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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305/pimg_7457051052864706.jpg)
<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창비
언젠가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눈물콧물 다 뺐다. 읽은 지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내용조차 잘 기억나지 않지만, 너무 감동받아서, 혹은 너무 서러워서 실컷 울었던 것 같다. 엄마와 관련된 이야기만 보면 나는 슬퍼서가 아니라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 아빠와 관련된 이야기는? 딱히 경험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빠의 이야기를 읽어도 나는 서러워서 눈물을 흘릴까? 궁금했다.
1933년생, 내가 교과서에서 보던 근현대사를 살아오신 이 책 속의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나의 아빠보다 말수가 적고 인자한 웃음을 가졌던 할아버지가 먼저 떠올랐다. 아마도 나이가 비슷해서겠지. 그리고 논밭이 가득한 시골 할아버지 댁이 떠올라서겠지. 어쩌면 할아버지에게 더 잘하지 못한 내가 떠올라서일지도 몰라. 라고 혼자 생각했다. 특히 매실을 보면 할아버지가 떠오르는 나에게 밭에 매실을 심어 둔 장면에서 더더욱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자전거를 갖고 싶다고 했더니 대문 옆에 세워진 자전거를 가리키며 가지고 가라고 말씀하셨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내가 만들어 준 쿠키를 드시면서 맛있다고 말씀해주셨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러던 중 나의 아빠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얘기들을 해주셨다. 책 속의 아버지와 참 많이 비슷했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이야기도, 전쟁 중의 이야기도, 그리고 간첩으로 오해를 받은 이야기도 책 속에 다 나오더라. 그래서인지 책 속의 아버지와 첫째 아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볼 때는 나의 할아버지와 아빠가 주고받은 편지를 훔쳐보고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많은 상황들은 다르지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 모습마저도 꼭 우리 할아버지 같다.
그러면서도 우리 아빠가 많이 떠올랐다. 나는 아빠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우리 아빠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아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준 적은 있었던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지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하나도 없었다. 한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매일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피곤하다는 이유만으로, 할 게 많다는 이유만으로 말이 조금만 길어지면 짜증을 내기 바빴던 내가 떠올랐다. 이제 환갑이 넘은 아빠를 보면서 ‘우리 아빠 참 많이 늙었네.’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빠가 집에 있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긴 내가 있었다. 가끔 나의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행동은 참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얼마 전,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아빠와 둘이서 외식을 한 적이 있었다. 닭갈비를 사드렸더니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며 너무 좋아하더니 엄청나게 많이 드셨다. 점심시간에 집 에 가서 식사를 한 뒤 설거지는 자신이 하겠다며 앉아 쉬다가 일하러 가라는 아빠가 생각났다. 나더러 빨래도 좀 개고, 청소기도 돌리면서 집안일 좀 도우라고 말하는 아빠가 떠올랐다. 하나하나 생각해보니 대놓고 다정하진 않았어도 참 많이 다정했던 우리아빠였다.
아빠와의 작별을 준비해 본 적이 있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그런 적이 없다. 라고 대답하겠지.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에 아빠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참 나도 정 없다. 싶었네, 뻔한 이야기지만, 아빠와 작별하게 된다면, 어떻게 지냈어도 후회가 남겠지만, 조금이라도 덜 후회되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로만 후회하게, 앞으로의 일로는 후회를 하지 않게 더 신경 쓰는 내가 되고싶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