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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아이>, <우는 어른>
제목에서 묻어있는 작가의 섬세한 감정에 동화되어 참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전 다른 사람의 삶이 궁금할 때,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을 때 에세이류를 찾아 읽는데 이번에는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삶이 궁금하다거나 위로받고 싶었다기 보다 저 역시 울지 않는 아이에서 우는 어른으로 변하며 잊어버리고 있었던 감정을 에쿠니 가오리가 그린 삶을 단편들 속에서 찾고 싶단 생각에 읽었습니다. 섬세한 감정을 담담한 어조로 푸는 작가답게 단정한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감정이 한 편 한 편 읽을때마다 전해져와 책을 덮을 때면 어느새 <우는 아이>를 , 저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울 수 있다는 것은 아마도 진정으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는 뜻이겠지요."
책 뒷면을 장식한 이 문장 하나만 읽더라도 청아한 작가의 목소리가 다독임으로 다가오는 이 책은 어른이 되고 눈물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어른스러움이란 '울지 않음'이 아닌 '울 수 없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작가의 일상이, 자연스러움이, 성장기가 고스란히 있어 재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유명 작가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도 되기에 더욱더 읽는 맛이 납니다. 한적한 주말, 편히 읽을 에세이류를 찾으신다면 추천하고 싶네요~ ^^
사소한 노동
하면 정리되는 일을 좋아한다. 설거지나빨래, 구두 닦기와 단추달기, 정해진 순서를 따라 또박또박 해나가면 반듯하게 끝난다. '완벽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정신 위생에 아주 좋다. 내 생활에서 이런 사소한 노동은 약간의 '생명 세탁'이다.
다만 청소는 완벽하게 끝나지 않으니까 이 범주에 들지 않는다. 끝이 없다. 사실은 정등갓도 닦고 싶은데, 서랍 안도 정리하고 싶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다 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는 일단은 이걸로 끝, 이라 생각한다. 그런 건' 생명 세탁'이 되지 않는다. '완전히 다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원고 쓰는 일을 포함해서, 세상 대부분의 일은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다. 또박또박 해도 깔끔하게 끝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또박또박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깔끔하게 끝날 수 없는데 해야 하는 일도 있다. 그건 해안이 없는 바다를 헤엄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성취감이 있는 단순한 작업을 원한다. 기분이 좋으니까.
p59
칭찬이란 하는 사람의 자질을 묻는 것이다. 문장력이 없는 사람에게 글을 잘 썼다고 칭찬을 받아봐야 기쁘지 않고, 미각이 둔한 사람이 어느 레스토랑의 음식을 칭찬할들 신빙성이 없다. 평고 감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옷차림을 칭찬받는 날은 슬퍼지고만다. 그러니 그 칭찬이 그토록 기뻤던 것은, 내게는 그가 그야말로 여행의 신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여행에 익숙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는 프랑스어도 능숙하고 역사와 문화에도 조예가 깊다. 여행을 많이 해서 여행지에게 갈팡질팡하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그는 여행에 익숙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시각이 흐려지지 않고 자기의 원래 모습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그는 절대 여행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다만 거기로 간다. 유유하게, 라 하자니 그 말이 너무 부드러워서 표표하게, 라는 표현하고 싶은 모습으로. p117
-[칭찬] 중에서
하루하루 사는 데 용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증명할 수 없지만, 용기는 소모품이다. 날마다 공급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점이 배짱과는 다른다. 배짱은 아무리 부려도 줄어들지 않는다. 뒤집어 말해서 공급할 수 없다.
용기를 공급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책을 읽거나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는다. 모두 용기가 샘 솟는 일이다. 행복한 시간을 많이 가지면 사람은 용감해진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신뢰, 그거이 없으면 용기도 생기지 않는다. 무언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 그래서 종교가 있는 사람은 용감해지기 쉽다. 부럽다.p198
- [용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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