어 올린 사랑에 대하여
최여정 지음 / 틈새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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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사랑만을 믿고 머나먼 땅에 온 여자와 그런 배우자에게 충실하지 않은 남자'의 결말은 누가 봐도 행복할 수 없다. 사랑 하나만 믿고 의지할 데 없는 낯선 곳에 왔는데, 상대방은 사랑을 주지도, 울타리가 되어주지도 않는다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페드르'의 남편 '테세우스'는 아내를 혼자 둔 채 온갖 모험을 하며 머무르는 곳마다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닌다. 낯선 땅에 혼자 남겨진 페드르가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은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대상이 남편이 전처와의 관계에서 낳은 아들 '이폴리트'라는 것만 빼면.


 사랑은 죄가 아니지만 그 대상이 양아들이라는 것은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페드르의 사랑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사랑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일국의 왕비가 양아들을 마음에 품었다는 게 알려진 이후에 페드르가 겪게 될 지 모를 수모와 그가 느낀 수치심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별하는 순간에 '우리가 멀어진 이유'와 '지금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지'를 명확하게 알고 나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후련할까?


 어떤 관계든지 만남의 끝에는 이별이 있기 마련이고, '자, 이제부터 우리는 끝이야'라며 명확하게 선을 긋는 관계보다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이 저만치 멀어져 버리는 일이 많다.


 상대방에 의해 멀어진 관계를 생각할 때 '이유라도 알려주지'라며 억울해하던 걸 생각하면, 관계를 끝맺을 때도 설명이나 대화의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도 나에 의해 멀어진 관계를 생각하면 '사람과 사람이 멀어지는 데 확실한 이유가 있나, 어느 순간 서로가 맞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거지…' 하게 된다. 하지만 이내 '그래도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얘기했다면 나아졌을까' 하며 아쉬워진다. 



 사랑하면 그에 대해 궁금한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그러니 어떤 말을 해야 상대방이 기뻐하고, 어떤 행동을 하면 화를 내는지도 알게 된다.


 사랑하면 상대방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랑하는 관계에서 서로 상처 주는 일이 허다하다. 그럴 때면 '사랑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나를 바라보길 원하고, 나를 이해해주길 바란다. 상대방이 내 기대를 충족해주지 못하면 어느새 그가 밉고 원망스러워진다.



 사랑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 중 하나이지만, 사랑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 것이다.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에는 아무 것도 못 쓰겠다'라는 말이 '사랑이라고 썼지만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라는 말 같기도 하고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그 어떤 말을 해도 성에 차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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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 강남 성형외과 참여관찰기
임소연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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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의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살 빠졌네", "예뻐졌다"라는 말을 인사치레로 사용하고, "쌍꺼풀 수술하면 예쁘겠다"라거나 "코가 낮아서 아쉽다"라는 말을 조언 삼아 건네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아름다움을 싫어하는 사람도 없다. 나의 외모가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거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걸 싫어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타인의 외모를 칭찬할 수 있다는 것은 부족한 점을 지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째서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상대방의 외모를 칭찬하고 비난하며 더 아름다워지길 권유할까?



대학생 시절, 어느 브랜드 매장에서 '넌 아름다워야 하니까'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당황한 기억이 있다. '왜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거지? 너는 지금 부족하니 우리 매장의 제품을 사용해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는 건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너는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 시절의 나에게는 '너는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성형수술을 고민했던 순간이 있다. 쌍꺼풀이 없고 눈두덩이에 살이 많아 화장했다는 티라도 내려면 아이라인을 두껍게 그려야 했고, '(화장한) 보람 없는 눈'이라는 말도 들었다. 미간도 넓은 편이라 '쌍꺼풀이랑 앞트임 수술을 하면 괜찮을까' 오랫동안 고민했다. '예쁘지 않으면 어때서?'라는 생각을 하면서 성형수술에 대한 관심을 접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문득 '성형수술은 누굴 위해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만족'을 위해 성형수술을 선택한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충분히 만족스럽지가 않아서, 더 예뻐보이고 싶어서 성형수술을 결심한다. 하지만 성형 이후에 주변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성형은 당사자의 만족감을 위한 수술이 맞을까?'하는 의심이 생긴다.

당사자가 말하지 않으면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감쪽같은' 사람은 '미인'이 되고, 과하게 큰 눈이나 뾰족한 턱 등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사람은 '괴물'이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형괴물'로 불리는 당사자가 "나는 나를 위해 성형수술을 한 거야. 나는 이 얼굴에 만족해"라고 말해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는 '자기합리화', '성형중독'으로 느껴질 뿐이다.


책을 읽고 나니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무엇을 얻기 위해 성형수술을 선택할까 궁금해졌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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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금 그대로 좋다
서미태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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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고 살아간다. 강점을 칭찬하기보다는 '이것만 보완하면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쉽게 찾아낸다. 누군가 나를 칭찬하면 '아니'라는 겸손 섞인 부정이 가장 먼저 나온다.

 

글을 읽고 있으면, 당신, 지금 그대로 좋다라는 책 제목에서 '당신은 지금 그대로 멋진 사람이다'라는 격려보다는 '지금의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고백의 의미가 더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연인의 고백처럼 애정 어린 글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째서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길 원할까? 타고난 대로, 있는 그대로 살면 안 되는 걸까?


어린시절부터 경쟁에 노출된 우리는 강점을 극대화하는 대신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익숙하다. 이러한 '약점 중심'의 관점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끊임없이 상대방과 자신을 비교하고, 상대에 비해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자꾸만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타인의 애정도 온전히 받을 수가 없다. 좋은 말을 들어도 자꾸만 부정하고 그의 마음을 의심하니, 상대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따름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랑받지 못할 사람도 없다.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고, 내가 단점이라고 여겼던 것도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매력포인트'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이제는 '지금 나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기꺼이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지치고 힘든 일이 있어도 타인에게는 마음 한 조각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즐겁고 행복한 일보다는 힘들고 우울한 일이 더 많은 사회에서 누군가의 마음에 위로를 '차곡차곡 쌓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내 마음 챙기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챙길 수 있을까', '내가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들고 걱정이 된다. 하지만 '쓰디쓴 세상'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도록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전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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