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엔 아무것도 못 쓰겠다 - 연극에서 길어 올린 사랑에 대하여
최여정 지음 / 틈새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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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사랑만을 믿고 머나먼 땅에 온 여자와 그런 배우자에게 충실하지 않은 남자'의 결말은 누가 봐도 행복할 수 없다. 사랑 하나만 믿고 의지할 데 없는 낯선 곳에 왔는데, 상대방은 사랑을 주지도, 울타리가 되어주지도 않는다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페드르'의 남편 '테세우스'는 아내를 혼자 둔 채 온갖 모험을 하며 머무르는 곳마다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닌다. 낯선 땅에 혼자 남겨진 페드르가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은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대상이 남편이 전처와의 관계에서 낳은 아들 '이폴리트'라는 것만 빼면.


 사랑은 죄가 아니지만 그 대상이 양아들이라는 것은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페드르의 사랑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사랑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일국의 왕비가 양아들을 마음에 품었다는 게 알려진 이후에 페드르가 겪게 될 지 모를 수모와 그가 느낀 수치심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별하는 순간에 '우리가 멀어진 이유'와 '지금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지'를 명확하게 알고 나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후련할까?


 어떤 관계든지 만남의 끝에는 이별이 있기 마련이고, '자, 이제부터 우리는 끝이야'라며 명확하게 선을 긋는 관계보다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이 저만치 멀어져 버리는 일이 많다.


 상대방에 의해 멀어진 관계를 생각할 때 '이유라도 알려주지'라며 억울해하던 걸 생각하면, 관계를 끝맺을 때도 설명이나 대화의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도 나에 의해 멀어진 관계를 생각하면 '사람과 사람이 멀어지는 데 확실한 이유가 있나, 어느 순간 서로가 맞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거지…' 하게 된다. 하지만 이내 '그래도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얘기했다면 나아졌을까' 하며 아쉬워진다. 



 사랑하면 그에 대해 궁금한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그러니 어떤 말을 해야 상대방이 기뻐하고, 어떤 행동을 하면 화를 내는지도 알게 된다.


 사랑하면 상대방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랑하는 관계에서 서로 상처 주는 일이 허다하다. 그럴 때면 '사랑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나를 바라보길 원하고, 나를 이해해주길 바란다. 상대방이 내 기대를 충족해주지 못하면 어느새 그가 밉고 원망스러워진다.



 사랑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 중 하나이지만, 사랑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 것이다.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에는 아무 것도 못 쓰겠다'라는 말이 '사랑이라고 썼지만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라는 말 같기도 하고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그 어떤 말을 해도 성에 차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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